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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리얼 Sireal Feb 05. 2018

내가 사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사케를 전달하는 두 번째 메시지

동장군이 곁에서 잠시 멀어진 날이 적당한 어느 날. 사케를 마시러 갔다. 마시러(X) -> 공부하러(O). 어쨌든 사케에 대해 1도 모르는 네 명의 중생들이다. 집 근처 사케 전문가가 있다는 가게로 갔다. 먼저 요리를 주문한 후 요리에 맞는 사케 추천을 부탁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더라 사케 전문가는 없었고 결국 사케리스트를 보며 우리가 주문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주문한 사케가 등장했다. 그때! 자신을 돌아보았다. 난 아직 사케의 라벨조차 제대로 읽을 줄 모르더라.


사케를 공부한다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라벨도 제대로 읽을 수 없다면 공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죄송하지만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 착안한 주제.

내가 그의 라벨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술이 되었다.

혹시나 아직 1편을 못보셨다면 먼저 보고 오시는 걸 추천한다. 나름 이어지는 메시지라.

시노미네 린린 준마이긴조 무로카나마겐슈

우리 사케란 녀석의 몸매 한 번 훑어보자. 사케의 라벨에는 3가지가 있다. 몸통라벨, 어깨라벨, 뒷면라벨. 순서는 내가 사케병에 눈이 가는 순서다. 다른 사람들도 이 순서대로 눈이 가지 않나 하는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에 따라.


각 라벨별로 담고 있는 정보는 겹치는 경우가 있다. 알코올분이 몸통라벨에도, 뒷면라벨에도 적혀 있듯이. 또한, 양조장마다 라벨에 적혀 있는 위치가 다르다. 일본주조, 산도가 보통은 뒷면라벨에 적혀있지만 몸통라벨에 적혀 있기도 하다. 따라서 라벨별 주력 정보에 대해서 알아보자. 일본어를 알면 좋겠지만 일본어를 몰라도 사케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이 글의 숨겨진 목적이다.




1. 사케의 흠잡을 데 없는 얼굴(몸통라벨)



1-1 디자인

사케 병을 딱! 보면 뭐부터 보이는가? 바로 라벨의 디자인이다. 사케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몸통라벨. 라벨 디자인은 양조장에서 사케를 나타내고 싶은 이미지, 모양, 형태 등을 그 조그마한 곳에 깡그리 쓸어 담았다. 따라서 라벨 디자인만으로도 사케 맛을 느껴볼.. 수 있다고.. 하던데.. 아직 그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어느 정도 사케를 맛보고 스타일이 잡혀가는 과정이라면 디자인만 보고 사케를 고를 수도 있다. 옷이 예쁘면 입어보고 싶고, 음식이 예쁘면 먹어 보고 싶듯 라벨이 예쁘면 마셔보고 싶은 것처럼.


1-2 이름, 특정명칭

우라가스미 준마이

몸통라벨에는 당연하게도 사케의 이름과 특정 명칭(준마이, 준마이긴조 등)이 적혀있다. 자기 이름 제대로 불러달란 듯이. '카메이즈미 준마이긴조 나마겐슈 CEL-24’, ‘우라가스미 준마이’, ‘시노미네 린린 준마이긴조’와 같이 말이다. 한자로. 나는 라벨만 봐선 읽을 수 없다. 지금까지 먹은 사케도 겨우 알고 있는 정도다. 제대로 알고 싶다면 사케 전문가에게 묻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일본어를 모르는 나는 뒷면라벨을 본다. 정식 수입품은 식품위생법에 따라 한글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준마이긴조 나마겐슈 CEL-24

뒷면라벨에 적힌 정식 수입명칭을 읽어도 사케 전문가들이 말하는 명칭이랑 다른 경우도 있다.  내 인생 최초의 사케 ‘카메이즈미 준마이긴조 나마겐슈 CEL-24’가 그렇다. 수입명칭은 '준마이긴조 나마겐슈 CEL-24’로 적혀 있지만 사케 전문가들은 앞에 제조사인 ‘카메이즈미’를 붙여서 불렀다. 이래서 사케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구나 싶다.


