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여섯 번 바뀌는 동안 잔잔하고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중학교에 입학했고, 남순이 봉순이 덕순이 경순이와도 다시 잘 지냈으며 학교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선생님들도 다 좋았지만 특히 서울에서 오신 예쁘고 다정한 교생선생님이 가장 좋았다. 더불어 마주치면 늘 나를 귀여워해주는 방앗간 집의 쌍둥이 누나도 좋았다. 나는 이 동네가 참 좋다.
동네 사람들은 내가 이모부 보훈금을 훔친 이후로 내내 나를 경멸했다. 언제 또 사고를 칠지 모른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들은 이모네 식구들을 만날 때마다 내 욕을 했다. 석규네 이 동네 떠날 생각 없다느냐, 언제까지 살 것 같냐, 한 동네 같이 살기 싫은 이웃이다와 같은 말들이었다. 금례엄마는 그것을 참고 견디기가 힘들었다. 이모네 식구에게도 미안했고, 시간이 지나도 석규를 받아주지 않는 동네사람들의 냉랭한 마음이 쌀쌀한 마음을 더욱 얼어붙게 했다. 금례엄마는 수일을 고민하다 큰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려운 사정 이야기를 어렵게도 했다. 큰 누나는 금례엄마에게 나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오라 하였다.
나는 올해 열다섯 살로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2학년 한 학기를 남기고 큰 누나의 집으로 이사가게 됐다. 이모네 마을을 떠나며 남순이와 작별 인사를 할 때 찔끔 눈물이 났는데 아마 남순이는 못 보았을 것이다. 내게 이사는 지긋지긋하게 익숙한 것인데 어쩐지 이번엔 여러모로 낯설었다. 특히 내 기분이 그랬다. 낯설기에 설명은 잘 못하겠다.
나는 태어나 지금껏 시골살이만 했기에 문 밖을 나서면 소똥냄새가 인사하고, 풍경은 산이고 논이고 밭에다가 무서울 것이래 봤자 뱀 따위였다. 이사 온 큰 누나가 사는 곳은 말로만 들어봤던 대도시이다. 문 밖을 나서니 잘 닦인 도로에 씽씽 달리는 차들이 하루에만 수십대씩 보인다. 높은 건물 보는 것도 신기한데, 더 신기한 건 이 동네 사람들은 이웃들이랑 왕래도 안 하고 살 작정인지 대문은 다 걸어 잠가놓고, 담은 성인 남자 키보다 높고, 누가 들어올세라 뾰족뾰족하게 깨진 유리병들을 담장 위에 줄 맞춰 늘어놓았다.
나는 금례엄마와 큰 누나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이 집에는 큰 누나와 매형, 그리고 그의 자식들인 세주, 혜영, 혜상, 은정이까지 조카 네 명에 나와 금례엄마까지 여덟 명이 살았다. 큰 누나는 시내 중심가에 있는 골목 주택가에 살고 있었고, 근처에 옷 만드는 공장을 꽤 크게 했다.
나는 시내 중심에 있는 중학교를 다니게 됐다. 적응하기가 어렵고 버거웠다. 일단 이 놈들이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먹지를 못하겠다. 내가 아주 느릿하고 부드러운 어투로 "야. 너 뭐라고 한 거야?" 하면 이 놈들은 그게 무어라고 그리도 우스운지 낄낄대며 내 말투를 조롱하듯 따라 하다가 "야. 다시 한번 지끼봐라." 하는 식이었다. 근데 그중에서도 내가 적응하기 가장 힘들었던 건 이 놈들이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내가 대장이었다. 어디 소 죽인 놈이 흔한가. 나 같은 놈은 어디에도 없었다. 동급생 중 그 누구도 나보다 센 녀석이 없었단 말이다.
나는 전학옴과 동시에 이 학교에서 소문난 놀림감으로 전락하였다. 내가 복도를 지나가면 이 놈들은 '서울내기 다마네기 맛 좋은 고래고기~' 하며 노래를 부른다. 별명이 생겼다. 바로 내 별명이 다마네기이다. 말이 안 된다. 진짜 더럽게 마음에 안 든다.
"다마네기 니 뭐라캤노. 다시 함 지끼봐라."
내가 하루 중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그럼 나는 "하지 마. 왜 그러는데." 한다.
그럼 이 놈들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배가 찢어져라 웃다가 '왜그러는뒈에~' 하며 나를 조롱한다.
이게 무슨 굴욕인가 싶다. 나는 화가 나서 나를 조롱하는 애들 중 제일 키가 작고 만만해 보이는 놈 한 명을 잡아다 줘 패줬다. 통쾌했다. 점심시간이 돼서 도시락을 꺼내 먹으려는데 갑자기 교실 뒷문으로 처음 보는 놈들 다섯 명이 같이 들어오더니 가타부타 말도 없이 내 도시락을 집어던지고 내 의자를 발로 차 나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그들은 나를 인정사정없이 밟았다. 정말이지 뒤지게 처맞았다. 왜 때리는지 말도 없었고, 나는 처맞느라 왜 맞아야 하는지 물어볼 정신도 없었다. 정신 차려보니 그들은 가고 없었고 처맞은 나만 남았다.
