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가지 못했던 삶의 패턴을 다시 생각하게 한 순간
책을 읽다 만난 화가의 그림이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처음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림이 특별히 화려한 것도 아니었고,
처음 보는 장면도 아닌데
눈이 오래 머물렀다.
그래서 잠깐 책을 덮고
검색을 해봤다.
그리고
‘아…’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좋아하던 그릇에
늘 있던 그림이었다.
그동안은 예쁘다는 이유로,
분위기가 좋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왔던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그랜마 모제스였다.
75세에 그림을 시작해
101세까지 그림을 그린 사람.
늦게 시작했다는 말보다
오래 멈추지 않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삶이었다.
그 순간,
그림보다 내 삶이 먼저 떠올랐다.
나는 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루틴이 있었고
새로운 도전을 멈춘 적도 없었다.
성실하게 살았고,
크게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그런데도
유명한 성공 스토리는 없다.
서점에서 돌아오는 길에
딸에게 그런 말을 했다.
“나도 비슷하게 사는데
왜 내 이야기는 성공담이 없을까.”
딸은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다섯 단계를 가는데
나는 늘 세 번째에서 멈춘다고.
처음 시작하는 단계,
조금 익숙해지는 단계,
그리고 잘 안 되기 시작하는 단계.
그 지점에서
“이건 아닌가 보다” 하고
조용히 내려온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실패가 무서웠다기보다
헛수고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늘 적당히 잘 살았고,
대신 끝까지 간 이야기는 없었다.
낯익은 그림 앞에서
내가 멈췄던 이유는
어쩌면 그것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늦게 시작하는 것보다
중간에서 내려오는 일이
내게는 더 익숙했다는 사실.
그래서 요즘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보다
조금 더 오래 머무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잘 안 되는 구간에서도
“이건 아닌가 보다”라는 말을
조금 늦게 하기로.
오늘의 나는
끝을 내겠다고 다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중간에서 내려오지 않겠다는
임시 결론만은 가져가 보기로 했다.
그날,
낯익은 그림 앞에서 멈췄던 순간은
내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라는 신호였던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