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학 처분을 받았다. 정학 기간 동안 나는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주워야 했다. 살피려 한 것은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학교 분위기가 달라졌고, 나를 향한 시선이 달라졌다. 정학 기간이 끝나고 등교를 하니 마침 토요일이다. 여느 토요일과 다름없이 교모가 돌아간다. 내 차례가 돌아오는데 어라. 교모가 나를 건너뛴다. 내 앞에 앉은 놈이 바로 뒤에 앉은 내게 주지 않고 내 뒷자리 좌석으로 교모를 전달하는 것이다. 나는 그날 이후로 교모에 돈을 넣은 적이 없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동훈이 나를 불러 세웠다.
"야. 내랑 어디 좀 가자."
나는 태연한 척하며 따라섰지만 실은 태연하지 못했다. 이놈이 또 서클을 단체로 끌고 와서 나에게 보복을 하려는 건가. 티 나지 않게 교복 바지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도로쿠 칼이 잘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동훈과 같이 버스를 탔다. 동훈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훈이 가는 대로 그저 따라 걸었다. 버스에 내려 시장 끝자락을 지나니 굴다리가 나왔고, 그 밑을 지나니 담이 보였다. 담을 넘으면 철길이 나오는데 그 철길 양옆으로 우거진 숲이 있다. 그 숲으로 나를 데려갔다. 해가 잘 들지 않는지 그늘로 어둑하여 서늘했고 적막했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웅성대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제야 이곳이 어디인지 알겠다. 1학년생들도 보이고, 2학년 다른 놈들도 보이고, 3학년 선배들도 있는데 더러는 고등학생 선배들까지 한 둘씩 보이는 곳. 서클이다. 그들의 아지트이다. 동훈은 그곳에 모인 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윽고 나의 어깨에 손을 턱 하고 올리더니 그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야가 도로쿠입니다."
그리고는
"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한다.
나는 매일 동훈과 그곳에 갔다. 학교 끝나면 끝나는 대로. 주말이면 주말인대로. 그곳은 같은 동 소재의 중고등학생 서클이 모이는 곳이라 우리 학교 애들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 애들도 있었다. 토요일은 그곳에 가면 여중 애들을 볼 수 있었다. 여하튼 그 모임에서 나는 꽤 눈에 띄는 편이었다. 귀여운 축에 속하는 외모와 깡촌에서 나고 자랐다기에는 거짓말처럼 뽀얀 피부와 더불어 그들이 듣기에는 사근사근한 말씨 때문이었다. 여중 애들 중에서도 제법 눈에 띄는 여자애가 한 명 있었다. 동그란 얼굴에 반듯하게 자른 짧은 단발머리가 잘 어울렸고 커다란 두 눈에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가 예뻤다. 은자였다. 은자는 내가 이곳에 전학오기 두 달 전쯤에 서울에서 이사를 왔다고 했다. 나는 은자가 좋았다. 예뻐서였다. 은자가 환하게 웃을 때는 은자의 웃음 위로 학순이의 말갛고 깨끗한 웃음이 같이 겹쳐 보였다. 은자는 유독 나를 친근하게 대했다. 투박하게 거친 말들 사이로 비슷하게 오가는 사근사근한 말씨가 주는 동질감 같은 것이 있었다.
은자네 아버지는 시장에서 뱀탕집을 했다. 뱀탕집이라니. 섬뜩했다. 동훈에게 듣기로는 은자가 서울에서도 노는 걸로 아주 유명했던 애라고 한다. 그리고 은자는 실제로 서울에서 자신이 어떻게 얼마나 잘 놀았는지를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면 그걸 들으려고 애들이 은자 주위로 몰려들었다. 모두가 우와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신기했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나쁜 짓을 하면 부끄러워하고 숨겨야 했는데, 이 동네는 어떻게 된 모양인지 나쁜 짓을 하면 되려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심할수록 서클 내에서 인정받았다.
은자의 왼쪽 팔목에는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두 군데가 있고, 오른손 중지 마디 위에는 불교의 상징인 한자 만(卍)이 새겨져 있었다. 은자는 보통의 또래 여자아이들과는 많이 달랐다. 치마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잔디밭에 앉을 때도 은자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나는 은자를 마주 보고 앉을 때마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줄곧 자리를 피했다. 그럼 은자는 나를 따라와 보란 듯이 다시 내 앞에 철퍼덕 앉고서 곧 내 반응을 살폈다. 얼굴이 화끈해져 눈 둘 곳을 찾느라 눈알 굴리는 소리가 내 머릿속을 윙윙 울려댔다. 은자는 그런 나를 보고 웃었다. 그 웃음은 호탕하기까지 했다.
