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들보드 배우기
한 번쯤은 푸른 바다 위에 가벼운 보드 하나 띄우고 유유자적 투명한 물결을 따라 함께 흐르고 싶었다. 발목엔 가볍게 리쉬를 차고 보드에 올라 노를 저으며 햇살과 바람과 바다를 느끼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멋진 일이기에. 뭔가 자유로움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 때문에 패들보드 배우기는 나름의 버킷리스트가 되었고, 작년 여름, 우연히 세화 해변에 갔다가 패들보드 강습 광고를 보게 되었다.
패들은 ‘노’를 말한다. 그래서 패들보드는 서핑 보드 위에 서서 노를 저어서 나아가는 레포츠라고 보면 된다. 영어로 ‘Stand Up PaddleBoard’, 줄여서 ‘SUP’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패들보드는 서핑보드 보다 크기도 크고 부력이 세서 서핑은 부담스럽고 파도를 즐기고는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겐 좋은 선택이 된다. 한나절만 배워도 바다 위의 자유를 느끼기에 가능하다고 하니 이참에 도전하기로 했다. 두 아이들도 함께. 아이들도 이제 제법 컸으니 신나는 레포츠 하나쯤은 같이 배워도 되지 않을까.
강습은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시작되었다. 먼저 보드의 구조에 대한 안내와 사용법을 익히고 나서 바다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보드는 훨씬 크고 무거웠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리쉬(보드와 서퍼를 연결하는 발목에 채우는 끈)를 차고 한 손으로는 보드를 한 손으로는 패들을 들고 바다로 나갔다. 지상에서 무거웠던 보드가 바다 위에서는 가볍게 떠오르고 내 한 몸 의지 할 수 있는 든든한 배가 되었다.
패들 잡는 법을 익힌 후 보드 위에서 오르기와 내리기를 배웠다. 바닷물이 제법 시원하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보드 위에 앉은 다음 균형을 잡아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강습.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보세요. 하나의 목적지를 정한 후 천천히 패들을 저어갑니다.
순식간에 먼바다로 나갈 수 있으니 내가 어디로 가는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파도를 타세요.
처음이시니까 저 하얀 등대 안에서 연습해 주세요.
가이드라인 안에서 작은 목적지를 정하고 연습을 계속했다. 해초가 많이 모여있는 곳 또는 작은 바위 위를 목적지로 삼고 앞으로 가보고, 왼쪽 오른쪽으로 방향 전환도 해보았다. 패들은 살짝만 저어도 앞으로 나갔다. 그리하여 목적지보다 멀리 나가기도 하고 엄한 곳으로 가기도 했다. 그럴 땐 바짝 긴장이 되어 다시 목적지를 향해 패들을 저었다. 잘못 가면 다시 목적지를 찾아가면 되었다. 중요한 건 목적지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가면 망망대해에서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처음에 생각했던 곳과 다른 당황스러운 곳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중심을 잡고 매번 목적지를 다시 설정하고 또 설정했다. 내 눈의 시선을 보드와 패들 바로 코앞에만 두지 말고 멀리 목적지까지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신기하게도 기분 탓인지 나는 패들보드를 배우면서 인생 강습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삶의 크고 작은 목적지들은 어디일까.
두 시간 남짓 뜨거운 태양 아래 파도를 탔더니 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에는 쉼이 필요한 법이니. 하여 우리는 도시락으로 싸갔던 유부초밥과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해변에 누워 바다의 소리를 들었다. 간간히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파도 소리, 파라솔을 흔들고 가는 바람 소리가 지나갔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조금만 쉬더니 다시 바다로 나가자고 아우성이다. 그래 나가자.
우리는 다시 패들보드에 올랐다. 어느 정도 바다와 보드가 익숙해짐을 느꼈을 때 천천히 몸을 일으켜 보았다. 일어나서 노를 저으니 나를 지나가는 부드러운 바람과 파도의 일렁임이 발밑에서부터 천천히 느껴진다. 살짝 긴장되지만 이 순간을 즐기기로 하고 목적지로 삼은 연습 코스를 바라보며 천천히 패들을 저어가 보았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이 여름을 기억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