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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Oct 14. 2023

여름의 끝에서 캠핑

양양에서 바다와 숲을 만나다


 

 여름의 끝은 늘 아쉽다. 어디서 어떻게 여름과 작별 인사를 할까. 나는 여름이 시작될 때부터 마지막을 떠올려왔다. 여름이 끝나면 곧 여름이 그리워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양으로 가야겠다. 양양에는 내가 좋아하는 여름의 색이 있다. 양양의 바다에서 묻어나는 라이트 블루들. 이를테면 스카이 블루 같은 밝고 투명한 파란색들. 어디 그뿐인가. 부드럽고 순수한 느낌을 선사하는 파스텔 블루와 깊고 진한 다크 블루까지. 양양의 숲에서는 여름의 초록빛이 또한 가득하니 양양으로 가자.


먼 바다로 갈수록 다채로운 빛의 바다


 바람도 잔잔하고 늦여름의 햇살 만이 물결에 빛을 드리우는 날이었다. 새벽의 고속도로를 달려 양양의 바다에 도착하니 다채로운 파랑이 일렁이고 있었다. 해변에서 가까운 바다는 투명하고 가벼운 라이트 블루, 조금 더 들어가니 그린이 가미된 티파니 블루와 파스텔 블루의 콜라보, 더 뒤로 보이는 먼바다는 다크 블루로 펼쳐진 파랑의 향연이다. 나는 서핑하는 몇몇의 사람들과 늦여름의 해수욕을 즐기는 몇몇의 사람들 사이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아직 따뜻한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물이 안아주면 이런 느낌일까. 생명이 속닥이는 늦여름의 바다는 한없이 포근하고 부드럽다. 손가락 사이로 물결 하나하나가 만져지는 듯하다. 바닥의 모래 한 알 한 알이 비치고 그 사이를 유영하는 물고기들도 무심하게 지나다닌다. 물 밖으로 나오면 남은 햇살이 지난 여름에 미처 못 태운 살갗을 태운다고 애쓰지만 따뜻하게만 느껴진다.



바다와 커피


 여름 바다는 언제 보아도 좋았고, 그래서 고마웠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오래고 해변에 머무르고 싶었지만 커피 한 잔만큼의 시간만 더 머무르기로 했다. 그리고 여름의 색, 초록을 찾아 미천골 자연휴양림으로 걸음을 옮겼다.



에메랄드 그린을 품은 맑은 계곡

 휴양림에 들어서자 계곡 물소리가 일제히 들려왔다. 맑고 차가운 계곡이 숲을  돌아 나오며 들리는 우렁찬 그 소리에 내 마음도 초록물이 든다. 숲의 초록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특히 여름의 초록은 상큼하다는 말로도 다 표현이 어려울 만큼 다채롭다. 특히 여름 숲에서 만날 수 있는 포레스트 그린, 에버 그린은 깊은 평화와 안식을 느끼게 해 준다. 특히 여름비 지나간 뒤에는 투명한 물을 머금어 더욱 짙어지는 초록이 된다. 그리고 여름 숲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상쾌한 공기. 곧 가을의 공기로 바뀔 테지만. 그전에 여름 숲과도 작별인사를 하자.


계곡 옆에 빨간 텐트

 계곡 옆에 오늘 하루 지낼 빨간 집을 뚝딱뚝딱 지었다. 그리고 계곡에 가서 차가운 계곡 물에 손을 담가 보았다. 순간 너무나 차갑고 시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벌써 계곡 물은 이렇게 차구나. 여름 내 속닥속닥 흐르며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계곡에 의자를 피고 앉아 짙은 초록빛을 마음에 담아본다. 늦은 오후의 빛을 받아 계곡 주변의 나무들은 봄의 새잎처럼 연둣빛으로 빛났고 그늘진 물가는 짙은 남빛마저 감돌았다.



힘차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와 오후 늦은 햇살을 받아 빛나는 나무들


 숲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천천히 흐른다. 아무런 할 일 없이 그저 흐르는 물만 바라보다 천천히 저녁이 오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산그늘이 깊어지면 조용히 렌턴의 불을 밝혀본다. 초록의 숲에는 오직 나와 텐트와 계곡뿐인 것 같은 느낌. 주변 데크에서의 흥겨운 사람들의 소리마저 우렁찬 계곡 물소리에 묻혀버리니 이 숲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계곡 앞에서는 겸손해진다. 그저 렌턴을 켜서 빛을 내는 것으로 나의 존재에 점 하나를 찍어보는 것이다.


조용히 렌턴의 빛을 밝혀본다

 여름의 끝을 만나러 왔던 양양에서의 짧았던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다채로운 파랑을 만났던 양양의 바다를 마음에 담고서 짙고 풍성한 초록을 지닌 미천골 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을 묵어갈 것이다. 내일 돌아가면 분주한 일상 속에서 나는 또다시 계절을 잊고 지낼지도 모른다. 여름이 갔는지 가을이 오는지, 가을이 어디메쯤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 그러다 갑자기 찬 공기를 느끼며 준비 없이 겨울을 맞이하게 될는지는 모르겠다. 그럼 나는 다시 한 계절의 시작과 끝을 만나러 계절의 빛을 찾아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게 될 테지.





지난 9월에 다녀온 여행기인데 이제야 글을 올리네요^^;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이제는 가을이 훌쩍 들어와 있습니다.
바람에 묻어나는 가을 냄새와 노랗게 변해가는 나뭇잎이 제 마음을 두근두근거리게 합니다. 가을엔 어디로 가볼까요?
구독자님들 모두 낭만적인 가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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