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간 집과 금례엄마가 농사짓게 된 논은 본래 주인이 따로 있다. 벼농사를 지어 쌀을 수확하면 7은 금례엄마가, 3은 주인이 가져가는 식의 소작농이었다. 농사일을 여자 혼자서 한다는 것이 여간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금례엄마는 자신이 일굴 논이 생겼다는 사실에 몹시 기뻐했다.
꿈이 생겼다. 오늘 벌어 내일 먹고 또 내일 벌어 모레 먹고사는. 그러나 내 것이 아닌. 그저 석규 육성회비만 제때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끝도 없이 찾아오는 매일을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내 곳간 하나 없던 과거의 지긋한 챗바퀴에서 벗어났다. 언젠가 지주가 될 것이라는 꿈을 꾼다. 그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할 동기가 생겼다. 사활을 건다.
하지만 농사일이라는 게 혼자서만 열심히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더라. 때에 맞춰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와 작업해야 하는 것도 있고, 그 넓은 논을 경운기 없이 혼자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금례엄마는 적극적으로 이웃집 농사일을 도와주러 다니기 시작했다. 일손이 필요할 때 나서서 도와주면 금례엄마가 일손이 필요한 때에도 와서 도와줄 거라 믿고 시작한 일이었다.
농사일은 시기라는 게 있다. 적당한 시기에 맞춰하지 않으면 때를 놓치고 다음 해까지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마을 사람들은 금례엄마가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텃세를 부린다. 그 텃세는 치졸했다. 금례엄마 차례가 오니 그의 농사만 차일피일 미루었다. 결국 시기를 놓쳤다. 분개하다. 앞으로는 혼자서 석규 공부를 시켜야 하는데 1년 농사를 허무하게 망쳐버리니 눈앞이 가뭇한 게 아득하다. 금례엄마는 참지 않기로 한다. 호구처럼 보였다가는 내년에도 농사를 망치게 될 것이 뻔하다. 날이 밝고 오전에 바쁜 일을 대충 끝낸 금례엄마는 오후가 되어 옆집 부부를 찾아간다. 그들이 치졸함의 중심이었다.
나는 전학 간 학교가 좋다. 어쩌면 선생님이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내게 다정했다. 나는 그 살가움이 무엇이길래 그토록 그리워 선생님만 보면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러면 선생님은 내 웃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굶주린 살가움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었다.
남순이랑 하교를 한다. 남순이는 이모네 자식이라 나와는 사촌이고 나보다 한 살 위로 누나이지만 나는 남순이를 누나라 부르지는 않는다. 남순이는 나와 유일하게 친한 가족이다. 나는 남순이랑 하교를 하고 집에 왔는데 금례엄마는 없고 옆집에서 금례엄마 목소리가 뒤섞인 요란하고 사나운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금례엄마가 옆집 마당에서 그 집 아저씨와 싸우고 있다. 나는 금례엄마가 누군가와 싸우는 모습이 낯설다. 대부분 나로 인해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절절 매고 자식을 잘못 키워 죄송하다며 굽신거리기에 바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의 금례엄마는 마치 다른 사람 같다. 나는 금례엄마가 이토록 무식하고 상스러운 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날 처음 알았다.
나는 화가 났다. 금례엄마가 옆집 아저씨랑 왜 싸웠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알 필요도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분명 옆집 아저씨가 잘못했을 거다. 금례엄마는 싸우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금례엄마에게 모욕을 주고 손찌검을 하는 옆집아저씨의 모습이 뇌리에 세게 박혀 낮이고 밤이고 그 장면으로 괴롭다. 복수를 하고 싶다. 금례엄마가 받은 수치보다 훨씬 더 크게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나는 궁리를 한다. 그리고 무엇을 할지 결정했다.
새벽 두 시 내가 소변을 보기 위해 잠에서 깨는 시각. 나는 낫을 챙겨 들고 옆집 아저씨네 논으로 간다. 옆집아저씨네 논은 벼농사가 한창이었다. 나는 벼를 망가트리기로 한다. 추수할 때처럼 벼 밑단을 베어 가져가서 못쓰게 버려놔야겠다 하고 낫질을 하는데 도무지 요령이 없다. 연달아 헛짓만 하니 손목도 손가락도 하다못해 손바닥까지 아프다. 신경질이 나서 벼 윗부분에 쌀이 동글동글하게 맺힌 부분을 낫으로 치며 휘둘렀는데 웬일. 후두두 하며 알알히 맺힌 쌀알갱이들이 다 떨어져 나간다. 이거다. 나는 새벽에 그곳을 신나게 뛰어다니며 칼 대신 낫을 들고 춤을 추었다. 다음 날 엽짚 아저씨는 격분했다. 배고픈 산짐승이 민가로 내려와 논을 헤집고 다녔다고 생각했는지 어디 따지지는 못하고 온 마을 사람들을 붙잡고 우는 소리를 해댄다.
아직 끝이 아니다. 나는 고작 이것으로는 성에 안 찬다. 두 번째 복수를 할 것이다. 남은 벼들도 아작을 내버렸다. 3일째 밤. 오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논 한 바퀴를 휘두르고 나면 벼가 완벽하게 아작이 날 것 같다. 나는 한 손에 낫을 들고 논으로 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엽짚 아저씨가 나타나더니 내 목덜미를 잡아채며 '이 놈새끼 잡았다.' 한다. 잠복을 할 줄은 몰랐지.
