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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인 나로 살아가기

오랜만의 안부전화를 대하는 마음

오랜만에 예전 직장 상사에게 연락이 왔다. 

"어떻게 지내요?"

안부를 묻는 말에 이렇게 저렇게 지내요라고 답을 하고 반가운 마음을 주고받았다. 아이들이 얼만큼 자랐고 여전히 어디에 살고 있고, 그분은 이사를 하셨고... 등등의 오랜만의 소식을 나누었다. 요즘 무얼 하는지 얘기를 할 때 작은 상담실을 열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마음이 잠시 주춤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뭔가 감정이 내 마음에서 일렁였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근황을 설명하면서 들었던 이 감정이 무엇일까. 통화를 마치고 생각해 보니 짧은 순간이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여러 가지 감정이 스쳐 지나갔던 거 같다. 

퇴사한 이후 프리랜서로 살며 작은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는 나는 예전의 직장 상사에게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하고 소위 '승승장구 잘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 같다. 하지만 내 삶은 그다지 커다란 업적도 없고 자랑할만한 성취도 없다. 아직은 별 내세울 것이 없는 나의 현실을 순간적으로 자각하고 마음이 쪼그라들었던거 아닐까. 우월감과 성취감을 향해서 달리는 습성이 열등감에 두 발을 딛고 다시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아유... 그냥 사무실이 있긴 한데 아직 규모도 작고 조그맣게 운영 중이에요."라고 말했다. 구구절절 설명이 길어진다. 초대하기에는 부끄럽고 누추하다는 마음에 차 한잔 하러 오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꿀꺽 삼킨다. 번듯하고 사업도 많이 하고 그렇게 운영을 잘하는 상담실이면 좋을 텐데 내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내 마음은 아직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나 보다. 마음이 위축되고 이러면 안 될 거 같고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고 말이다. 

'언젠가, 자랑할만하게 되면 그때 당당히 소식을 전해야지'

이런 마음도 한편은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이제는 그렇게 성공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든다. 그리고 나는 몇 년이 지나도 '안심하고 자랑할만한' 상태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현실자각도 따라온다. 어쩌면 나는 그럭저럭인 것이 본모습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음을 고쳐먹는다. 

나는 그렇게 잘나지도 않고, 

잘날 필요도 없고, 

잘나지 않음에 대해 위축되거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나의 잘나지 않음에 대해 전혀 실망할 필요도 없다. 

그럭저럭인 내 모습으로도 나는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하고 소중하고 감사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작고 편안한 상담실에 들어서면서 생각한다. 

화려한 인테리어에 많은 직원들이 일하는 대단한 상담실은 아니지만 이 낡고 소박한 상담실이 얼마나 나에게 편안함과 아늑함을 주는 공간인지. 그걸로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손꼽는 유명인이 아니면 어떤가. 중년의 나이에 새롭게 대학원을 다니고 직업을 바꾸고 자격증을 따고 상담실을 열고 이만큼 온 것만 해도 내 역량으로는 벅찬 일이었다. 이만큼까지 온 나를 아낌없이 칭찬해 주련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칭찬을 받으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있으면 참 좋겠지만 없다고 불행하지는 않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충분하다. 


지금까지 그럭저럭인 나를 부인하면서 

더 열심히 달리고 채찍질하면서 살아왔다면

이제는 그럭저럭인 나를 인정하고 수용해야지. 

받아들이고 감사해야지. 

'대단하지 않으면 어때'

'이만하면 괜찮다.'

그것이 과대 자기를 내려놓는, 요즘 나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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