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일처럼 하지 말아요

걱정했던 수술은 잘 끝났다. 수술한 날 힘들었던 그 고통과 두려움은 다음날이 되자 신기하게 사라졌다. 그때부터는 병실에 계신 환우들과 수다도 떨고 사과도 깎아먹고 나름대로 즐거운 순간들을 보냈다. 다들 아파서 입원한 사람들인데 그래도 모이면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니 또 하루하루가 잘 지나갔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겨드랑이 곽청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방암의 전이를 알아보기 위해 겨드랑이의 감시림프절 몇 개를 떼어서 검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하면 나중에 부종이 오기 쉽다. 평생 팔을 아끼고 무거운 것도 들지 못하고 조심조심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수술 마친 후 겨드랑이 절개를 안 했다는 말에 안도했다. 돌아보면 힘든 항암을 안 하고 패스한 것만 해도 격하게 감사할 일이다. 유방암의 트레이드 마크인 탈모와 모자를 겪지 않아도 되는 참으로 운 좋은 환자인 셈이다.


그럼 항암을 하고 머리가 빠지고 겨드랑이 수술도 한 환자는 불행한가? 그건 아니다.

암을 겪으면서 돌아보니 ‘불행 중 다행’을 찾는 게 참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어차피 암이 온 것이 반가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아니던가.

원치 않은 암이지만 내 삶에 이미 왔다면 이걸 괴로워하며 살든지 그나마 있는 다행들을 찾아서 감사하며 살든지 어떤 편이 나에게 나은 길일까. 법륜스님도 첫번째 화살은 맞아도 두번째 화살은 맞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마음 먹기에 따라 고통을 해석하는게 달라질 수 있다는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재발이 오지 않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라지만 또 재발이 오면 그 속에서도 감사한 일을 찾아내어서 하루하루 살아야 하겠지. 그런 마음이 암의 터널을 통과할 수 있는 용기가 되었다.


“저 언니는 머리카락 있네. 참 부럽다.”

그 후로도 종종 유방암 환우모임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그동안 머리카락에 감사한 일이 있었나.

당연한 줄 알았지.

그 당연한 것들이 새록새록 감사해졌다. 암으로 인해서 말이다.



병원을 퇴원하고 요양병원으로 옮겨 몇 주 푹 쉬고, 주는 밥 먹고 관리를 잘하고서는 일상으로 복귀를 했다. 한 달 휴직했던 직장도 다시 나가고 일을 시작했다. 그동안 일을 잠정 중단했었는데 그게 나의 내담자인 아이들이나 부모들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었다. 그래도 큰 불평 없이 기다려주신 분들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딱히 연차나 휴가 개념이 없는 프리랜서인 나에게 한 달간의 업무중단은 쉬운 일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도움 덕분에 어찌어찌 나는 다시 일상에 복귀했다.

그리고 한 달간 중단했던 개인상담도 다시 시작했다. 상담사는 내가 무리하지 않기를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평생 살아온 습관이 바뀌기가 쉽나. 나는 고정 출근하는 곳이 2군데에 중간중간 집단상담 출강도 있었고 수련도 받고 있었다. 이것도 은근히 신경 쓸게 많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프리랜서 치고는 꽉 찬 일정이다. 이 모든 일을 다 중단하란 말인가... 나의 질문에 상담사는 말했다.

“일을 일처럼 하지 말고 놀 듯이 하세요.”

힘 빼고 하란 말이다.

내 힘으로 하려고 애쓰고 용쓰지 말란 말이었다.


당시 나는 수련을 한 해 연기를 할지 고민이었다. 돈 버는 직장보다는 수련을 미루는 게 어찌 보면 쉬운 결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막바지에 와서 한 학기만 하면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수련을 미루는 게 너무 아까웠다. 특히 나는 필기시험에 먼저 합격하고 수련을 시작한 터라 이번 학기 요건만 채우면 되고 면접은 합격률이 높다고 하니 거의 확실하게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데 이걸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니 너무 조바심이 났다.


수련을 미룰까... 고민도 했었지만 상담사와 이야기를 하고서는 나는 '놀 듯이 수련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보고서를 쓸 때도 내 힘 다 빼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했다. ‘편하게 대충’, ‘할 수 있는 만큼만’ 이렇게 살기로 삶의 모드를 바꾸었다. 자꾸 용쓰고 완벽하려고 하고 칭찬받으려고 하는 것은 나의 인정욕구 때문이었다. 슈퍼바이저가 나를 칭찬하든 칭찬하지 않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인정에 연연하지 않게 된 것... 그것은 참 다행한 일이었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수련을 했다.


그렇게 쉬엄쉬엄 천천히 내 일상은 잘 봉합될 줄 알았다.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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