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여유를 기꺼이 딸의 '내일'로 바꾼 날

탕진된 것은 나의 상상이었을 뿐, 우리에겐 새로운 길이 열렸다

by 냠냠


​2026년은 나에게 각별한 해였다. 나를 위해 살겠노라 다짐하며, 오직 나만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아껴둔 자산이 있었다.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누릴 '여여(如如)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 돈은 내게 단순한 액수가 아니라,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고 싶다는 일종의 독립 선언서였다.


​하지만 그 즐거운 상상은 한 달을 채 가지 못했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채무는 내 인생의 다음 챕터를 위해 마련해 둔 여유를 단 이틀 만에 삼켜버렸다. 아들은 기별도 없이 전화번호를 바꾸고 집을 나갔지만, 그 아이가 남기고 간 짐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었다. 통장 잔고가 비워진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남겨진 카드값과 여전히 갚아야 할 채무들... 나는 아들의 짐을 대신 짊어진 채, 얼마나 더 벌어야 이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막막함 앞에 섰다.


​그 막막함 속에서 나를 깨운 것은 늘 감정 표현이 서툴던 딸아이의 울먹임이었다. 전공 공부와 실습을 병행하며 딸은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해 깊은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아빠가 권하는 안정적인 미래와 자신이 정말 가고자 하는 길 사이에서 아이는 오랫동안 숨죽여 울고 있었다. 엄마의 헛헛함조차 채워주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딸의 눈물을 보며 나는 결단했다.


​나를 위해 상상했던 여유로운 시간을 잠시 접고, 딸이 스스로 원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기로 했다. 20년 넘게 타지에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남편을 설득해 딸의 선택을 허락받았고, 아이가 오롯이 자신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딸의 꺾일 뻔한 눈동자에 다시 생기가 도는 것을 보며 나는 아이에게 약속했다. 결과가 어떻든 묻지 않겠노라고, 그저 네가 원하는 오늘을 살라고.


​그로부터 3일 뒤, 나는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챙겨 든 길에서 1년 만에 언니를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 아는 척을 하지 않았고, 언니가 먼저 떠난 자리에 홀로 남으며 나는 비로소 '절연'이 현실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아흔을 바라보는 시어머니는 여전히 우리가 드리는 생활비가 없으면 하루도 살아가기 힘드시다. 부모님 봉양부터 자식의 빚까지, 여전히 세상은 나에게 '희생'을 요구하며 나를 벼랑 끝으로 민다.


​더는 끌고 갈 수 없었던 인연의 끈을 놓으며, 다시 집 나간 아들을 떠올린다. 자산도 여유도 모두 쏟아부어 아들의 허물을 덮어주었지만, 정작 그 아이는 곁에 없다. 비참함과 억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오다가도, 결국 남는 것은 간절한 기도 하나다. 도망치듯 나간 아들의 그 무책임한 선택이, 역설적으로 그 아이 인생의 진짜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그리하여 언젠가 그 아이가 스스로의 삶 앞에 떳떳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다시 제자리다. 아니, 어쩌면 더 깊은 수렁이다. 갱년기의 열병 속에 홀로 도전하려던 나의 계획들은 잠시 멈춰 섰고, 나는 다시 무거운 짐을 지고 일터로 향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나를 위해 상상했던 즐거움이 잠시 유예되었을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나, 정말 잘 살 수 있겠지?


거울 속의 나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자식의 빚을 짊어지고, 다른 자식의 진심 어린 선택을 지지하며, 아픈 관계를 스스로 매듭지으면서도 누군가의 생계를 끝까지 책임지고 있는 나는 이미 충분히 경이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비어버린 통장과 갚아야 할 채무의 끝에서 나는 다시 나만의 소박하고도 위대한 시작을 설계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낯익은 그림 앞에서, 나는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