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막내누나가 소개팅을 하고 왔다. 금례엄마와 나는 막내누나의 소개팅 후기가 궁금했다. 집에 온 누나는 소개팅남이 못생겨도 너무 못생겼기에 절대로 잘해볼 마음이 없다고 했다. 나는 얼마나 못생겼냐 물었다. 누나는 곰보빵 같은 피부에 눈은 가재미 같고 볼품없이 빼빼 말라서 초라하다 했다. 금례엄마는 그럼에도 아쉬워했고 누나는 조금의 미련도 없어 보였으며 나는 누나의 거절에 동의했다.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
소개팅남은 도시 외곽 소재의 전자회사 직원이었다. 누나와 달리 그는 누나가 매우 마음에 들었었나 보다. 그는 퇴근 후 우리 집 앞으로 와서는 하염없이 누나를 기다렸다. 아주 끈질겼다.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왔으니 말이다. 누나는 소개팅남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큰누나 집에서 바로 출근하는 식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소개팅남을 피해 다녔다. 소개팅남은 집 앞에서 누나를 자정까지 기다리다가 자정이 넘어도 누나가 오지 않으면 버스가 끊겨 택시를 타고 다시 외곽의 회사 기숙사로 돌아가야 했다. 금례엄마는 누나의 소개팅남이 한겨울의 늦은 저녁 일곱 시부터 자정까지 밖에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금례엄마는 장 보러 간다는 핑계로, 산책한다는 핑계로 집 밖을 나서면 그에게 이렇게 저렇게 회유를 하며 돌려보내보고자 했지만 그는 끄떡도 없었다.
나는 저녁을 먹고 게으르게 누워있었는데, 볼펜과 종이를 챙겨 온 금례엄마가 나를 앉히고 내게 자신이 부르는 대로 종이에 받아 적으라 하였다. 받아 적고 보니 누나의 회사 주소였다. 금례엄마는 그의 고집에 못 이겨 몰래 막내누나의 회사 위치를 알려주었다. 다음 날부터 그는 누나의 회사 앞으로 가서 누나를 기다렸다. 결국 막내누나는 그의 고집에 졌다. 이 정도로 끈질긴 걸 보니 다른 건 몰라도 살면서 바람은 안 피우겠다 싶었다 한다. 3개월이 지난 다음 해. 그 소개팅남은 나의 매형이 되었다.
"막내누나는 매형 직장을 따라서 외곽으로 이사를 갔어. 그곳에 신혼집을 얻었지. 원래는 막내누나가 큰누나네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월세를 내고, 큰누나도 월세의 일부를 보태주고 있었는데, 누나가 이사를 가니 금례엄마랑 나. 다시 둘만 남게 된 거야. 그것 때문인지 막내누나는 월세 문제로 마음이 복잡했었나 봐.
누나가 이사 가는 동네에 어릴 때부터 오래 알고 지냈다던 친구가 있었거든. 송정이라고. 마침 송정이 누나를 통해서 일자리 하나를 소개받았다네. 그 일자리는 누나 신혼집 근처의 원강상사라는 회사였는데, 석산을 매입해 돌을 캐서 돌을 필요로 하는 곳에 납품하는 회사였어. 원강상사 대표가 그 지역의 손꼽히는 갑부랬나.. 그 집에 상주하면서 집안일을 도맡아 해 줄 식모가 필요한데 월급이 꽤 짭짤하다는 소식을 듣고 누나가 송정이 누나한테 금례엄마를 취직시켜 달라고 부탁을 한 거야."
