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순이와 친하다. 남순이는 나보다 나이는 한 살 더 많았지만 학년이 같았다. 남순이 아래로 봉순이, 덕순이, 경순이도 모두 나와 같은 국민학교를 다녔다. 나는 매일 남순이, 봉순이, 덕순이, 경순이와 함께 등하교를 같이 했다. 남순이와 동생들은 내가 이 마을로 이사 온 것이 좋았는지 하교 후엔 나를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고 재밌어할 만한 것들을 소개해 주었다.
나는 여름에는 수박이 가장 맛있고 시원한 음식인 줄만 알고 살았는데 이 마을에 와보니 슈퍼에 아이스께끼를 판다. 모르고 살다 죽었으면 억울해 아마도 이승에 남아 슈퍼 앞을 떠돌며 애들 먹는 아이스께끼에 장난이나 치는 추잡한 귀신이 될 운명의 맛이었다. 읍내에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단팥빵도 팔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짜장면 집도 가까이에 있다. 나는 등교하면 선생님이 좋았고, 하교 후엔 읍내 마실이 좋았다. 돈은 없어도 뻔질나게 슈퍼를 들락날락거렸고, 남순이가 용돈을 많이 받은 날에는 남순이에게 빌붙어 단팥빵도 하나씩 얻어먹었다. 며칠 후 학교 앞 문방구를 지나는데 처음 보는 물건이 보인다. 새 오락기가 들어왔다. 말로만 듣던 오락기를 그날 처음 보았다. 네모난 화면 안에서 손가락만 까딱 하면 대포도 핑 쏘고, 총도 핑 쏘고, 요리 피했다 조리 피했다 한다. 정말 재밌다. 할 수만 있다면 하루 종일 오락기 앞에 앉아 대포와 총을 쏘고 싶다. 그런데 이 얌체같은 오락기가 돈을 넣어야만 작동을 한다. 그러나 나는 돈이 없다. 금례엄마도 돈이 없다. 그러니 금례엄마에게 이것이 먹고 싶다 저것이 먹고 싶다 오락을 하고 싶다 하면 금례엄마는 해줄 수 없어 아마도 마음이 아파 긴 새벽. 또 나 몰래 눈물을 훔칠 것을 나는 잘 안다.
나는 이 마을에 이사 온 것이 정말 좋았다. 이전처럼 이복형제들과의 알력 다툼을 할 필요도 없었고, 좁은 집에 열식구가 다닥다닥 붙어 살 부대껴 살며 고약한 체취에 코를 틀어막고 잘 일도 없었다. 허름한 집이라지만 금례엄마랑 단 둘이었다. 이사 온 첫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금례엄마 옆에 누워 데굴데굴 굴러 보았다. 몇 바퀴를 굴러도 부딪히는 것 하나 없었다. 돌아보면 엄마가 있고, 또 돌아보면 그곳에 엄마가 있었다. 살 부딪히고 눈 닿는 곳에 마주칠 이가 오직 금례엄마라는 사실이 나를 더없이 행복하고 편안하게 했다.
그러니 더 이상 누구와도 싸우고 싶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돈. 그러니까 내가 가지려야 절대 가질 수 없는 그것과 싸워야 했다. 시작부터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이모부. 즉 남순이 아버지는 6.25 전쟁 참전 용사셨는데, 전쟁 중에 다리에 총을 맞아서 한쪽 다리를 잃어 의족을 하고 다니셨다. 나라에서는 상해군인들한테 연금을 지급했다. 남순이와 하교하는 길, 학교에 낼 육성회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남순아, 너는 육성회비 언제 내냐."
"나는 이번 주는 안되고 아마 다음 주에나 낼 수 있을 거야."
"왜 다음 주야?"
"아버지 보훈금이 다음 주에 나오거든."
나는 불현듯 학교 앞 문방구 오락기 생각이 났다. 나는 무구히 해사한 얼굴로 남순이에게 물었다.
"이모는 보훈금 받으면 어디다 두냐?"
순진한 남순이는 대답했다.
"안방 문갑 서랍 제일 밑에 실바구니 있는데 그 아래 깡통에 넣어둬."
나는 정말로 남순이가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려줄 줄은 몰랐다.
이모부가 보훈금을 받는 날이 밝았다. 나는 이모부네 집이 하루 중 몇 시에 비는지 알고 있다. 나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가 선생님께 배탈이 났다고 거짓말을 한 뒤 학교를 빠져나와 이모부네 집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남순이가 이야기해 준 안방 문갑 제일 밑에 서랍을 열어 실바구니를 찾았다. 그 아래 깡통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 있다. 난생처음 만져보는 두께의 돈뭉치였다. 가슴이 콩닥콩닥한다. 나는 그 돈을 무더기로 잡아 주머니 곳곳에 마구 쑤셔 넣고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전속력을 다해 달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듣는데 계속 가슴이 콩닥콩닥하여 쉬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하교 후 집에 와보니 동네가 떠들썩하다. 이모부네 집을 지나며 보니 자전거 두대가 서있고 경찰이 와있다. 남순이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는 내게 인사도 없이 집으로 뛰어갔다. 내 손은 금세 땀으로 흥건해졌다. 콩닥대던 가슴이 이제 쿵쾅대기 시작한다. 내 옆을 지나는 이 누구에게라도 쿵쾅대는 심장소리를 들킬까 봐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아직도 열네 살이 안되었다.