옆집 아저씨는 우리 집 마당으로 나를 질질 끌어다 내동댕이쳐버렸다. 금례엄마와 나에게 당장 읍내 파출소로 가자 한다. 당신 아들 신고해서 콩밥 먹일 테니 각오하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파출소에 가니 다음 날 아침에 와서 사건 접수하고 경찰서로 가라 한다. 경찰서라면 1년 전 소 사건으로 불려 갔던 그 경찰서였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나는 금례엄마와 옆집 부부, 네 명이서 경찰서로 가는데 왜인지 이번엔 무섭지가 않았다. 작년에 경찰서로 가던 차 안에서는 너무 무섭고 겁이 나서 오줌까지 지렸는데, 어쩐지 이번엔 피식피식 웃음도 나는 것 같고 화가 잔뜩 나서 씩씩대는 아저씨 얼굴을 보니 복수에 성공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 하다. 경찰서에 들어가니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나를 보자 너 이놈 소 죽인 놈 아니냐 한다.
옆집 부부가 자초지종을 경찰에게 말하고 금례엄마와 나는 잠자코 옆에 앉아 듣고 있다. 경찰은 또 나에게는 한 마디도 없이 금례엄마와 옆집 아저씨에게만 무어라 무어라 떠든다. 나는 작년에도 이 의자에 앉았었는데, 저 경찰 아저씨는 작년에도 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는데 하며 시간을 때우지만 너무 거들먹거리면 안 될 것 같아 고개를 땅에 처박고 눈치를 보는 척을 한다.
나는 촉법소년이다. 아직도 열네 살이 안되었다. 경찰도 어른들끼리 합의를 하라 한다. 옆집 아저씨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금례엄마한테 손찌검을 하려 하니 경찰 어른들이 다급하게 말렸다. 경찰서 밖으로 나와 합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옆집 아저씨는 금례엄마에게 1년 치 농사가 완전히 망했으니 모든 비용을 토해내라 한다.
"나 돈 없어. 쥐어짜봤자 똥밖에 안 나와. 물어줄 돈 같은 거 없으니 정 억울하면 나를 갖다 파세요."
옆집 아저씨는 억울함이 거슬러 이성을 집어삼켜버렸는지 미친 사람같이 굴었다.
가만 생각해 보자. 금례엄마의 논, 집은 금례엄마의 것이 아니다. 본래 주인이 따로 있다. 금례엄마는 소작농이다. 맞다. 이 여자는 정말 쥐뿔도 없다.
옆집 아저씨는 금례엄마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어댔다. 그렇게라도 하면 화가 풀리는지 어린 내가 듣기에도 그 말들은 정말 악다구니였다. 금례엄마는 옆집아저씨의 폭력적인 악다구니를 들으면서도 표정 변화 하나 없이 태연했다.
옆집아저씨는 금례엄마의 고무신 옆으로 가래를 긁어모아 칵 뱉고는 돌아서 먼저 가버렸다.
금례엄마는 내게 먹고 싶은 것이 있냐 물었다. 나는 짜장면이 먹고 싶다 했다. 예전에 딱 한 번 먹어본 적 있었는데 그때의 짜장면 맛이 두고두고 잊히지가 않았다. 엄마도 짜장면을 먹었으면 좋겠고 나도 그렇다. 경찰서 근처에 보이는 중국집에 들어가 엄마는 짜장면 한 그릇, 나는 곱빼기로 한 그릇 시켜 맛나게 먹었다. 입에 검은 짜장을 잔뜩 묻혀가면서.
"석규야. 너 왜 그런 짓을 했냐."
나는 입 안에 가득 찬 짜장면을 한쪽 입 안으로 밀어 옮겨두고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엄마를 괴롭히니까 그랬지. 엄마를 괴롭히는 사람은 내가 절대 가만 안 둘 거야."
"아이고 석규야.."
하루가 고되고 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먼 길에 나는 금례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조금만 기다려줘. 내가 얼른 커서 엄마 호강시켜 줄 거야."
나는 짜장면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 금례엄마가 들으면 기분 좋을 말들을 해주고 싶었다. 금례엄마는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정말 환해서 자글자글한 주름도, 퍼석거리는 피부도 다 감출만큼이나 화사했다.
사흘이 저물었다. 그리고 옆집 부부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무슨 일인지 양손 가득 화려했다. 귀한 음식들을 잔뜩 들고 와 툇마루에 쌓아 놨다. 경찰에 신고도 안 통하고, 악다구니를 퍼부어대도 꿈쩍도 않고, 변상을 요구하자니 정말 쥐뿔도 없는 여자 같고, 괴롭혀서 말려 죽이자니 아들놈이 또 무슨 장난을 쳐놓을까 두려워서 잠도 안 오고. 옆집부부는 그간 생각이 많았다.
마땅히 혜안이 없어 그들은 유화책을 택했다. 그날 이후로도 찌짐 구워다 가져다주고, 김치 담갔다 나눠주고, 떡 해다 보내주고, 농사일로 바쁜 시기가 오면 일손을 모아 나서서 도와주었다. 금례엄마를 지치게 했던 치졸한 텃세도 사라졌다. 나의 시도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내가 금례엄마를 지켜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