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상해의 사랑, 오늘의 사랑과 다를 바 없네
허우 샤오시엔의 <동년왕사>와 <연연풍진>을 본 적이 있다. 멀리서 한 인간의 인생을 조망하는 듯한 담담한 대화를 옆에서 엿듣는 듯한 경험이었다. 19세기 말 상하이, 고급 유곽을 꽃의 집이라고 했으며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상하이의 꽃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영화 <해상화>이다. 감독의 다른 작품 <밀레니엄 맘보>는 2001년 대만의 불안정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해상화>는 당시 상하이에 존재했던 사랑의 단상을 담았다. 이 영화는 분명 꽃(기생)을 비추고 있지만,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꽃이다. 손님의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 그것이 재정적인 지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불안정한 해상화의 인생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줄 상대를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다. 손님들의 지원으로 화려하게 꾸민 유곽은, 그럴수록 왜인지 모르게 초라하게 보인다. 그들의 집(유곽)을 채우는 것은 술 냄새와 빽빽한 아편 연기뿐이다. 손님 그리고 관객의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수 있겠다. 이 꽃을 사랑으로 다가가야 하는지, 더 나아가 사랑으로 볼 수 있는지. 영화는 확실한 답을 주지 않는다.
영화의 주축은 관리 ‘왕’과 그가 찾는 유곽의 기생 ‘소홍’의 이야기. 소홍의 빚을 다 갚아 주고 결혼하고자 했던 왕, 그러나 모호하고 쌀쌀맞은 반응만 보이는 소홍이다. 여느 연인들처럼, 서로의 확신과 희생을 원하고 상처를 주고받는다. 다른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왕은 소홍을 두고 다른 기생 ‘혜정’과 떠나지만, 혜정 역시 소홍과 다를 바 없이 왕에게 전적인 사랑을 주지 않는다. 늦게나마 소홍은 ‘당신이 떠나면 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라는 무책임한 말을 왕에게 건넨다. 유곽에서의 사랑은 보편적인 사랑과 다르다. 물질적인 것이 손님-기생 간의 사랑에서 출발선이 된다. 어떻게 보면 계약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너는 나에게 (경제적) 자유를 주고, 그렇다면 나는 너에게 사랑을 주겠다는 것. 그러나 이 지점에서 다른 의문이 든다. 이것이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나누고 있는 사랑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 않은지.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해상화>는 이 둘을 롱테이크로 천천히 그리고 오래 보여준다. 그들이 활동하는 장소는 기생의 유곽과 친구들과 자주 모이는 식사 장소, 이렇게 두 곳이다. 한정된 로케이션과 샷 구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되레 인물들의 감정선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미쟝센을 충분히 음미할 시간을 준다. 간간하게 켜져 있는 주황빛 조명은 그들의 이야기에 특색을 입혀주고, 정적인 샷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대화를 듣고 있다 보면 그들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청자가 되는 듯하다. 그리고 이 철저한 정제됨은 유곽에서 갇혀 지내는 기생, 손님과의 결혼을 통해 그곳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그들의 고립됨에서 비롯되는 답답함을 은연중에 흘려 보인다.
분명 사랑을 필두로 진행되는 스토리를 보이고 있지만, 자극적이지도 감동적이지도 않다. 큰 감정의 요동 없이, 누군가의 일기장을 읽고 있는 것처럼, 담백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사랑한 것일까’라는 혼잣말만 남기게 하곤, 영화는 끝이 난다. 인물들의 현재와 미래는 중요치 않고, 그 시대 속에서 어떤 하루하루를 보냈는지를 조망하게끔 한다. 그것이 허우 샤오시엔의 능력이고, 내 질문에 대한 답이 되어준다. 그런 사랑을 나눌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공간적 맥락을 고려하여 우리 모두 그들의 사랑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겠다. 또, 우리가 지금 나누고 있는 사랑 역시 수많은 조건 위에 놓여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볼 시간을 주는 작품이 <해상화>이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