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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Dec 27. 2020

빈센트 반 고흐처럼

 명화 그리기, 시간이 색을 입는 고요한 한 때가 지나갑니다

 


 제주의 푸른 바람과 하늘이 멋진 날이었다. 세화에서 해변도로를 따라 종달리, 소심한 책방에 들러 책 몇 권을 샀다. 그중 한 권은 네덜란드의 작가 바바라 스톡의 [반 고흐]였다. 개성 있는 그림들과 스토리, 그리고 고흐와 테호의 편지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가 프로방스 한가운데 있는 것만 같았다. 또한 고흐가 자연이 주는 기쁨을 생생하게 느끼고 그것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풀 이파리, 소나무 가지, 밀 이삭 한 톨까지 눈여겨보며 마음의 평온을 느꼈다는 것을. 그것들을 그리고 있다 보면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가까운 곳에 두고 자주 꺼내 읽곤 했다.


별을 보고 있는 고흐, 바바라 스톡의 그림책


 올 겨울, 우연한 기회에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DIY 명화 그리기를 하게 되었다. 처음엔 캔버스에 깨알같이 적혀있는 숫자들과 물감들을 보고서는 저걸 언제 다 완성하지 싶었다.


 스톡의 책에 고흐가 이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테호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있다. 고흐가 밤을 얼마나 세심히 관찰하고 그 색감을 느꼈는지 이야기하는 고흐의 편지를 읽다 보면 그 색들이 궁금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어떤 색들을 썼는지 그림을 찾아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


사랑하는 테오야.
이번에 완성한 [별이 빛나는 밤]이란 그림을 네가 보거든 무척 좋아할 거란 짐작이 가.
밤은 낮에 비해 훨씬 깊이 있고 풍부한 색감을 지녔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
자주와 파랑과 초록 빛깔의 강렬함은 밤에 유독 두드러지지.
별을 보고 있노라면, 지도 가득 점점이 박힌 도시와 마을들이 연상돼.
창공을 수놓은 저 빛의 점들이 프랑스 지도에 박힌 흑점들만큼이나 손쉽게 찾아갈 수 있는 장소라면 어떨지 상상해보렴.
                                                                                     
                                                                                                                              -  테오에게 쓴 고흐의 편지 중


  낮에 비해 깊이 있고 풍부한 색감을 지닌 밤이라니. 자주와 파랑과 초록의 강렬함이라니. 그런 색들을 사용해 밤과 환하게 빛나는 별을 눈부시게 표현한 고흐처럼 그 색들을 들여다보고 칠해보는 것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번호가 매겨진 수많은 블루와 그린들을 보며 밤을 표현하는 색들이 이렇게 많았나 연신 감탄을 했으니. 한편으론 어쩌면 나는 익숙한 색들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는 한정적인 색들에만 나의 시선이 머물러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화가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채로운 그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고흐의 그림을 따라 색을 칠하는 동안은 나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밤을 다채롭고 풍부하게 바라보기로 했다. 캄캄한 밤에서 색을 찾은 고흐 덕분에 고흐처럼 색을 바라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다. 예술가처럼 해보기는 감성적인 면 뿐아니라 심리적으로도 힐링되는 일이었다.


 부드럽게 붓이 지나갈 때마다 아름다운 색들이 캔버스 위로 입혀지고, 섬세하게 붓터치를 하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렇게 몇 시간을 집중하며 명화 그리기를 하고 나면 나의 시간이 다채로운 색들을 입는다. 시간이 색을 입고 주변은 한없이 고요해진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꼬마 아들도 작은 붓을 쥐고 함께 그렸기에 주변이 고요해질 수밖에 없었답니다) 고요한 그 시간들이 다 모여 색을 입고 나니 작품이 하나 완성되었다.


 완성된 명화를 바라보고 있으니 빛들이 론강에 비쳐 실제로 일렁이는 것만 같고, 검고 푸른 수심의 강물에 나의 시간들도 함께 일렁이며 떠다니는 듯하다. 불꽃놀이를 보듯 환하게 눈부신 별들도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만 같다. 처음엔 꽤 지루할 것만 같았던 명화 따라 그리기는 꽤 멋진 일이 되었다. 고흐처럼 색을 보는 경험을 했던 시간들이 잔잔하게 채워졌던 올해의 마지막 달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퇴근 하고, 할 일을 마치고, 주말에 시간이 될 때마다 사각사각 붓을 들고 있었으니. 그 해 마지막은 집안에서도 충분히 고요하고 다채로웠다고 말이다.




열살 아들과 함께 완성한  DIY 명화 그리기 [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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