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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Sep 18. 2023

바닷가 마을을 걷기

여름 아침, 만보 걷기 리추얼

 이상한 일이다. 제주에서는 줄곧 아침 여섯시 즈음이면 눈이 뜨이니 말이다. 하릴없이 천장을 바라보다 좀 더 눈을 붙여보자 하고 눈을 감아도 금방이면 일어나게 된다. 해가 일찍 뜨는 바닷가 마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고자 하는 마음이 어서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일찍 일어나고 나서는 커피 한 잔을 내리고서 창 밖을 내다본다. 오늘도 뜨겁겠구나. 하루의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걷기를 하고 와야겠다. 이런 마음이 절로 드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운동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서면 낮은 시골집과 까만 돌담이 아침 햇살에 반들거린다. 이른 새벽에 소나기라도 지나간 날은 진한 풀내음과 바다내음이 춤을 추듯 공중에 떠다닌다. 그 내음을 맡으면 여름을 살러 잠시 멀리 떠나온 것이 실감 난다. 그렇다. 나는 익숙한 여름에서 낯선 여름으로 떠나왔다. 익숙한 일과 감정을 잠시 잊기로 한 것이었지.


 새로운 여름의 책장을 열기 전에 어떠한 의식을 행할 것인가. 이를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전에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이른 아침 눈을 뜨고 운동화를 신고 길을 나섰다. 약 6~7km 정도를 오전에 걷고 들어오면 대략 만보를 걷게 되더라. 걷기의 코스는 그날그날 다르다. 문을 나서자마자 발걸음이 이끄는 곳으로 걷는다. 대문에서부터 왼쪽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오른쪽을 따라 걷거나 직진을 하기도 한다. 가다 보면 낮은 밭담을 만나거나 한가로이 서 있는 말을 만나기도 한다. 대게는 돌담이 가지런한 시골집들을 지나간다. 가끔은 마실을 마치고  돌아가는 부지런한 강아지들의 경쾌한 걸음을 만나기도 하고,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고양이들의 눈빛과 마주하기도 한다. 이른 아침을 걷다가 만나는 생명들에게는 활력이 느껴지기 때문인지 그들 대부분은 사랑스럽다.


바다와 나란히 하고 걷는다



 바닷가 마을이니 걷기의 피날레는 대부분의 바다를 향한다. 돌담 사이로 파란빛이 어울거리는 쪽으로 걷다 보면 필시 바다를 만나게 되었다. 짠내음과 파도소리, 한가로운 바다새의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시원한 청량음료처럼 걸음도 가벼워진다. 아침 햇살은 점점 강해지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바다와 나란히 걷는 그 기분은 소소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매일매일 제주의 아침은 만보 걷기로 시작하게 되었다. 언제라도 여름 제주를 찾게 되면 이 상쾌한 리추얼을 아침마다 소환하게 될 것만 같다.


 


걷기의 끝에는 언제나 바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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