나는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공업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았다. 동훈과 은자도 함께 지원하였고 같이 시험을 보았지만 애석하게도 나만 합격하고 둘은 떨어졌다. 나는 토목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동훈과 은자는 시험 없이도 진학할 수 있는 외곽의 멀리 떨어진 학교로 가게 되면서 우리는 흩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그것이 아쉬워 입학 전 겨울방학 내내 빵집에서 만났다. 하등 쓸모없는 이야기들로 시간을 때웠지만 그토록 즐거웠다. 나도 공부 못해서 공업고등학교 가는 처지지만, 그마저도 안되어 외곽으로 멀리 떠나는 그들에게 평소에 공부 좀 하지 그랬냐며 타박을 주니 동훈은 아무 생각도 없는지 그저 새살궂게 웃었고, 은자는 뱀탕집 물려받으면 된다는 실없는 소리를 해댔다. 뱀 잡아다 숨통 끊는 실력을 보니 그도 영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올해 열일곱 살로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꽃피는 3월, 입학을 한다. 금례엄마는 나만 두고 식모 살러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아직 입학 전이니 차라리 같이 이사를 가서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면 좋겠다고 나를 설득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이제 열일곱이고 곧 있으면 성인이 된다. 다 컸다 이 말이다. 혼자 사는 열일곱의 고등학생은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다. 나는 혼자 살게 해달라고 금례엄마를 들들 볶아댔다. 내가 같이 가서 혹시나 또 사고라도 치면 엄마 그 좋은 일자리 잃을 수도 있지 않겠냐 하면서. 금례엄마는 매주 토요일 나를 보러 오기로 하고서야 나의 자취를 허락했다. 그러고도 금례엄마는 이상한 죄책감에 시달렸는지 나 몰래 자주 눈물을 훔쳤다. 몰래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늘 알았다. 내가 소변을 보기 위해 잠에서 깨는 새벽마다 금례엄마는 훌쩍대느라 코를 삼키고 있었으니까.
금례엄마는 원강상사에 식모 살러 갔고, 막내누나는 시집을 갔다. 누나는 내가 다니게 될 고등학교 근처로 작은 자취방 하나를 얻어 주었다. 그 자취방은 등굣길 길목에 자리한 성광시장 안에 있었다. 시장 입구로 들어가 양 옆으로 즐비한 상가들을 따라 죽 뻗은 길을 걸어 들어가다 보면 자그마한 참기름집 하나가 나오는데 참기름집 바로 옆으로 구루마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좁은 골목이 나있다. 골목 끝에 대문이 보인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중앙에 수돗가가 있고, 그 주변을 ㄷ자로 둘러싸며 대략 스무 개의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각 방들의 문은 성인이 허리를 굽혀야만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쪽문으로 되어있었고, 내 방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왼쪽 구석에 위치한다. 그리고 내 방 바로 옆에 공용화장실이 딸려있다. 허리를 굽혀 쪽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오른쪽에 연탄보일러가 있고, 그 옆에 수도가 있다. 그다음 방문이 있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1.5평 남짓 되어 보이는 조그만 방이 있다. 나는 이곳에서 먹고 잔다.
막내누나는 고등학교와 가까운 위치의 방 중에서 이곳의 방값이 가장 싸다고 했다. 이 방이 근방에서 가장 싼 이유는 바로 내 방을 제외하고 대략 열아홉 개의 방을 차지하고 있는 이웃들 때문이었다. 이 이웃들은 시장에서 이백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방석집. 당시 텍사스골목이라 불리던 술집거리에서 일하는 여자들이었는데, 이곳이 그들의 기숙사였던 것이다. 대략 스무 개의 방 중 하나는 내 방, 나머지 열아홉 개의 방은 모두 술집여자들이 썼고, 한 방에 두세 명 정도가 함께 지냈다.
이사 첫날, 나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의 풍경이 떠올랐다. 가을 운동회가 열리는 학교 운동장 하늘의 바람에 날려 펄럭거리는 만국기 풍경 말이다. 대문서부터 중앙의 수돗가를 가로질러 마당의 끄트머리까지 빨랫줄이 대여섯 개 늘어져있고, 그 빨랫줄 위로 온갖 오색찬란한 빛깔의 브라자와 팬티들이 줄지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속옷만국기가 펄럭이는 마당을 지나 내 방에 이삿짐을 풀었다. 이삿짐이라 봐야 옷가지 몇 벌, 책 몇 권, 이불 두 채가 다였다. 마당에 나와보니 이웃집 누나들이 수돗가에 빨래를 하기 위해 왔다 갔다 한다. 나는 인사성이 밝다. 깡촌 시골 고향서부터 내 인사성은 항상 동네 1등이었지 않은가. 나는 누나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였다. 얇은 천 쪼가리 한 장을 옷이라고 걸쳐 입고, 술냄새와 짙은 분냄새가 섞여 오묘한 향을 풍겨대는 누나들이 가까이 다가와 내 볼을 꼬집으며 귀엽다 한다. 나는 이 집의 첫인상이 좋았다. 나의 고등학교 입학을 속옷 만국기가 펄럭이며 응원해주고 있다. 어쩐지 시작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