코랑 입술이 터졌는지 피가 줄줄 흘러 입 안으로 비릿한 피 맛이 새어 들어왔다. 목덜미는 까졌고, 교복도 여기저기 터졌으며 어디 하나 안 맞은 데가 없어서 어디 하나 안 아픈 데가 없었다. 그야말로 처참하다. 나는 아까 나를 놀린 놈들 중 가장 만만한 놈 한 명만 줘 패줬는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놈들 여럿이 떼거지로 오다니.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줘 패준 놈까지 해서 여섯 쌍둥이 인가. 그도 아니면 설명이 안되기에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분명 말하는데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이런 법은 없었다.
피가 질질 흐르는 코에 휴지를 쑤셔 박아 넣고 터진 입가는 대충 교복 소매로 닦아냈다. 나는 까진 목덜미에 교복 옷깃이 닿는 것이 쓰라려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짝꿍에게 물었다.
"야. 쟤들은 뭔데 단체로 와서 나를 때리냐?"
"쟤네 서클인데 몰랐나."
서클? 다시 한번 말하는데 우리 동네는 이런 거 없었다. 나는 점심시간 동안 짝꿍 놈을 붙잡고 서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장군과 통에 대해 들었다. 그들이 누구인지도 들었다. 그들은 서클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있다. 그들 중 한 명을 때리면 아까 내가 맞은 것처럼 단체로 와서 보복을 한다. 다른 학교 서클이 우리 학교 서클 한 명을 건드리면 서클 대 서클로 패싸움을 한다.
나는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온몸에 힘이 주욱 빠져나가는 것 같다. 이제 내가 대장인 시대는 영영 저물었다. 밤중에 도둑고양이처럼 움직여서 뭔 짓을 해볼래도 이 놈의 동네는 대문을 얼마나 꽁꽁 걸어 잠그고 사는지, 담은 또 얼마나 높은지, 내 방식으로는 어림도 없다. 니들은 단체로 노는구나. 나는 일대 일로 놀던 놈이다.
토요일 오후였다. 팔에 담뱃불 자국을 몇 개씩 갖고 있는 놈 하나가 교탁 앞으로 갔다. 이 놈이 우리 반 통이라 불리는 놈인데 이름은 한동훈. 쓰고 있던 교모를 벗어 앞줄부터 뒤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교모를 받은 학생들이 오백 원씩, 천 원씩 돈을 넣었다.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고 돈도 없다. 돈을 넣지 않고 교모를 뒷자리로 보냈다. 그러자 교탁 앞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동훈이 수업 끝나고 운동장 뒤편으로 오라 한다. 갔다. 가보니 한 여덟 명이 서 있다. 또 단체로 꼴값이다.
"다마네기 이 새끼야. 니 뭔데 돈을 안 내노."
"아니, 나도 돈 없는데 내가 왜 돈을 내야 되는데?"
했다가 또 뒤지게 처맞았다. 나는 그다음 토요일부터 교모에 돈을 넣었다.
그즈음 외곽에 살던 막내 누나가 큰 누나가 하는 옷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막내누나는 시내 중심가와는 거리가 먼 동네에 열세 평짜리 아파트를 얻었고, 금례엄마와 나를 데리고 나가서 같이 살자 하였다. 이에 큰 누나는 월세를 보태주기로 했다.