나는 도대체가 이런 여자애는 듣도 보도 못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이런 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나는 점차 은자가 무섭게 느껴졌다. 뱀탕집 딸인 것도 무섭고, 몸에 담뱃불 자국이 있는 것도 무섭고, 문신이 있는 것도 무섭다. 나는 예쁜 은자의 얼굴에 뱀이 겹쳐 보였다. 그래서 피했다.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아지트에 모여 동훈과 또 다른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은자가 나를 불러냈다. 담을 넘어 내려가면 굴다리가 나오고 그 굴다리 밑으로 보이는 공터로 함께 갔다. 은자는 대뜸 내게 여자친구가 있냐 물었다. 나는 없으니 없다고 했다. 그러자 사귀자 한다. 은자가 예뻐서 좋았다. 그런데 예쁜 것만 빼고는 다 무서웠다. 근데 예뻤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은자의 예쁜 얼굴에 홀려 그만 좋다고 해버렸다. 은자에게 홀린 것인지 뱀에게 홀린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일주일쯤 지나자 서클 내에 은자와 내가 사귄다는 소문이 퍼졌다. 학교 끝나고 동훈과 어김없이 아지트에 갔는데 고등학교 1학년 선배가 눈을 부리부리하게 치켜뜨고 나를 쳐다본다. 나는 영문을 모르니 애써 눈길을 피했다. 선배는 내게 다가와 꽤 점잖은 태도로 말했다.
"은자 만나지 마라. 은자는 내가 먼저 좋아했다. 네가 내 말을 무시하고 계속 은자 만나면 내가 니 가만 안 둔다."
나는 바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가 뭐라 덧붙일 필요도 없게 바로 헤어지겠다고 했다. 선배는 자신이 내게 이렇게 말한 것을 은자에게는 절대 알리지 마라 했다. 나는 또다시 바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예쁜 은자와 사귀는 것보다 고등학생 선배들에게 처맞을 일이 더 무섭고 싫었다. 살아오면서 지겹도록 맞았다. 그리고 서클에서 친구를 사귀고 같이 노는 게 너무 재밌는데 은자를 선택하면 앞으로 서클 활동도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의도적으로 은자를 피해 다녔다. 은자를 만날지도 모르는 곳으로는 발길도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다. 하교를 하는데 교문 앞에 은자가 서있다. 은자는 자신을 따라오라 하였다. 학교 근처 으슥한 골목에 다다라 은자를 마주하니 오금이 저렸다. 은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치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돌돌 말아놓은 하얀 휴지를 펼치니 면도칼이 나왔다. 은자는 면도칼을 반으로 두 동강 내어 입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씹기 시작했다. 나는 태어나 처음 보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어느 날엔가 소문으로만 들었다. 노는 여자애들 중에는 면도칼 씹는 애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면도칼을 왜 씹냐 하니 씹어서 작게 조각낸 면도칼을 상대방의 얼굴에 침 뱉듯 뱉으면 그 면도날들이 얼굴에 날아가 후두두 꽂힌다는 것이다. 나는 도망을 가고 싶은데 발이 땅바닥에 달라붙었는지 꼼짝도 못 하겠다. 잔뜩 긴장을 해서인지 숨도 가빠지는 것 같고 등에는 식은땀 한 줄기가 흘렀다. 눈치 없이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애써 다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은자는 입에 면도칼을 문채 우물거리며 내게 왜 자신을 피하냐 물었다. 나는 입이 안 떨어진다. 은자는 씹던 면도칼을 바닥에 툭 하고 뱉는데 새빨간 피가 흥건하게 섞여 나온다. 이쯤 되니 고등학교 1학년 선배의 협박은 겁도 나지 않는다. 나는 그의 협박에 대해 자세히 변명했다. 은자는 입 속에 피가 계속 새어 나와 비릿한지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도 피 섞인 침을 계속해서 뱉어냈다. 구구절절한 나의 변명이 끝나자 은자는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찌질한 새끼."
은자는 나를 남겨두고 뒤돌아 가버렸다. 나는 따라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집으로 돌아갔다.
은자는 아버지의 뱀탕집으로 간다. 주방 창고에 가면 늘뱀, 독사, 살모사, 황구렁이, 먹구렁이 등 별의별 종류의 뱀들이 있다. 은자는 마리당 몇 백원하는 잡뱀을 모아놓은 포대기를 손등으로 툭툭 쳐 꿈틀대는 움직임을 확인했다. 포대기 입구를 단단히 쥐어 새어 나오지 못하게 잡고서 어깨에 들처맸다. 뱀 포대기를 어깨에 짊어진 은자가 아지트로 걸어간다. 은자는 그곳에 앉아 차분히 그놈을 기다렸다.
얼마 후 그가 그의 친구들과 함께 나타났다. 은자는 바닥에 내려둔 포대기를 바닥에 질질 끌며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은자를 보자 반가워했다. 은자는 그와 그의 친구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말했다.
"오빠. 재밌는 거 보여줄게요."
