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by 시진



금례엄마는 그즈음 인생이 이다지 봄날일 수 있나 싶을 만큼 따뜻하다. 동생네 마을로 이사 오고나서부터 석규가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하더니 생전 하지도 않던 공부라는 것을 한다. 하교하고 나면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느라 바쁜 탓에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느릿느릿 집으로 귀가하던 아들이 어쩐지 요즘은 곧장 집으로 와 책상 앞에 앉아 무엇을 그리도 열심히 한다. 너 뭣하냐 하니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해야 한단다. 아들 공부 제대로 시켜 훌륭한 인간 만들어 보겠다고 그리도 미련하게 재가를 다녔는데, 그 길었던 과거의 노고와 시련이 덧없다 여겨질 만큼 석규는 이제야 안정을 찾은 듯했다. 덩달아 금례엄마의 인생에도 그렇게 봄날이 왔다.



아침 조회시간이었다. 학생과 교직원 전체가 운동장에 모여 애국가를 부르고 교장선생님의 훈시 말씀을 듣는 지루한 시간이다. 나는 애꿎은 운동장 바닥을 고무신 앞코로 쿡쿡 쑤셔대며 훈시 말씀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길었던 조회가 끝나고 우르르 각자의 교실로 돌아가는 복잡하고 웅성한 길에 선생님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이 앞에서 보니까 석규만 보이드라. 마치 감자밭에 혼자만 껍질 까 예쁘게 손질해 놓은 감자처럼. 석규 너만 참 희드라구."


나는 선생님의 칭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나는 교실 유리창쪽으로 시선을 돌려 흘끗 보니 귀가 시뻘게져있다. 왠지 기분 좋은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괜히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로 가 거울을 보았다. 여전히 내 피부색이 희어있는지 보고 싶었다.


우리 마을이든 옆 마을이든 옆옆 마을이든 시골 사는 애들 대부분은 다 흙 묻은 감자처럼 까무잡잡한데 나는 신기하게도 아주 어릴 때부터 희었다. 나는 또래보다 키도 좀 작고 얼굴이 미남형으로 잘생긴 편은 아니었지만 첫인상에 꼭 귀엽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흰 피부가 한몫했다. 시골살이의 대단한 관심사래 봤자 오늘 뭐 먹지. 내일은 뭘 먹지 등이 전부인데 어쩐지 나는 그날 선생님의 희다는 칭찬 이후로 외모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잘생겼다는 건 뭘까.


학교 복도에 벽보가 하나 붙었다. 보이스카웃을 모집한단다.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다. 벽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온다. 내 또래의 아이들이 마치 부잣집 자식들이나 입을 법한 옷을 다 같이 맞춰 입고, 정갈하게 빗어 넘긴 머리를 한 채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간 계속 궁금해하고 알고싶었했던 그것이다. 잘생겼다는 것. 이거다.

보이스카웃이 바로 그것이었다.


종례시간이 되자 담임선생님이 들어와 좀 전에 벽보로 보았던 보이스카웃 안내장을 학생들에게 나눠주며 그것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안내장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다 어느 페이지에서 딱 멈추었다. 보이스카웃 단복 설명이었다. 공수부대 군인들이 쓸 법한 각진 베레모를 삐딱하게 머리에 얹어 쓰고, 목에는 개나리색 스카프를 매는데 중앙에는 보이스카웃 배지를 달아서 고정한다. 남색의 블라우스와 남색의 반바지를 입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하얀색 반양말을 신는다.


나는 멋이라는 걸 배운 적 없지만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멋있다. 이걸 입은 나는 분명 멋있을 것이다. 나는 들뜨고 설레는 마음에 보이스카웃 안내장에 적힌 글자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다 읽고 싶었다. 그러다 마지막 장에서 그만 멈추고야 말았다. 보이스카웃 단원 참가 비용 때문이었다.


나는 보이스카웃 안내장을 책보에 마구 구겨 넣었다. 머릿속에 자꾸만 맴도는 금례엄마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경찰서 앞에서 옆집 아저씨에게 금례엄마가 했던 말. 짜봤자 똥밖에 안 나올 거라던 엄마의 그 말이 내 머리를 자꾸 때렸다.


