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션 Mar 23. 2023

불안과 우울을 껴안는 움직임

신체를 감각해보던 날, 새로운 모습으로 마주한 불안과 우울

바닥과 닿아있는 발바닥을 감각해 봅시다. 당신의 발바닥은 딱딱한가요, 말랑말랑한가요? 맨발에 닿는 촉감은 어떤가요? 좀 더 말랑해진 발바닥으로 느껴봐요. 양말의 부들부들한 느낌이라든지, 바닥의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이라든지.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봅니다. 발가락의 움직임이 자유롭게 느껴지시나요? 저는 발등 어딘가의 뻐근한 느낌 때문에 그리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긴장감에 조금은 촉촉하게 땀이 밴 것 같기도 합니다. 옅은 물기가 움직임을 방해합니다.


약을 복용한 지 1년을 넘겼을 때, 움직임 워크숍에 가게 되었습니다. 한창 연기에 관심이 생겼을 때라 움직임을 배워놓으면 연기하는 데도 좋지 않을까 싶어 무작정 신청했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 움직임이란 그저 현대무용의 다른 이름이었어요. 좀 더 자유로운 현대무용정도. 무용을 조금 배웠다지만 배운 지도 15년이 넘었기에 워크숍에 가기 전 잔뜩 긴장을 했습니다.


워크숍에서는 신기하게도 걷는 것으로 먼저 시작을 했습니다. 다리 찢기는 안 하나? 안무를 하려나? 테스트를 해보려나? 오만가지 생각들 특히 두려운 감정에 가득 찼습니다.


별의별 걱정을 다 사서 했지만 정작 이 워크숍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체의 감각을 인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낯선 공간에 들어서서 몇 번의 수업동안은 감각의 인지는커녕 그저 두려움 없이, 마치 무대처럼 느껴지는 연습실 안에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버거웠습니다. 그렇게 벌벌 떨며,

제가 하고 있는 이 행동이 알맞은 움직임인가요?

재차 확인하기만 바빴는데, 선생님은 아무런 지적도 꾸짖음도 없이 그저 경청하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 행동에서도 빛나는 움직임을 포착해 말해주시곤 했습니다.


덕분에 어느 순간 저는 존재할 힘을 얻었습니다.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제 스스로의 시선을 견디고 움직이는 제 몸을 느낄 여유가 생겼습니다. 움직이는 나의 몸을 감각하는 것은 정말로 즐거운 일입니다. 손톱 아래 여린 살부터 손가락의 관절, 두툼한 손바닥, 회전하는 손목, 구부러지는 팔꿈치, 움츠러드는 어깨, 경직되다가 툭 힘을 풀어내는 뒷목••• 감각 하나하나가 남의 소중한 물건을 빌려온 듯 낯설면서도 귀했습니다.



매주 한 번씩, 대략 8주에 걸친 이 움직임 워크숍을 다녔던 겨울은 정말 춥고, 어둡고, 긴장됐습니다. 그럼에도 온전히 감각하는 법을 배운 저는 불안에 떨리는 마음을 움직이는 몸 밖으로 내던지는 법을 깨달았고, 우울해 굳어진 마음을 온몸으로 흔들어 깨우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저는 여전히 불안하고 우울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꼭 껴안고 기쁨과 행복을 느낍니다. 안정을 누립니다. 모두 감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감정들입니다. 감각을 통해 불안과 우울을 껴안고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불을 덮어쓰고선 어두워 무서워하지 않고 포근한 촉감에 기뻐하는 삶을 노래해보려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