나는 나름대로 전략이 있다. 돈을 한꺼번에 다 써버리지 않고 하루에 딱 정해놓은 금액만큼만 쓸 생각이다. 그리고 그 돈뭉치를 집에다 두면 금례엄마에게 들킬 것이 뻔하기에 나는 나만 아는 언덕 위의 나무 밑에 땅을 파 돈뭉치를 숨겨 놓았다. 나는 남순이를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 어쩐지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단팥빵도, 짜장면도, 오락기도 다 너무 좋았다.
이틀이 지나고 학교에 경찰이 왔다. 나는 경찰을 따라 지서에 가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나인줄 어떻게 알았을까. 이번엔 정말 완벽했는데.'
지서에 가니 금례엄마와 이모가 와있다. 조서를 쓰는데 이번에도 상황이 똑같다. 경찰은 내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금례엄마와 이모에게만 질문을 한다. 조서를 작성하고 어른들끼리만 아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금례엄마와 이모는 나를 데리고 경찰서 입구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금례엄마는 지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석규야. 네가 이모집에 가서 돈 훔쳤냐."
"나 아니야. 나 진짜 아니야."
그러자 이모가 물었다.
"너 며칠 전에 남순이한테 이모부 보훈금 언제 나오느냐, 돈은 어디다 두느냐 물어봤다며. 그리고 학교 선생님한테도 물어보니 돈 없어진 그 시간에 화장실 간다며 나가서는 한참 후에 들어왔다던데."
나는 입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어쩐지 이모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전의 이장 영감탱이한테도, 옆집 아저씨에게도 이런 초라한 마음은 안 들었는데, 이모 앞에서는 주눅이 들어 숨고 싶고 참을 수 없이 창피했다.
금례엄마는 내게 늘 말했다.
'이모 얼굴에 먹칠하면 안 돼. 우리 지금 이모 덕분에 여기서 이렇게 살 수 있는 거야.'
이 말은 곧 내 머릿속을 빙빙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금례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차분히 고무신을 벗어 들었다. 예고도 없이 그 자리에서 나를 온 힘을 다해 때리기 시작했다. 등짝도 머리통도 허다하게 맞아봤지만 고무신으로 따귀를 처맞은 적은 처음이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볼을 땀에 젖어 흥건한 손바닥으로 바쁘게 쓸어댔다. 아프다. 정말 아프다.
"죽어라 그냥 죽어. 남편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더니 이 새끼야 네가 사람새끼냐. 나랑 같이 죽자 죽어." 금례엄마는 보았다. 석규는 내 자식이라 내가 가장 잘 안다. 네가 훔친 게 맞구나. 너였구나 했다.
나는 살자고 부리나케 튀었다.
나는 돈을 숨겨놓은 언덕의 나무 밑에 가 앉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돈은 다시 토해내야 할 것 같다. 집에 가면 분명 금례엄마가 돈부터 찾을 텐데. 집에 없다 하면 같이 찾으러 가자며 따라나설 텐데. 나무 밑에 땅을 후벼 파서 숨겨놓은 돈뭉치를 꺼내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봤는데 나는 그 모습이 매우 후지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챙겨서 집으로 가야 한다. 그게 맞다.
어차피 훔친 돈, 어차피 토해낼 돈, 돌려주기 전에 아껴 쓰느라 실컷 못 사 먹은 빵이나 두어 개 사 먹어야겠다. 배가 고프니 먼저 중국집으로 갔다. 짜장면 곱빼기를 시켰다. 다음으로 단팥빵집엘 갔다. 나는 짜장면을 먹고 배가 불러 단팥빵을 하나만 사 먹으려고 했는데, 빵을 보니 금례엄마 생각이 난다. 금례엄마도 단팥빵을 무지 좋아한다. 돈을 갖다 주면 몽땅 다 가져가서 이모를 줄텐데, 빵을 사다 놓으면 빵도 다 이모 가져다줄라나.
나는 단팥빵 한 봉다리를 샀다.
집으로 가는 길 고개를 하나 넘는데, 고개 길목 중간에 금례엄마랑 이모가 쭈그려 앉아 있다. 나를 발견한 금례엄마가 "이 놈 새끼야 너 돈 어쨌어." 하며 달려온다. 나는 급히 손에 들고 있던 빵 봉다리를 금례엄마 얼굴 앞에 쑥 들이밀며 말했다.
