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평대리에서 톳과 전복이 들어간 맛있는 파스타를 먹었습니다.
제주 동쪽 시골 마을, 낮은 돌담들 사이를 걷다 보면 식당인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곳이 있다. 작고 심플한 간판에 식당이라고 써두고 수저 모양을 세겨두었으니 식당은 맞는데 간판 너머로 보이는 건 어느 가정집의 소박한 마당이다. 커다란 간판으로 얼마나 맛있는 집인지, 오랜 전통이 있는 실력있는 집인지 홍보하지 않고도
'난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던 식당.
봄바람에 밀려 식당 문을 두드려보았다. 조용하던 마당과는 달리 식당 안에는 열명 남짓 앉을 수 있는 기다란 원 테이블이 만석이었다. 옛 시골집을 개조하여 그런지 서까래가 드러난 천장 아래로는 따뜻한 조명 서너 개가 테이블 위로 빛나고 있었다. 오픈 주방에서는 바쁘게 움직이는 손들이 보였다.
약 사십 분 정도 대기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대기 명단에 올려드릴까요?
우리 앞에 두 팀이 더 있다고 한다. 시간이 열두시가 조금 넘었으니 사십분이야 기다릴 만도 하다 싶다. 동네 한 바퀴 산책하면 될 것 같은 느낌. 사장님이 전화를 준다고 하니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식당을 나섰다.
제주 돌집 사이를 잘란잘란 다니며 누가 살피지 않아도 맑게 피어있는 꽃들도 구경하고, 누군가의 손길로 털이 말끔해진 길냥이들과 인사도 하다 보니 식당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생각보다 금방 우리 순서가 되었다.
한 번 와 보았다고 그새 익숙해진 길을 따라 식당으로 들어가니 자리도 말끔하기 정리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식당을 둘러보니 곳곳에 소품들이 아기자기하다. 마당 한가운데로 쏟아지는 낮의 햇살에 갑자기 허기가 훅 들어온다. 마침 주문을 받으러 오시는 사장님께 이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인 톳파스타와 하이볼을 주문했다.
바다의 향기가 들어간 파스타의 맛이 어떨지 상상하며 기다리는 시간은 즐거운 일이었다. 드디어 톳파스타가 나오고.
노란 면 사이로 검은 톳과 양파가 맛깔스럽게 어우러지고 그 위에 전복술찜이 올라가 있다. 함께 나온 건강한 샐러드와 전복내장밥, 후식으로 자몽 한 조각까지. 보는 눈이 즐거워진다. 맛을 보니 맛도 바다의 맛이다. 감칠맛이 도는 간장 소스에 토독토독 씹히는 톳을 면과 함께 먹으니 궁합이 딱 맞는 것 같다. 올라간 전복술찜은 또 얼마나 부드러운지. (거기에 레몬 띄운 시원한 하이볼 한 잔까지 마시니 맛있는 한끼가 주는 기쁨이 상당하더군요.)
후식인 자몽까지 먹고 나서 일어나는데 열린 창문에서 초록이 한가득 들어온다. 은은한 조명을 따라 초록의 내음이 풍긴다. 바다의 맛을 끼니로 먹고 신록으로 차를 마시는 느낌이 이런 걸까. 뭔가 개운한 기분이었다.
가정집 같은 식당의 마당을 나서는데 사장님의 전화를 받고 들어서는 젊은 커플이 보인다. 제주의 싱그러운 햇살을 받으며 두 손을 마주 잡고 들어오는 연인들이. 그들이 곧 맛보게 될 맛있는 한끼를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기분이 참 좋아졌다. 톳파스타의 맛이 언제고 변하지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