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가면 오름을 오르자
여름의 제주를 떠올리다 보면 나의 생각은 언제나 초록색에 가서 멈춘다. 여름의 초록은 잔뜩 푸르고 생기가 넘치기 때문이다. 봄의 연한 초록이 여름이 되면 짙어지는 과정에서 다채로운 초록을 만들어내기에 그 초록의 맨 얼굴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설레고 즐겁다.
초록색을 검색해 보면 에메랄드, 라임, 올리브, 포레스트, 민트, 세이지, 브리티쉬, 아스파라거스 그린 등 대략 25가지의 초록색이 나오는데 그 많은 초록색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제주의 수많은 오름이다. 초록빛이 어쩜 이렇게 다양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오름을 오를 때면 언제나 감탄하고 만다. 여름의 초록에서는 상쾌한 향기마저 난다. 오름을 걷다 보면 은은하게 바람에 날리는 풀향이, 초록이 향기가 마음과 머리를 맑게 해 준다. 그러니 여름에 제주에 간다면 오름에 오르는 일이 중요한 일과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언제 오름에 오를 것인가. 여름 한 철, 제주의 오름을 즐기기엔 이른 아침이 좋다. 여름 제주에서는 5시 반쯤에 해가 뜨는데 그 전후로 올라가면 풀에 맺힌 이슬이 햇살에 영롱하게 빛나며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간밤의 정적을 깨우며 한 걸음, 한 걸음 오름을 오르다 보면 나지막이 보이는 초록 언덕과 그 언덕을 이루고 있는 키 큰 풀들이 군락을 이루어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름 모를 야생화와 풀들이 아침햇살에 일어나고, 내딛는 나의 발걸음에도 힘이 실린다.
오름을 걷다 보면 온통 보이는 것은 하늘과 초록색뿐이다. 맑은 날이라면 파란 하늘과 선명한 풍경들일테고, 흐리다면 잿빛 하늘과 안개일 것이다. 흐린 날에도 맑은 날에도 초록빛은 선명하다.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초록으로 물들어 마음까지 초록빛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걷다 보면 기분 좋은 땀이 얼굴에 송골송골 맺힐 즈음에 정상에 오르게 된다. 제주 동부에는 약 30~40개 정도의 오름이 있는데 그리 높지 않기에 약 15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가 있다. 그것이 또 오름의 큰 매력인 것 같다. 아이들과 오르기 참 좋은 거리다. 여름의 제주에 머물면서 다랑쉬 오름, 아부 오름, 아끈 다랑쉬 오름, 용눈이 오름, 백약이 오름 등을 자주 올랐다. 그곳에 오르면 이웃 오름들과 초록빛 가득한 풀과, 멀리 바다까지 내려다 보이니 15분 만의 행복이 아닌가.
올라가며 흘린 땀은 내려가며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 좋게 마른다. 내려오며 아이들과 오늘 아침은 뭘로 먹을지, 오늘은 뭘 할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오름의 초입. 그렇게 우리는 마음이 넉넉해져서 내려온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로에도 초록이 한 가득이다. 도로 옆으로 펼쳐진 삼나무에서는 짙은 초록이 그늘을 드리우고 반대편으로 펼쳐진 밭에는 연초록이 한창이니. 그러니 여름의 제주에 간다면, 눈에 가득 초록을 담고 싶다면 오름을 오르자. 한 걸음, 한 걸음 진한 풀향을 맡으며 그렇게 오름을 오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