"때리면 나 또 튄다!"
"이게 뭐야. 너 도대체 어디서 뭘 하다 온 거야."
"돈 들고 왔어. 들고 왔는데 어차피 그거 주면 이모 바로 돌려줄 거잖아. 근데 엄마도 빵 좋아하니까.. 그래서 빵 한봉다리만 샀어. 이것도 돌려줄 거야?"
"아이고 이 놈 새끼야.."
금례엄마는 내가 종이에 둘둘 말아 챙겨 온 돈뭉치를 이모에게 건네며 액수가 맞는지 세어보라 했다. 그리고 빵 봉다리도 뺏어 이모에게 건네며 이것도 가져가라 했다. 이모는 대충 세어보는 척을 하더니 맞다 한다. 그리고 건네받은 빵 봉다리를 다시 내 손에 쥐어 주며 이모는 말했다.
"석규야. 너 이게 그리 먹고 싶었냐. 이모한테 말을 하지. 이거 가져가서 엄마랑 나눠 먹어라."
이모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삼킨 것은 부끄러움이었고 내뱉은 것은 치기와 반항이었다. 나는 이모가 손에 쥐어준 단팥빵 봉다리를 힘껏 바닥에 집어던지고 집으로 달렸다. 이모네 집에서 돈을 훔쳐 학교로 달아나던 때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중간에 한 번 쉬지도 않고 숨이 찬 줄도 모르게 뛰었다. 집으로 돌아와 헥헥 대는 숨을 고르다 방구석에 자리한 책상 위 금례엄마의 화장품함을 보았다. 나는 뚜껑을 열고 작은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마주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볼 위로 고무신 바닥 결이 지저분하게 찍혀서 뭉개져있다. 머리카락은 땀으로 젖어 삐쭉삐쭉하게 서있고, 헥헥대며 뛴 탓에 입술은 쩍 갈라져 허연 각질이 올라왔는지 모양새가 아주 나쁘다. 나는 그날 나의 부끄럽고 추한 얼굴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금례엄마는 내가 내던지고 간 단팥빵 봉다리를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평상에 앉아 울고 있는 나를 엄마는 허무한 눈으로 한참 바라보았다.
"이리 와 먹어."
"엄마도 같이 먹어.."
금례엄마는 다그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옆에서 단팥빵을 먹었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단팥빵 세 개를 쉬지도 않고 억지스럽게 먹었다. 그토록 맛없게 꾸역꾸역 삼켰다.
"엄마. 그렇게 먹다 체하겠어. 남겨놨다 내일 또 먹어."
"석규야 다 먹었냐"
"나는 이제 다 먹었어. 엄마 미안해. 내가 내일 이모랑 이모부한테 가서 사과드릴게."
"너 엄마랑 어디 좀 가자."
나는 이모네로 가는 줄 알았다. 엄마 손을 잡고 집을 나서며 생각했다. 무어라 사과를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금례엄마의 행선지가 이모네가 아니었다. 깜깜한 밤에 내 손을 꽉 움켜쥔 금례엄마는 나를 산속으로 끌고 갔다. 나는 어쩐지 무서운 기분이 들어 금례엄마 손을 몇 번이나 놓으려 했지만 엄마는 있는 힘껏 내 손목을 잡고 우악스럽게 나를 끌고 갔다. 저수지에 다다랐다. 같이 죽자 한다. 나는 몸부림치며 금례엄마 손에서 빠져나와 달아났다. 달아나면 나를 잡으러 엄마도 쫓아오겠지 하고 뒤를 돌아보았는데 금례엄마의 모습이 안 보인다. 나는 섬뜩한 기분이 들어 왔던 길로 방향을 틀고 금례엄마에게로 달렸다. 저 멀리 금례엄마가 저수지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고 있다. 나는 울부짖으며 금례엄마 옷자락을 잡고 저수지 밖으로 끌어내보려 했지만 금례엄마는 정말 죽기를 각오한 사람처럼 끄떡도 없었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금례엄마를 멈춰야 한다. 이렇게 엄마를 잃을 수는 없다.
나는 엄마의 옷자락을 놓칠세라 세게 움켜쥐고 저수지 안에서 무릎을 꿇었다. 입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오는 저수지 물을 꼴꼴 삼켜대며 어렵게 한마디 한마디 떼어 말했다.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 정말 다시는 안 그럴게. 엄마 제발 죽지 마. 엄마 없으면 나 못살아. 한 번만 용서해 줘. 제발 용서해 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을 때에도, 도둑질을 하고 싶을 때에도, 그날을 떠올렸다. 저수지 안으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가던 금례엄마의 걸음을 떠올렸다.
그러면 참아졌다.
나는 그날 이후로 어떤 사건 사고 하나 없이 무사히 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