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를 살리는 심리상담 이야기
심리상담사는 여러 의사를 만나보라고 조언했다. 한 명이 아닌 두 명 이상의 의사를 만나 견해를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특히 큰 병일 때는 말이다. 처음 나를 수술했던 의사는 암이 발견되자 가슴을 전체 절제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병원을 옮기고 만난 두 번째 의사는 반드시 전체절제를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조금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나의 병변이나 암타입 크기 위치 등이 전체절제를 할 수도 있고 부분절제를 할 수도 있고 약간 판단이 경계선에 애매하게 걸쳐져 있는 듯했다. 수술날까지 고심을 하던 의사는 결국 수술 당일, 부분절제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 돌아보니 의사의 결정이 합리적이었고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첫 번째 의사는 약간 보수적인 성향으로 모든 가능한 위험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타입이었고 두 번째 의사는 경험이 많아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결정을 내리는 편 같았다. 환자는 같지만 의사의 처방은 달랐다. 심리상담사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무릎이 안 좋아 정형외과를 갔더니 의사가 수술을 권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인이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갔더니 거기서는 비수술 치료를 권했고 지금까지 수술하지 않고 무릎을 잘 쓰고 계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여러 의사를 만나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삶을 먼저 산 사람의 작은 팁 같은 거였다. 상담에서 매번 마음이나 행복이나 이런 추상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실제적인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그런 점이 좋았다. 상담사는 내담자와 같이 늙어가고 나이 들어가는 삶의 동반자 같기도 했다.
생존율, 가슴에 대못이 되어 박힌 단어
수술을 앞두고 유방암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알아보다가 ‘생존율’이란 단어를 보았다. 5년 생존율, 10년 생존율... ‘생존율’이란 단어를 보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것이 97%이든 86%이든 높다고 위안이 되지 않았다. 97명이 살아도 3명에 든다면 나에게는 죽을 확률이 100%인 거니까. ‘암’이 가진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게 0기이든 1기이든 4기이든 어쨌든 암환자는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5년, 10년 후에 살아있음이 확률이 되는 사람인 것이다. 그 사실이 몹시 충격이었다. 50살이나 되었지만 당장 죽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않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들이다. 나 역시도 당연히 나의 삶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아이들이 몇 살이지. 내가 10년을 산다면 그땐 애들이 몇 살이지. 서른이네. 대학 졸업하고 결혼하는 것까지는 볼 수 있을까. 애 낳을 때 친정엄마가 옆에 있어줘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까. 20년쯤 살 수 있다면 어떨까. 그때는 내가 70살이 되니까 아이들이 40대쯤 되면 설령 나에게 죽음이 찾아와도 괜찮을까. 덜 마음 아플까. 억울하고 애통하지는 않겠지.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인생의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당장 교통사고로 내일 죽을지도 모를 인생들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전혀 생각지 못하게 내 삶을 찾아온 암은 필연적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피할 수 없는 만남이었다.
수술을 앞두고 펑펑 울다
죽음이란 단어가 주는 무거움은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었다. 수술을 며칠 앞두고 그제야 그동안 미뤄두었던 감정이 나에게 다가왔다.
‘두려움’
결국 나는 평소 나를 각별히 생각해 주시던 교회 사모님께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안부인사를 하면서 괜찮은 척하려고 했는데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감정이 훅 올라왔다. 목소리가 떨리고 감정이 일렁였다. 그러자 사모님이 말했다.
“힘들면 힘들다고 해요”
그 말에 내 마음의 두려움을 꽁꽁 싸매어 놓고 있던 빗장이 툭 풀려버렸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고 갇혀있던 감정들이 와르르 쏟아져 흘러내렸다. 두 명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동승자는 아프다고 하니 사람들이 병문안도 가고 챙겨주는데 정작 더 많이 다친 운전자는 괜찮다고 말하니 사람들이 아픈 줄 모르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야 한다고 해주셨다.
그래, 나 너무 괜찮다고만 했구나. 괜찮아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힘들어도 되는데. 아파도 되는데. 두려워도 되는데. 씩씩하게 담담하게 잘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겁나고 불안한 모습은 철저히 감추었나 보다. 이까짓 암, 거뜬히 이겨내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50살이 되어도 수술이 겁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나처럼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역할에 나를 맞춰온 사람들은 자라지 못한 겁쟁이 어린아이가 마음속에 있다. 겉으론 씩씩한 척 일을 쳐내지만 속으로는 두렵고 겁이 난다. 솔직한 나를 보이지 못하니 계속 겉모습만 어른이 된다.
꼭 울지 않아야 어른인 것은 아니다.
이젠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