나는 학교에 가서 복도를 지나다 보이스카웃 벽보만 보이면 우뚝 멈춰 서서 사진 속 아이들이 입고 있는 그 단원복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러기를 며칠이고 반복했다. 어느 날 돌아서 교실로 들어가는 나를 담임선생님이 불러 세웠다.


"석규야."

"예."

"잠깐 교무실로 오너라."


나는 잔뜩 쫄아 등껍질 속에 숨은 거북이처럼 어깨를 말아 수그리고 눈알만 이리저리 바쁘게 굴려댔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무슨 사고를 쳤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와 내 앞자리에 앉더니 그것을 내게 쑥 내밀었다. 보이스카웃 안내장이었다.


"석규야. 너 이거 하고 싶지?"

"아니요."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쭈뼛거리고 주저하다 망설이며 대답했다.

"우리 엄마는 돈 없어서 나 이거 하면 안 돼요."


선생님은 늘 내게 보여주던 그 친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안내장 밑에 숨어있던 노란 봉투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석규야. 이거 집에 가서 어머니께 드려라."

"이게 뭔데요?"

"선생님이 어머니께 드리는 알림장이야. 어머니께 드리기 전에 열어보지는 마. 약속할 수 있지?"

"예."


나는 노란 봉투를 행여나 구겨질까 책과 책 사이 소중하게 챙겨 넣고 조심스럽게 책보를 매었다. 내내 봉투 속 내용이 궁금했지만 선생님과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금례엄마에게 노란 봉투를 꺼내 드렸다. 엄마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아마 내가 교무실로 불려 갔을 때와 같이 잔뜩 쫄았을 것이다.


"선생님이 엄마한테 드리는 알림장이래. 나는 안 열어봤어. 선생님이랑 약속했거든. 엄마 빨리 봐봐."


금례엄마는 노란 봉투 안에 내용물을 꺼내보더니 이모네로 향했다. 까막눈이라 읽을 수 없는 탓이었다. 금례엄마는 이모부의 눈을 빌렸다. 이모부와 이모, 금례엄마 셋이서 방에 들어가 선생님의 알림장을 한참을 읽었다. 정말 한참이었다. 중간에 여러 번 무슨 내용이냐 재촉하고 싶었지만 나는 점잖게 기다렸다. 금례엄마가 이모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나는 엄마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내가 해석할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금례엄마는 다시 그 종이를 고이 접어 봉투에 넣고서 내 손이 닿지 않을 만한 장의 가장 높은 서랍에 그것을 넣었다. 나는 그제야 무슨 내용이냐 말해달라 재촉했다.


"너 학교생활 잘하고 있는지 선생님이 엄마한테 다 일러바쳐주셨어. 석규 너 학교에서 나쁜 짓하면 이제 엄마가 다 알아.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나는 엄마한테 선생님 칭찬을 매일 했다. 오늘은 선생님이 내게 어떤 말을 했고, 어떤 표정을 지어주셨고, 그래서 내 기분이 어땠고, 내일은 무얼 할 것이며, 앞으로는 어떨 것이고와 같은 달콤한 사탕 같은 이야기들을 재잘재잘 자주도 했는데, 선생님은 흰 죽 마냥 말간 이야기만 잔뜩 하셨나 보다. 싱겁다.


며칠이 지났다. 학교에 가려고 옷을 갈아입고 책보를 매려는데, 금례엄마가 그 책보에 새하얀 봉투 하나를 넣어 주었다. 이게 무어냐 하니 열어보지 말고 학교에 가면 곧장 선생님께 드리라 한다. 금례엄마도 선생님도 왜 자꾸 나를 우체부로 이용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등교를 하고 곧장 교무실로 가 선생님 자리로 갔다. 책보에 싸준 새하얀 봉투를 선생님께 드렸다. 선생님은 내 앞에서 봉투를 열어보지도 않고 내게 교실로 가라 했다. 왜 내게만 비밀을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약속을 지킨 나만 야속하다. 그냥 열어볼 걸 그랬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즈음에 선생님은 교실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석규야. 이거 보이스카웃 신청서야. 작성해서 종례 전에 제출해라."

"예? 저는 이거 안 하는데요."

"할 거야. 어머니께서 허락해 주셨어."

나는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짠순이 금례엄마가 허락을 했다니. 짜봤자 똥밖에 안 나올 엄마한테 무슨 돈이 있어서 내가 보이스카웃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모든 의문과 궁금증을 이길 만큼 나는 들떴다. 드디어 그 근사한 단복을 입을 수 있다.