음식점 또는 주점의 사케리스트에는 간혹 특정 명칭이나 제조방법만 이름으로 적어놓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에 갔던 가게는 월계관 나마죠조를 ‘나마죠조’라고만 표기해놓고 있었다. 물론 표기방법은 사케리스트를 만드는 사람 마음이겠지만 우리는 정확한 이름을 알고 싶지 않은가?


1-3 제조사 및 제조일자

한자를 몰라서 읽지 못하는 제조사, 양조장 정도는 쿨하게 무시하고 있다가 뒷면라벨에서 찾아보자. 자신만의 사케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선 양조장의 스타일을 기억하는 게 좋기 때문에 양조장의 이름도 같이 알고 있는 걸 추천한다. 고급 사케를 마실수록, 사케를 깊이 알아갈수록 무시할 수 없는 게 양조장만의 스타일이다. 그리고 제조 일자와 알코올분 등이 적혀 있다.

 



2. 사케의 아찔한 쇄골(어깨라벨)

왼쪽 : 시노미네 린린 준마이긴조 무로카나마겐슈 / 오른쪽 : 우라가스미 준마이

두 번째로 눈이 가는 라벨은 어깨라벨이다. 사케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적는다. 준마이, 준마이긴조, 준마이다이긴조와 같은 특정명칭. 나마자케, 나마겐슈, 무로카나마겐슈와 같은 출하 전 처리방식. 특별한 효모, 원료미(쌀) 등이다.


2-1 출하 전 처리방식

여기서 출하 전 처리방식에 대해 짚고 가자. 출하 전 처리방식은 여과, 가수조정, 가열처리에 따라 3가지로 분류되며 가열처리에도 순서에 따라 2가지가 있다.


나마자케(生酒)는 침전물이나 이물질을 제거하는 여과와 가수조정을 하고 가열처리를 안 한 생주(生酒)다. 가수조정(加水調整)이란 알코올 함량을 맞추기 위해 물을 섞는 걸 말한다. 나마겐슈는 여과만 한 생원주(生原酒)다. 가수조정과 열처리를 하지 않았다. 무로카 나마겐슈(無濾過生原酒). 여과조차 하지 않은 진짜 쌩이다 레알(Real)! 여과도, 가수조정도, 가열처리도 하지 않은 진정한 사케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보관과 저장, 운송의 어려움이 있어서 찾기 힘들었지만, 기술의 발달로 인해 요즘엔 쉽게 찾을 수 있다.


쉽게 외우는 방법은 일단 셋 다 가열처리를 안 한다. 두 번째는 가수조정. 나마자케(生酒)는 원주(原酒)가 아니다. 물을 초큼 탔다. 나마겐슈(生原酒)는 여과만 거친 것이다. 무로카나마겐슈(無濾過生原酒)는 이름이 길다. 무여과라는 단어가 앞에 붙었기 때문이다. 쉽게 외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유는? 내가 안 외워져서 혼자 연구를 해보았기 때문이다. 하하.


2-2 가열 처리 방식

일반적으로 사케는 가열처리를 숙성 직전, 숙성이 끝난 후 병에 담기 직전 총 2번에 걸처 열처리를 한다. 이 과정에서 미생물들이 다 죽어간다고 보면 된다. 나마즈메와 나마죠조는 열처리를 한 번만 한다. 나마즈메는 숙성 직전, 나마죠조는 병에 담기 직전이다.




3. 사케의 MRI(뒷면라벨)

야마와 준마이긴조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보스 나오셨다. 해당 사케에서 중요한 정보를 모두 다루고 있는 뒷면라벨이시다. 앞서 말한 몸통라벨, 어깨라벨의 내용을 모두 포함한다. 원재료, 알코올분, 정미 비율, 제조 일자까지 모두 있지만, 뒷면라벨에서 중점적으로 보아야 할 것은 정미 비율, 일본주도, 산도, 아미노산도, 주조연도 5개다.


3-1 정미비율(精米比率)

정미 비율은 정미율, 정미보합(精米歩合), 도정률 등 다양한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쌀을 얼마나 깎고 쌀의 심백으로 만들었는지다. 자세한 내용은 1편을 참조하면 된다.


