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행동으로 바꾸며, 나를 다시 써 내려간다
딸이 “엄마, 은중과 상연 보자”라고 했다.
어두운 내용은 피하고 싶은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딸은 이미 시청 버튼을 눌렀다.
OTT의 무서운 점은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한다는 것.
결국 토요일 밤을 꼬박 지새우고, 새벽 여섯 시에야 눈을 붙였다.
세 시간쯤 자고 급히 서점으로 향했다.
딸은 말했다.
“엄만 너무 가볍고 유쾌한 것만 좋아해서 여운이 없어.”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드라마 속에서 나는 처음엔 상연이라고 생각했다.
상연의 불안, 노력, 그리고 버티는 힘이 내 모습 같았다.
그런데 13회쯤 가니, 딸의 말처럼 나는 어쩌면 은중이었다.
상연이보다 현실적이고, 상처를 알고도 다시 웃는 사람.
힘듦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나는 늘 생각했다.
‘나는 두려움과 어둠을 잘 이겨내지 못하는 약한 사람이다.’
그래서 반대로 행동했다.
두려울수록 새로운 일에 뛰어들고, 지루할수록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열정적이고, 도전적이고, 실행력 강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사실, 그건 두려움을 이기는 내 방식이었다.
삶이 조금 버겁다고 느껴질 때면 나는 늘 서점으로 향한다.
신간 코너 앞에 서서, 그날 끌리는 제목의 책을 10권쯤 집어 든다.
읽고, 필기하고, 그 안에서 지금의 나를 바꿀 실천거리들을 찾아낸다.
몰입하고, 몰아붙이다가, 어느 순간 ‘이 정도면 됐다’ 싶으면 또 다른 관심으로 옮겨간다.
그래서 나는 최고가 되진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어간다.
매일의 루틴은 단단하다.
아침엔 스트레칭, 따뜻한 물 한 잔, 걷기, 반신욕, 출근 준비.
퇴근 후엔 산책, 정리, 그리고 책 읽어주는 유튜브를 들으며 잠이 든다.
지난주는 재테크, 그 전주는 요리, 오늘은 고전철학.
그리고 그 속에서 **서정윤의 「홀로서기」**를 만났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중학교 때 친구에게 선물받은 시집의 구절이 보이자 반가운 맘에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부터 떠올려 본다.
그 문장을 읽으며 생각했다.
‘그래, 나는 늘 누군가의 부러움 속에서 살아왔구나.’
아이를 키울 때도, 일할 때도, 배울 때도 나는 내 방식으로 진심이었다.
그 결과가 완벽하지 않아도, 이제는 아이들이 내 선택을 인정해 준다.
그걸로 충분하다.
이제는 안다.
나라는 브랜드는 이미 완성되어 있다.
다만 그걸 세상에 보여줄 ‘배움의 부지런함’이 필요할 뿐이다.
모임에 참여하고, 글을 쓰고, 나를 표현하면서
오늘도 나는 내 브랜드를 조금씩 성장시키고 있다.
50이 넘은 지금,
나는 여전히 배우고 싶고,
도전하고 싶고,
무엇보다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싶다.
나는 상연처럼 흔들리지만, 결국 은중처럼 살아낸다.
그리고 그게, 나를 브랜드로 만드는 나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