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불안은 눈을 가리는 것이네요
암환자를 살리는 심리상담 이야기
by 미술심리상담사 여정 Feb 16. 2024
이때쯤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들었던 거 같다.
남들은 방사선 치료가 하나도 어렵지도 않다고 했고 직장 다니면서도 얼마든지 한다는데 방사선 치료 때문에 병원을 옮기기까지 해야 했으니. 그리고 일도 그만두고. 이래저래 심난했다.
이 마음을 하소연할 곳은 심리상담사였다. 나의 상심과 좌절을 상담사 앞에 주절주절 풀어놓았다. 상담사는 측은해하며, 위로를 건네주었다. 일을 그만둔 것에 대해서는 내가 진짜 큰 결심을 했다는 걸 알아주었다.
“우리는 더 이상 젊지 않습니다.”
나는 50대, 상담사는 70대였으니 젊지 않은 건 사실이지.
상담사는 젊을 때처럼 일하면 안 된다고 했다. 젊을 때는 힘껏, 양껏 몰아붙이며 일을 해도 감당이 되는데 이제 우리는 그런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상담사 선생님은 주 2일은 상담소에 나오시고 나머지는 근교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올해 논농사를 짓는데 물대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일을 할 때는 신이 나서 하기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른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게 결국 몸살이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 신이 나서 힘든 줄도 모르고 일하는 게 내 모습이지. 안 힘든 게 아니었어. 단지 힘든 줄 몰랐을 뿐이야. 결국 내 몸은 지쳐가고 있었잖아. 내 마음이 외면했던 몸의 고통을 알아봐 줘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의 폐소공포에 대해서도 상담사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나 비행기 탑승이나 이런 부분은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MRI나 얼굴을 가리는 팩 등이 힘든 증상이 있었다. 나의 상황에 대해 상담사는 폐소공포보다는 불안장애에 가까울 수 있으며 나의 불안은 ‘눈을 가리는 것’에 있음을 알려주셨다.
눈을 가리는 것이라....
듣고 보니 그랬다. 치과에서 치료를 할 때 얼굴을 덮어 주는 천,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길 때 눈에 올려놓는 수건 이런 것들이 불편했다. 피부과 시술 패키지를 끊어놓고도 얼굴팩이 힘들어서 포기해버리곤 했다.
왜 이 부분이 불편했는지 돌이켜보았을 때 떠올랐던 것은 할머니가 앞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할머니는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나이가 들어서 실명을 하셨다. 잠시 우리 집에 같이 살았던 적이 있어서 할머니가 앞이 안 보이는 상태로 벽을 더듬더듬 짚어서 화장실에 가고 밥상 위의 그릇을 하나하나 만져가며 밥을 먹는 걸 보았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 뇌리에 할머니의 불편함이 마음에 새겨졌었나 보다.
‘얼마나 답답할까....’
무슨 반찬인지도 모르고 손으로 더듬어 가면서 수저로 떠 드시는 할머니 밥상 심부름을 하면서 느낀 마음이었나 보다.
‘무섭다’
눈이 안 보인다는 것은 이렇게 두렵고 무서운 일이라고 겁이 많은 내 마음이 긴장을 했었나 보다. 불안의 씨앗은 그렇게 내 마음에 심어졌던 거 같다. 그렇게 잠복해 있다가 인생이 별 탈이 없을 때는 고만고만하게 살았는데 암이라는 큰 위기를 만나고 삶이 힘들어지니까 이 불안이 불쑥 튀어나온 거 같다.
그날 할머니를 떠올리며 많이 울었다. 내 기억 속의 할머니는 내 다리를 주물러 주시던 인자한 분이었으니까. 앞이 보이지 않으셔서 내가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고 계속 다리를 주무르시던 할머니가 떠올라 마음이 뭉클했다. 성품도 인자하셔서 엄마에게 시집살이도 별로 없으셨던 거 같다. 그러니 엄마도 눈이 안 보이는 할머니를 한동안 집에 모셨던 거겠지.
‘할머니 참 고마운 분이셨구나....’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참 꽉 찬 듯이 행복했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