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주의자가 본 개막식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이 개최되고 있다. 전 세계의 관심이 개막식에 쏠렸다. 스타디움이 아닌 센강과 파리 시내 곳곳을 무대로 펼쳐진 야외개막식은 신선했고 파격적이었고 창의적이었다. 예술의 도시 파리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 개막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이렇게 개막식이 성대히 종료되었더라면 "역시 프랑스는 예술적이야!"라고 감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선수단 입장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했다. 우리나라의 국가명을 북한이라고 잘못 호명했고 결국 한국은 없고 북한만 두 번 불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당혹스러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역대 올림픽 개막식에서 국가 이름을 부르는데서 실수가 있었던 것이 있는가? 참가국의 국가 명칭을 확인하고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예행연습을 하는 것은 행사의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닌가? 무수한 점검과 확인, 행여나 있을 실수나 오류를 예방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있었어야 하지 않나? 더욱이 올림픽처럼 대규모 국제행사라면 행사의 기본에 대한 점검은 아무리 지나쳐도 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기본이 확보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개막식의 완성도는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이런 올림픽 개막식의 실수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아 넘길 수도 있다. '아, 우리나라처럼 분단국가라서 특이한 케이스가 드물잖아. 국가명이 헷갈릴 수도 있지. 어처구니없는 실수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여길수도 있다. 그러나 개막식을 보는 나의 감정은 그 정도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창의성과 예술성! 좋다. 고차원적이고 훌륭하다. 하지만 그 어떤 심오함을 표현하는 개막식일지라도 기본은 갖춰줘야 한다.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시스템과 체계가 완벽히 갖춰진 그 위에 창의성의 꽃을 피우는 것이지 기본적인 시스템이 허술한 상태에 꽃 피운 예술이란 와르르 무너지는 모래 위의 꽃다발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파리는 그런 기본에 집착하지 않는 곳일 수 있다. 똘레랑스(관용)의 가치를 가진 곳이 아니던가. 예전에 방문해 본 파리라는 도시에서 받은 개인적인 인상은 다양성과 허용이었다. 좋게 말해서 그렇지 솔직하게 말하면 '어수선하고 정돈되지 않음'에 가까웠다. 관광지에는 수많은 유색인종과 부랑인, 조잡한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까지 다양하게 뒤얽혀있었다. 시가지에는 관광객과 상인들, 걸인들이 자유롭게 뒤섞여 존재했고 심지어 거리에는 쓰레기며 쥐도 볼 수 있었던 거 같다. 수많은 요소들이 뒤섞여 있는 그 형상이 자연스럽고 낭만적이긴 하지만 통제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처럼 불안이 높고 통제지향적인 성향의 사람에게는 오히려 독일이 더 편안했다. 엄격하게 절제된 건물과 시가지의 모습, 계획적인 거리며 사람들에게서 안정감을 느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파리는 너무 자유롭고 개방적이었고 나는 그 자유로움이 불편했던 거 같다. 아마 너무 흐트러져 있다고 느낀 것 같다. 프랑스에서 느낀 그 복잡하고 어수선하고 정리되지 않은 느낌. 지나치게 자유롭게 펼쳐진 느낌. 그것이 이번 개막식을 보면서 연결되어 떠올랐다.
어쩌면 파리의 에너지는 자유로움과 창조성에 치우쳐 있나 보다. 기본적인 구조와 시스템을 안전하게 확보하려는 욕구보다는 말이다. 안전한 시스템도 갖추면서 예술성까지 있으면 참 좋으련만 사람도, 국가도 에너지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 보니 안전하면서 예술성까지 갖추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안전을 확보한 후 그다음의 상위 차원으로 이동하는데 파리는 기본을 갖추는 것을 과감히 건너뛰고 예술성이 집중한 듯하다. 이 점이 불안이 높은 사람에게는 다소 유감스럽게 느껴진다. 야외행사의 가장 큰 변수는 날씨인데 이번 개막식 또한 비가 내리는 와중에 치러졌다. 공들여 준비한 단복은 비닐 비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상황 또한 저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 좀 더 세심한 대안이 있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런 점들이 불안해서 기본시스템을 갖추고 또 갖추려고 하는 완벽주의 성향인 나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왔다.
각자의 마음에 따라 개막식을 보는 감정도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무척 낭만적이고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감동적인 장면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멋져도 식사나 숙소, 교통 등 기본이 탄탄해야 하는거 아냐? 기본이 먼저 갖춰진 다음에 예술이지!'하는 마음이 들거나 개막식의 실수를 보며 불편한 감정이나 못마땅한 마음이 들었다면 당신은 어쩌면 안전지향적인 사람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