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쉽다던 방사선 치료, 가장 힘들었던 이유

암환자를 살리는 심리상담 이야기

남들은 제일 쉽다던 방사선 치료, 내게는 가장 힘들었던 이유


항암은 패스했지만 방사선은 피해 갈 수 없었다. 특히 나는 전절제가 아닌 부분절제를 했기에 남은 부분에 대해 방사선 치료를 해야 했다. 내 유방암 전문의는 방사선 치료 시작 전, 힘들어 하던 나에게 반드시 방사선 치료를 해야한다며 "약물처방을 해서라도 시킬겁니다."라고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방사선 치료는 3~4주 간을 매일 병원에 와서 방사선을 쬐게 된다. 시간은 10~30분 정도로 짧지만 매일 병원에 와야 한다는 것이 힘든 일이다. 어떤 의사는 방사선 치료에서 제일 힘든 것은 ‘매일 병원오기’라고 했으니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고들 한다.


대체로 수술 한 달쯤 지나면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는데 나에게는 몹시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나의 ‘폐소공포증’이다. 나는 폐소공포로 인해 MRI 촬영도 쉽지 않다. 수술할 때도 MRI를 못 찍는다고 수면마취를 시켜달라고 했을 정도다. MRI 때문에 하루 일찍 입원해서 찍기로 했는데 문제는 유방 MRI는 엎드린 자세로 촬영을 해야 해서 마취를 할 경우 기도확보가 어려워 위험성이 높다고 했다. 그래서 잘 안 해준다는 것이다. 이 병원에서도 마취까지는 아니고 진정주사를 놓고 촬영을 했는데 진짜 벌벌 떨면서 도와달라고 울먹이며 겨우 촬영을 마쳤다.


그런데 이 병원의 방서선 기계 모양이 MRI와 똑같은 것이다. 그걸 안 순간부터 걱정이 휘몰아치면서 불안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병원마다 방사선 기계 모양이 다른데 대부분의 병원은 사방이 뚫려 있고 환자가 베드에 누우면 기계가 다가와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방사선을 조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내가 있던 병원은 토모테라피라고 원통형 도넛 모양 통 속에 들어가는 디자인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사선 첫날. 나는 통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갑갑함을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 포기를 했다. 그리고 방사선 담당의 앞에 가서 펑펑 울었다. 이 병원에서 너무 하고 싶은데 안되어서 속상하다고.. 친절한 의사 선생님은 갑 티슈를 뽑아 주며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약처방을 해줄 테니 먹고 다시 시도해 보자고 했다.


허탈한 마음으로 터덜터덜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서러움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엉엉 대성통곡을 하면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안 되겠다. 병원을 옮기자!


전날 들었던 방사선 전원 가능한 병원들에 전화해서 방사선 기계 정보를 알아본 후, 다음날 바로 병원을 찾아서 전원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의사 선생님이 그중 본인이 근무했던 대학병원에 미리 연락도 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다. 정말 친절하고도 감사한 의사 선생님이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서류를 떼고 멀고 먼 대학병원을 찾았다. 서류를 등록하는데만 해도 한참 걸렸다. 원래 대기자가 매우 많은데 최대한 빨리 잡아주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일을 그만두기로.

프리랜서인 나를 한 달이나 쉬게 배려해 준 직장이라 미안한 마음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들은 더 그랬다. 이제 막 치료를 시작한 아이들, 라포형성이 되어서 치료효과가 나오기 시작한 아이들, 정서문제를 가진 일반아동들 몇 명은 정말 치료사 사정으로 놓을 수 없는 친구들이라 너무 고민이 많았다. 3년 차쯤 되던 직장은 이제 일도 손에 익고 딱 일하기 좋을 시점이었다. 인원도 차츰 늘어서 내 입사 이후 최고 실적을 달성하던 중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거 다 떠나서 도무지 전원이 어려워 보이는 몇 명의 아이들 때문에 마지막까지 고민했지만 결국 결심을 했다. 일을 그만두기로. 암을 진단받은 이후 다가온 고비들 중에서 가장 큰 산이었던 거 같다.


보호자들에게 사정을 알리고 급히 인수인계를 했다. 아이들도 너무나 아쉬워했다. 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장 애먹이고 말 안 듣던 애들이 왜 제일 밟히는지... 그중 00 이는 내가 참 안타까워하면서 정을 주었던 친구다. 학대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00 이는 엄마에게도 사랑이나 돌봄을 못 받고 있었다. 오히려 늘 야단만 맞았다.

사랑받지 못해 배고픈 아이. 사랑받지 못해 화가 난 아이.

마지막 수업 날, 00 이에게 말했다.

“00아, 너 멋져? 안 멋져?”

“멋지죠~”

“그래. 맞아. 넌 멋져. 꼭 기억해. 알았지?

엄마나 친구들이나 누가 너보고 뭐라고 하고 안 멋지다고 해도 믿지 마.

넌 멋져. 꼭 기억해. 알았지?”

몇 번이나 다짐하며 물었다.

“알겠어요~”

쿨하게 대답하는 00 이가 자신이 멋진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나는 3년간 일한 복지관 발달센터를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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