뒷면라벨에서 중요한 것은 5가지지만 뒷면라벨에서 공부하고 싶은 것은 딱 3개. 바로 사케의 맛을 수치화시킨 일본주도, 산도, 아미노산도다. 라벨에서 저 3개만 알면 사케 마실 준비는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3-2 일본주도(日本酒度)

일본주도는 사케의 단맛과 쌉쌀한 맛의 척도를 나타낸다. +숫자가 커질수록 쌉쌀한 맛(카라구치) -숫자가 커질수록 단맛(아마구치)를 나타낸다. 쌉쌀한 맛은 알코올 때문에 나는 맛이다. 단맛은 쌀이 분해되면서 나오는 당분 등에 의해 나타난다.


카라구치를 매운맛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음식 먹을 때 매운맛이 아니라 단맛의 반대되는 맛을 나타낼 뿐이다. 실제로 매운맛이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쌉쌀한 맛과 단맛은 단순하게 결정되는 일이 아니다. 유산, 사과산 등 다양한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다 복잡한 부분이라 간단하게 쌉쌀한 맛(카라구치)과 단맛(아마구치) 정도가 있다는 것만 알고 넘어가자.


3-3 산도(酸度)

발효를 거치면서 생긴 산, 사과산, 유산, 호박산 등 사케에 들어있는 산의 총량을 나타낸다. 산도는 0~3까지 정도 있으며 1.0, 1.6, 2.0 소수점으로 표기한다. 산도는 1.4가 기준이다. 그리고 복잡하다. 산도가 높고 일본주도가 낮으면 농후한 아마구치, 산도가 낮고 일본주도가 높으면 담백한 카라구치 등이다. 1.4보다 낮다고 담백하지 않고 1.4보다 높다고 꼭 농후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간단하게 1.4가 기준이며 일본주도와 함께 맛에 영향을 미친다는 정도만 알아두고 넘어가자. 술은 즐기는 건데 너무 어려우면 싫으니까.


3-4 아미노산도(アミノ酸度)

사케에 포함된 아미노산의 농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1.3~1.7 정도이다. 일본주도, 산도와 마찬가지로 사케의 맛에 영향을 미친다. 사케의 아미노산에는 아르기닌, 티로신, 세린 등이 있다. 간단하게 아미노산도가 높을수록 농후하고 깊고 풍부한 맛이 나며 낮을수록 담백하고 은은하고, 옅은 맛이 난다. 사실 내가 쓰면서도 무슨 맛인지 와닿지 않는다. 어떤 느낌이 풍부한 느낌인지 알 수가 없거든.


3-5 주조연도

사케는 1년이 지나면 코슈(古酒)로 불리게 된다. 구매 후에도 숙성을 시키는 것이다. 숙성 후 더 맛있어지는 것도 있지만 나마(生)의 경우엔 빨리 마시는 게 좋다. 사케의 주조연도는 BY(Brewery Year)25, BY26으로 표기한다. 일본식 표기방법인데 자세한 건 다음 기회에.


3-6 수치의 비공개

일본주도, 산도, 아미노산도는 사케의 맛에 중요한 수치지만 표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많은 판매사가 공개의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수입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비공개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양조장에서 수치를 비공개로 해놓은 것인데. 양조장의 비공개 이유는 판매처와는 확연히 다르다. 사케는 수치로 아무리 표현해도 결국 자신이 느끼는 맛이 중요하다. 어떤 양조장에서는 수치로 사케의 맛을 단정 짓게 하지 않기 위해 비공개한다.




겨우 두 번째 메시지인데 이렇게 어려워도 되나 싶다. 술은 그저 좋은 사람과 좋은 기분으로 맑고 청아한 소리를 짠! 하며 마시면 되는 건 줄 알았다. 딱 기초. 그러니까 '라벨을 보고 어떤 사케인지만 알고 마시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다음 편에 이어질 사케의 맛과 향, 표현 방법 등은 기초를 넘어선 단계라고 생각한다. 아직 내가 느끼는 맛과 향을 이 단어로 표현하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표현하는 단어 자체에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론은 더 많은 사케를 마셔보고 공부해보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잘못된 정보가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란다. 안 아프게. 보다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 사케에 대해 소통하고 싶은 사림은 언제나 환영이다. 댓글이든 SNS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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