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병동에서 만난 사람들

암환자를 살리는 심리상담 이야기

수술은 힘들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나에게는 수술이 특히 힘들다. 혈관이 잘 나오지 않아 정맥주사 잡는 것도 여간 고역인 것이 아니다. 더구나 무통에도 부작용이 있어 첫 번째 수술 후에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가벼운 쇼크가 왔다. 남편이 급히 간호사를 부르러 가고 뛰어온 간호사가 이것저것 처치를 한 후에야 숨이 쉬어졌다. 마취도 힘들고 마취에서 깨는 것도 힘들고... 이런 첫 수술의 경험들 때문에 나는 수술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첫 번째 병원은 수술 첫날은 보호자와 함께 있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인데 두 번째 병원은 간호통합병동으로 보호자 입실이 안되었다. 남편은 수술실 입구에서 내가 베드에 누워 들어갈 때 나올 때 인사만 할 수 있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 불안감이 마음 한편에 있는 채 수술을 했다.

암병동에서 만난 사람들- 형님


내가 수술하던 날 6인실 병동은 다들 퇴원을 하고 아주머니 한분이 계셨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으신 이 분은 초면인데도 말을 탁탁 놓으면서 낯가림이 전혀 없었다.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는 형님이라고 불렀다.

이 형님은 몇 년 전에 갑상선 암을 진단받고 수술을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유방암이 다시 생겼다고 했다. 암뿐만 아니라 병원 경험도 많은 일명 ‘빠꼼이’이자 이 구역의 ‘고인 물’인 셈이었다. 암수술을 하고 근처 요양병원에 계시는 중인데 요양병원이란 곳이 비용이 보통 사악한 게 아니다. 실비보험 처리를 한다고 해도 이런저런 주사를 권하는 대로 맞다 보면 한 달에 수백만 원이 청구되는 고가의 비용이 발생한다. 형님도 요양병원 한 달 비용이 5~600이 넘어가자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여보고자 본원으로 잠시 피신을 온 것이었다.

그전날 입원해 있던 말기 중증환자나 항암부작용으로 힘들어하던 찐 환자들에 비하면 이분은 어찌 보면 ‘나일론 환자’인 셈이기도 했다. 이 분이 ‘신의 한 수’가 될지 어떻게 알았을까.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올라와서 그날밤은 몹시 힘들었다. 수술이 끝난 게 저녁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고 수술 후 6시간까지 물을 마시면 안 되었다. 아침부터 금식을 하는 중인데 물조차도 밤 11시가 넘어야 먹을 수 있었다. 목은 마르고 온몸은 고통스럽고 마취가스를 내뱉기 위해 숨을 계속 뱉어줘야 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힘들었다. 특히 보호자가 옆에 없으니 어디 힘들다고 하소연하기도 어려웠다. 다시 쇼크가 올까 두려운 마음도 들고 마취가 깨자 온몸에 찾아오는 고통에 나는 훌쩍훌쩍 울었다. 너무 아프고 힘들고 괴로웠다.

형님은 그런 나를 달래주고 괜찮다고 해주고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내가 끙끙 앓고 있으니까 “저래 자꾸 운다”며 보호자인 것처럼 간호사에게 설명도 해주고 계속 신경을 써주었다.

밤은 깊고 형님은 주무시는데 나는 잠들지 못하고 침대에 앉아있다가 침대탁자를 발 밑으로 내려놓는다는 게 손에 힘이 없어 탁자가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 소리에 누워 자고 있던 형님이 벌떡 일어나서는 “왜? 뭐 갖다주까?”하면서 물었다. 그 표정과 말투가 너무나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모습이어서 마음이 뭉클했다. 외롭고 힘들던 그 밤을 그렇게 형님 덕분에 꼬박 넘길 수 있었다. 그날의 고마움은 오래오래 내 마음에 남았다.



암병동에서 만난 사람들-할머니


다음날 비어있던 베드에 새로운 환자들이 속속 입원했다. 그중에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한분 계셨다. 체구는 자그마하지만 목소리가 힘이 있고 총기도 있으셨다. 최근에 남편과 큰아들이 연거푸 사망해서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했다. 아들 얘기만 하면 마음이 아프신 듯 눈물을 보이시곤 했다. 본인 연세가 많아서 암도 치료 안 하고 그냥 두려고 했는데 자식들이 전부 찾아와서 지극정성으로 할머니를 설득해서 결국 못 이기고 수술을 하기로 했다고 하신다.

살만큼 살았고 여한이 없다고 하시던 할머니. 다음날 수술이었는데 그날 늦은 밤 커튼 사이로 침대에 앉아계신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웅얼웅얼 무슨 소리가 들려서 보니 할머니가 침대에 걸터앉아 주름진 손을 비비며 기도를 하고 계셨다. 아무 탈 없이 수술이 잘 되게 해달라고 중얼거리시면서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셨다. 물 한 그릇 떠 놓고 달님께 빌 듯이 그렇게 한참을 비시던 할머니는 겨우 자그마한 몸을 침대에 누이시고 잠을 청했다.

살만큼 살았다고 말씀은 하셔도, 이까짓 암 그냥 내버려두고 죽게 되면 죽겠다고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할머니에게도 삶은 소중한 것이었다. 누군들 생명이 하찮은 사람은 없구나. 어두운 밤 할머니의 작은 등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암병동에서 만난 사람들-별이 된 말기암 환자


병동에서 만난 환자들 중 가장 마음 아픈 분이 계셨다. 이분은 재발을 해서 상태가 몹시 안 좋았다. 호흡이며 모든 것이 불안정해서 한밤중에 의료진이 와서 코와 목으로 석션 같은 걸 했다. 그 고통이 엄청 큰지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옆에서 듣기만 해도 내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의료진들이 1인실에 가자고 해도 격리되는 거 같다고 한사코 싫다고 하셨다.

고인 물 형님은 웬만한 환자들과도 안면이 많았고 이분에 대해 말해주었는데 처음 수술하고는 꽤 상태가 좋아졌었는데 다시 재발과 전이가 되고 나서는 영 상태가 안 좋다고 했다.

내가 이분에 대해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이분의 통화를 어쩔 수 없이 들은 후였다. 그렇게 기력이 없는 상태에서도 남편과 통화를 하면서 술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술상을 차리고 또 차리고 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꾸 그렇게 술 마시면 콱 죽어버릴 거라고 하였다. 그렇게 애끓는 잔소리를 포기하지 못하고 하시더니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서울에 가서 진료 본다고 이 분은 퇴원을 하고 서울로 갔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병원에 돌아왔다는 소식은 형님께 전해 들었다. 그때는 우리 병실이 아닌 다른 병실이었다.

서울에 가도 뾰족한 수가 없더라고 했는데 결국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걸 나중에 퇴원 후 형님과 통화하며 알게 되었다. 안타까운 삶의 한 순간이었다. 술 마시던 남편은 놔두고 나비처럼 자유로워지셨을까.

부디 그분이 평온함에 이르렀기를... 잠시 기도하는 마음을 가져보았다.



이전 06화힘들면 힘들다고 해요. 결국, 두려움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