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치앙마이에서 보낸 시간
우기의 치앙마이를 여행하면서 우산을 써본 적이 없다. 비가 자주 오지 않은 건 아니다. 오전엔 맑았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를테면 차를 마시기 전에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카페에서 나오니 세찬 빗줄기가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식이었다. 그러데 나는 왜 우산을 쓰지 않은 걸까?
우산을 한국에서 챙겨가지 않았기 때문에 테스코에서 우산을 하나 살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마침 잔뜩 장을 보고 나가려는데 비가 쏟아졌으니. 장우산은 이래저래 짐이 될 것 같아서 삼단 우산을 찾는데 또 햇살이 나온다. 그래서 그냥 우산은 사지 않기로 하고 콘도로 돌아갔다.
한번은 올드타운에서 유명하다는 팟타이 집을 찾아갔다. 식당이 타패 게이트 근처여서 우리가 머물던 호텔에서 약 십여분 걸어가야 했다. 노점의 물건을 구경하고 한가로운 여행자들을 지나쳐 식당에 들어가 팟타이와 수박주스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또 비가 내린다. 비를 피할 겸 밥을 다 먹고서도 식당 tv에 나오는 오래된 영화를 보면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지나고 밖을 보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모자를 눌러쓰고 식당을 나왔다. 후드득 오랜만에 비를 맞았다.
가다 보니 아이스크림 가게의 기다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여행자들이 보였다. 우리도 가게 처마 밑으로 뛰어 들어갔다. 거리에서 피를 피하며 서 있었던 적이 얼마만인지. 마침 아이스크림 가게 점원이 처마 밑 여행자들에게 시식해보라며 아이스크림을 나눠준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차갑지 않은 비가 내리는 것을 보는 것이 재미있어졌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여행자들은 다시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하늘은 서서히 노을을 만들 준비를 했다.
비가 오면 비를 구경하고 그러다 보면 금세 비가 그치고, 자주 맑았고, 자주 비가 왔고 그랬다. 어디 급하게 가야 하는 일정에 쫓기는 여행자도 아니고, 그저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차와 기분 좋은 발마사지, 그리고 책과 해리포터만 있으면 우리는 행복했다. 그런 소박한 일상에서 비는 큰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우기라던데 가서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만 많았다. 그랬었는데 말이다.
어떤 날은 비가 그치고 나니 이렇게 산책하기 좋은 시간이 찾아왔다. 길을 나선 김에 생과일 주스가 맛있다는 꾼깨 쥬스집을 찾아간다. 방금 전 내린 비로 여름의 향기가 깊숙이 들어오고 있었다.
우기의 치앙마이는 우산 없이도 행복하게 걱정 없이 가볍게 떠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비가 내리면? 비를 맞거나 피하거나 둘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