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과 함께 전기 자전거를 타는 기분
제주에 간다고 하니 친구 P가 추천해 준 곳이 있었다. 세화에 있다는 한 자전거 렌털샵이었다. 제주는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어 자전거를 한 번은 타 봐야지 했지만 지금까지는 다른 일정에 묻혀 자전거 여행은 잊히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번엔 중학생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어서 뭔가 액티브한 것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있었기에 친구의 추천을 잊지 않고 메모해 두었다. 그리고 제주에 도착한 첫날, 숙소에 차를 세워두고 자전거 렌털샵에 들렀다. 몇 시간만 빌려서 아름다운 제주의 해안도로를 달려보기 위해서였다.
렌털샵은 평대리에서 세화로 넘어가는 해변가에 있었다. 작은 미니벨로 같은 자전거를 빌려야겠다 하고 샵에 들어갔는데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커다란 바구니가 달린 세월감 있는 것만 한 종류가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전기 자전거였다. 미니 스쿠터도 몇 종 있었다. 아들은 이참에 전기 자전거를 타보고 싶다고 신이 나서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서는 이내 전기 자전거를 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망설이고 있는 찰나에 사장님이 밖으로 전기자전거를 내가시며 한번 타보고 결정하라고 권유했다. 그럼 타보고 결정하자 싶어 전기 자전거에 올라봤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힘차게 미는듯한 느낌이 나고 빠른 속도로 앞으로 가는 게 아닌가! 순간 겁이 덜컥 난 나는 브레이크를 잡으며 자전거에서 내렸고, 아들은 잠깐 타보더니 신이 나서 이거 빌리자고 한다.
평소에 속도감을 즐기는 분들에게는 너무 좋은 선택이겠지만 엄마는 이거 좀 무서운데? 그렇다고 낡은 자전거를 빌리고 싶지은 않은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몇 시간만 타보자 싶어 전기 자전거를 두 대 빌려서 나왔다. 아들이 자기가 엄마 뒤에서 갈 테니 천천히 달리자고, 해변을 따라 좀만 달려보자고 한다. 그래 그럼 무섭지만 살살 1단계로 달려볼까?
한 두 방울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하늘은 개이고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기한 게 처음에는 그렇게 무섭더니 타다 보니까 너무 재미있는 게 아닌가! 1단계부터 타다가 2단계로 올렸다가 3단계까지 속도를 올려가며 아들과 앞서가니 뒤서가니 하다 보니 어느새 하도리 지나고 성산 입구까지 갔다. 첫날인데 너무 멀리 왔나 싶어 자전거를 돌려 돌아가기로 했다. 전기 자전거가 익숙해지니 여유가 생겨서일까. 성산에서 세화로 돌아가는 길에는 바다가 눈에 더 잘 들어왔다. 파란 하늘과 바다를 따라 난 자전거길에는 우리만 있었다. 여유가 생긴 뒤로는 아들을 앞으로 보내고 달렸다. 앞에서 “엄마 속도 2단계로 올려요~!”이렇게 나름대로 코칭하는 아들을 보니 언제 저렇게 컸나 싶기도 하고 아들 덕분에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어서 감사한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첫 라이딩 이후로 전기자전거를 좀 더 빌려 세화에 머무는 동안 내내 차는 두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자전거를 타고 오일장에 가서 과일도 사 오고, 점심 먹으러 갈 때도 저녁 먹으러 갈 때도 자전거를 타고 설렁설렁 동네를 누비며 다니다 보니 자전거가 너무나 편해졌다. 첫날의 무서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하나로마트에 장 보러 갈 때도 휘리릭 자전거 타고 다녀오니 소박한 마을의 풍경도 한눈에 들어왔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이렇게 아무 때나 바다가 보고 싶을 때 바다 곁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한없이 바다를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주 동쪽에는 바닷길을 따라 아기자기한, 멋진 해변이 많았기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멈춰서 해변에서 시간을 자주 보냈다. 한 번은 월정해변을 향해 바다로 가는 길에 코난 비치에 들렀는데 물빛이 너무 아름다워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다.
제주에서는 어디 건 오가는 길에 항상 바다가 있었으므로 자전거를 타고 향하는 곳은 결국 아름다운 바다일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데 아름다운 노을을 만났다. 노을을 지나치지 말고 앉아서 그 순간 해가 넘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싶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해변을 따라 난 돌담길에 앉아 노을이 지는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는 일이 너무나 좋았다. 그 순간 마음에 어떤 평화가 깃들었다. 어떤 근심도 노을과 함께 사라지고 바닷물 소리,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아들도 그 풍경이 좋았는지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서쪽으로 숙소를 옮기는 날 자전거를 반납하고 걸어서 돌아가는 길에 뜨거운 햇살을 따라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데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자전거만 탔어도 이 뜨거운 햇살을 몇 분이면 지나갈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 중 가장 좋았던 것은 바다도 바다지만 뜨거운 여름 햇살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바람과 속도였던 거 같다. 여행 마지막날, 아들에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물어보니 단연코 전기 자전거 타기라고 말한다. 언젠가는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섬 전체를 돌아보고 싶다면서. 아무튼 한 번쯤은 제주에서 전기자전거를 타보는 건 정말 즐거운 일임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