나는 학교생활이 힘들다. 이사하고나니 학교 가는 길이 멀어져서 아침에 버스도 세 번씩 갈아타야 하는데 그것도 싫고, 토요일마다 교모에 돈을 넣는 것도 싫고, 다마네기로 불리는 것도 싫고, 틈만 나면 처맞는 것도 죽을 맛이다. 어떤 날은 눈이 마주쳤다고, 또 어떤 날은 내 말투가 재수 없다고, 또 다른 날은 이유도 없단다. 그저 심심하다고 때렸다. 그렇게 두어 달을 멍청하게 흘러 보냈다. 그동안 뭘 해보려고도 했다. 시도해 보았지만 통하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나도 혼자고 지도 혼자라야 뭘 해볼 텐데 이놈들은 맨날 떼거지이다. 징글징글하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느낌이 온다. 가만 생각해 보자. 나는 온 동네를 상대로 싸운 놈이 아닌가. 나는 그 시골 깡촌에 살면서도 지게 한번 안 지어보고 낫질 한 번 안 해본 놈이다. 나도 보통 놈이 아니다. 진짜 아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세 번째 새아버지 집에서 담배농사일 돕는 게 싫어서 담배나무 열 대를 부러트렸던 것처럼, 여기서도 편하게 지내려면 한 번은 큰 일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나는 싸움 같은 거 할 줄 모른다. 누굴 때려본 적이 없다. 내가 치는 사고래 봤자 남의 집 부엌에 몰래 들어가 동그랑땡이나 훔쳐 먹고, 과일 서리하고, 딱지치고 비석 치는 애들 찾아가 노는 거 훼방 놓고, 도시락 반찬 좀 뺏어먹고 그게 다였다. 소를 죽이고, 이모부 보훈금 훔친 일 때문에 좁아터진 시골동네에 무시무시한 놈이라고 소문이 나서 그렇지. 사실 나는 좀 철없는 개구쟁이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여기에서도 무시무시한 놈이라고 소문이 날 만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하교하는 길. 학교 앞 문방구에 들러 도로쿠 커터칼을 샀다. 그리고 교복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집에 와 거울 앞에 서서 주머니 속 칼을 꺼내보는데 영 태가 안 난다.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는 모습에 좀 더 카리스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연습했다. 드르륵 샥 하는데 칼 길이가 너무 길게 빠져나온다. 길게 찌르면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 된다. 세 칸만 꺼내보기로 한다. 다시 연습했다. 드르륵 샥 드르륵 샥 드르륵 샥
다시 토요일. 교모가 돌아간다. 내 차례가 왔다. 지금까지 내가 이 교모 안에 돈을 얼마나 넣었을까 생각하니 머릿속이 새카맣게 감감해진다. 그게 어떤 돈인데 싶다. 교모 안에 담긴 돈을 몽땅 끌어 담아 가방 안에 쑤셔 넣고 빈 교모를 뒷자리로 홱 던져버렸다. 바로 오늘이다. 나는 일을 치를 것이다.
반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동훈은 얼빠진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가 늦게 정신이 들었는지 '이 씨발놈이 미쳤나.' 하며 뚜벅뚜벅 내게 걸어왔다. 나는 맞을 것을 안다. 동훈의 손이 올라간다. 나는 손으로 동훈의 팔을 막고 연습한 대로 바지 주머니 속에서 칼을 꺼낸다. 드르륵. 정확히 세 칸이다. 샥 하고 동훈의 팔을 칼로 베었다.
"뭣도 아닌 게 사람을 자꾸 건드려. 앞으로 나한테 교모 보내지 마 이 개새끼야! "
동훈은 난생처음 칼을 맞았다. 팔에서 피가 퐁퐁퐁 하고 흘러나온다. 동훈은 주저앉아 다친 팔을 부여잡고 있다. 반 아이들 모두가 얼어붙었다. 장군이니 통이니 서클이니 하는 놈들이 단체로 몰려다니며 주먹 쓰는 모습이야 지긋지긋하게 봐왔지만 칼을 휘두르는 놈은 처음 본 것이다.
나는 지금껏 처맞은 일에 이자까지 덧붙여 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자근자근 밟았다. 특히 동훈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팔이며 다리며 몸통은 실컷 때려줘 봤자 옷 입으면 가려져서 소용이 없다. 얼굴이 망가져야 누구한테 처맞았는지, 누가 저 꼴을 만들어놨는지 궁금해할 것 아닌가. 동훈의 서클 놈들인지가 와서 나를 뜯어말리려 할 때 나는 칼날을 끝까지 밀어 길게 뽑아낸 후 공중에 마구 휘두르며 말했다.
"뒤지기 싫으면 다들 가만있어라."
반 애들 중 한 명이 교무실로 뛰어가 선생님을 불렀다. 칼을 빼앗기고 나서야 정리가 되었다. 동훈의 얼굴은 피떡이 되어 만신창이이다. 나는 통을 상대로 싸워 이겼다. 계획이 성공한 것이다.
기뻐할 새가 없다. 나는 합의금을 준비해야 했다. 동훈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날뛰는 바람에 집에 가서 금례엄마와 막내 누나에게 이실직고하였다.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쓸 일을 대비해 까막눈인 금례엄마 대신 막내누나가 나를 데리고 동훈네 집으로 갔다. 가는 길에는 롤케이크 한 상자를 샀다. 막내누나는 동훈의 치료비 전액을 내겠다고 했고, 동생 교육을 잘못시켜 죄송하다고도 했다. 또 이번 한 번만 이렇게 넘어가주시면 안 되겠냐 사정도 하였다. 나는 여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다. 그저 동훈을 이겨 통쾌하다 생각했고, 학교 생활 편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차 있었다. 근데 이번엔 막내누나가 금례엄마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내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동훈의 엄마는 막내누나가 하는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곧이어 내게 이름이 무어냐 물었다.
"송석규입니다."
"석규야. 니 동훈이랑 졸업할 때까지 싸우지 않고 좋은 친구로 잘 지낼 수 있겠나."
나는 "절대 안 싸우겠습니다." 하였다.
동훈과 눈이 마주쳤다. 퉁퉁 붓고 피떡이 되어 일그러진 얼굴을 한 동훈이 씩 하고 웃었다. 나는 씰룩대는 입을 어쩌지 못해 어색한 표정을 지어보다가 결국 동훈을 따라 같이 웃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