은자는 포대기 입구를 활짝 열어 잡뱀 무리를 풀었다. 그리고 그중에 한 마리를 낚아채 손에 움켜쥐고 그의 얼굴 가까이로 가져갔다. 순식간이었다.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의 친구들은 바닥을 유연하게 기어 다니는 뱀 무리를 보고 기겁을 하며 달아났다. 얼어붙은 그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떨고 있자 은자는 보란 듯이 뱀의 모가지를 손으로 잡고 비틀어 숨통을 끊어버렸다.
"오빠. 한 번만 더 내 앞뒤로 알짱대면 그땐 오빠 모가지를 비틀 거예요. 저 뱀탕집 딸이라 뱀 모가지 뒤틀어 숨통 끊는 일이 밥 먹는 일보다 쉽거든요. 사람 모가지나 뱀 모가지나 뭐가 크게 다르겠어요. 안 그래요?"
은자는 원래 이 놈이 싫었다. 혐오스러웠다. 두 달 전 전학 와서 사귄 친구들을 따라 서클 아지트에 놀러 간 첫날. 서클은 환영회를 해준다며 새우깡과 소주를 사다가 파티를 벌였는데, 은자가 술에 취한 것을 본 그놈이 집에 바래다준다며 은자만 데리고 나왔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걷다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은자를 완력으로 제압하여 몸을 더듬으려 하자 은자는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그놈의 불알을 걷어차고 있는 힘껏 달려 집으로 도망쳤다 한다. 그놈은 그 후로도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뻔뻔하고 능청스럽게 은자를 대했다. 은자는 내내 이놈이 징그러웠다.
나는 이제 앞으로 다시는 그 아지트에 못 가게 됐다는 생각에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동훈의 말을 들어보니 은자도, 그 고등학교 선배도 그날 이후로 아지트에 나오지 않는다 했다. 은자의 뱀 사건은 모두에게 회자가 되었다. 모두가 은자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야 낯설게 뱀을 무서워한다지만 보통 시골 깡촌마을 사는 놈들은 뱀 모가지 비틀어 허물 벗겨 장난치며 노는 일이 수두룩 빽빽인데, 도시 놈들은 뱀이 면도칼보다 더 무서운가 보다. 나는 뱀 사건보다 면도칼이 백만 배는 더 소름 끼치도록 공포스러웠는데 말이다. 여하튼 그렇게 은자와의 관계도 끝난 줄 알았고 잊어가고 있었다.
한 달쯤 지났을까. 하교하는데 교문 앞에 은자가 또 서있다. 은자는 그간의 잊은 어색한 안부인사나 어떤 내색도 없이 대뜸 내게 어디 좀 같이 가자 했다. 나는 은자의 뒤로 그의 걸음을 따라가는 동안 은자의 치마 주머니만 뚫어지도록 쳐다봤다. 저 주머니 안에 면도칼이 있을까 없을까. 이번엔 그 면도칼이 땅바닥이 아니라 내 얼굴에 꽂힐 것만 같았다. 회유할 말들을 머릿속으로 빙글빙글 그려대고 있었다.
은자는 나를 빵집에 데려갔다. 먹고 싶은 빵을 고르라 한다. 단팥빵은 기본이고 곰보빵에 크림빵, 도나스까지 없는 게 없기에 나는 쟁반에 종류별로 하나씩 다 담았고 우유도 함께 주문했다. 은자에게도 먹으라 건넸지만 혼자 다 처먹으라는 대답만 들었다. 사주기에 맛있게 먹었다.
은자는 내게 그놈과 첫 만남에 있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곧이어 뱀 사건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설명했다. 나는 은자의 이야기를 가만 다 듣고 나니 드물게 낯선 감정이 차올랐다. 은자가 멋있다. 나는 은자가 예뻤다가 무서웠다가 곧 멋있어졌다. 나는 은자를 동경하고 있었다.
열여섯. 나는 동훈과 은자와 친밀하고 끈끈한 관계로 묶여 남은 중학교 시절을 함께 보냈다. 은자와는 사귀어 만나는 이성 관계는 아니었다. 은자는 찌질한 내가 남자로 보이지 않았고, 나는 동경하지만 무시무시한 그녀와 교제할 마음이 없었다. 무심코 허락 없이 손을 잡았다가는 뱀 모가지 비틀듯 내 손모가지를 비틀어 똑 부러트릴 것만 같은 그녀와 감히 무엇을 할 수 있겠단 말인가. 친구였다. 은자는 늘 범상치 않았고 그 언제나 통상적이지 않았다. 은자는 동훈과 내게 많은 것들을 알려 주었다. 예를 들면 패싸움에서 기선제압하는 법 같은 것 말이다. 서클 대 서클로 패싸움이 있을 때는 은자의 기선제압 전략 덕분에 대부분의 싸움에서 손쉽게 이길 수 있었다. 그해 나는 다마네기에서 벗어나 도로쿠로 불렸다.
우리는 의리로 앞다투었으며 치기 어린 그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로 뜨거웠고, 헤어짐과 끝은 반짝이고도 담백했다. 우리는 그렇게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