나는 보이스카웃이다.


단복을 입은 나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근사했다. 보이스카웃 단원들은 단복을 입고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등교해서 학교 앞 횡단보도의 교통질서 안내를 하였는데, 그럼 그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꾀죄죄하여 구멍 나고 늘어지고 해져서 칙칙한 옷들 사이로 반짝이는 내가 서 있다.


나는 그해 여름, 보이스카웃 단원들과 여름 캠프를 떠났다. 밤색의 단원복을 입은 귀여운 여자친구들과 남색의 단원복을 입은 나와 남자아이들이 한데 모여 이인삼각 놀이도 하고, 캠프파이어를 하며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를 쓰고, 눈시울을 붉혔다가 또 까르르 웃었다가. 아마도 내 다난한 인생에서 내가 가장 풍족하고 따뜻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라.



'석규 어머니께.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 석규 담임입니다. 석규가 고학년에 느지막이 전학을 와 쉽게 적응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셨지요. 석규는 적응을 잘하고 있고 교우관계도 원만하며 선생님들께도 예의 바른 멋진 학생입니다. 졸업하는 해에 다양한 부문에서 두각을 띈 친구들을 선정해 상장을 주는데요. 아마도 석규는 인사성으로 상장을 받을 듯합니다. 하루에 스무 번을 마주치면 스무 번 모두 공손하게 인사를 할 만큼 아주 예의 바르고 멋진 친구거든요. 어머니께서 석규를 참 잘 키우셨더라고요. 훌륭한 아드님을 맡겨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이렇게 제가 편지를 드리는 이유는 학교에서 모집하고 있는 보이스카웃 때문입니다. 생소하시지요? 쉽게 말해 청소년 수련단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양한 레크리에이션 활동 등을 통해서 아이들이 건강하고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조직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보이스카웃에 대해서는 동봉해 드린 안내장을 함께 참고하시면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석규가 보이스카웃에 관심이 많은 듯해요. 교실 복도 곳곳에 안내 벽보를 붙여 두었는데, 석규가 그 벽보를 보고 서있는 것을 제가 자주 보았거든요.


안내장을 보시면 아시다시피 보이스카웃 단원 신청에 비용이 조금 듭니다. 아마도 조금 부담스러우실 거예요. 대부분의 학부모님들께서 다 부담스러워하시거든요. 제가 모든 학부모님들께 이런 편지를 드리는 것은 아니고요. 석규 담임으로서 석규가 꼭 보이스카웃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결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한 번에 신청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부담스러우시다면, 제가 절반을 내 드릴 테니 어머니께서 차차 천천히 내주심이 어떨까요? 아마 석규 인생에 잊지 못할 추억과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때에 건강하고 행복한 기억들을 심어줄 기회가 될 것이라 자신합니다. (이하생략)'


금례엄마는 매부의 입을 빌려 편지를 읽었다. 당장 가슴 깊이 무언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목구멍까지 콱하고 올라오는 그 무엇이 눈시울을 자꾸만 건드렸다. 금례엄마는 한 번만 더 읽어달라 또 한 번만 더 읽어달라. 재차 부탁했다. 몇 번이고 듣고 싶었다. 밤이 새도록 듣고 싶었다. 금례엄마는 사는 동안 듣고 싶었던 모든 말들을 그 편지를 통해 다 들었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집 안에 돈 될 만한 물건이 있다면 다 갖다 팔아서라도 석규에게 보이스카웃 단원복을 입혀야 했다. 염치는 사치였다. 금례엄마는 매부와 동생에게 부탁했다. 아니 간청했다. 석규가 보이스카웃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추수 끝나는 대로 다 갚겠노라고. 이자까지 붙여 갚을 테니 믿고 한 번만 도와달라고.


새하얀 봉투에 한 장 한 장 소중히 세어 넣었다. 절반이 아닌 전부를 넣었다. 금례엄마는 그날 꿈을 이뤘다. 지주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거면 된다. 석규가 학교에 가고 나면 금례엄마는 읽지도 못할 그 편지를 꺼내 그저 어루만졌다. 금례엄마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만약 집에 불이 나면 고민할 것도 없이 석규와 이 편지만 챙겨 달아나면 될 것이라.

봄날이다. 확실하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