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영감네 딸이 파독 간호사였어. 영감은 딸이 국가 경제에 크게 이바지하는 애국자라고 평소에도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거든. 그 귀한 딸이 귀국을 한다네. 영감네 식구들을 비롯해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딸의 귀국을 기다리며 한껏 들떠 있었지. 마을 사람들은 영감네 딸이 사 올 독일제 귀국선물을 기다렸거든.
우리 마을의 총 가구수가 대략 오십 가구 정도 되었는데, 가구당 두 개씩 선물을 받았어."
시리도록 찬 바람이 분다. 나뭇가지는 앙상하고 풍경은 색을 잃었다. 더없이 배고픈 계절이다.
계절이 주는 기운과는 상관없이 금례엄마는 평소와 다르게 왜인지 들떠 보였다. 마당에서 혼자 딱지치기를 하고 있었는데 금례엄마가 내게 부엌으로 오라는 눈짓을 하였다. 부엌에 가니 금례엄마가 반짝이는 금색의 포장지를 조심히 펼쳐내어 생전 처음 보는 새카만 것을 내게 주며 먹으라 한다. 나는 딱딱하고 납작하고 새카만 생김새가 낯설었지만 금세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초콜릿이다. 초콜릿에 대해서는 여기저기 주워들은 이야기가 많았다. 부자들만 먹을 수 있는 고급 간식이라더라. 미군들이 먹는 자양강장제라더라. 입에 넣는 순간 녹아 사라지는 마법을 부린다더라 식의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근데 그 전설이 바로 지금. 내 눈앞으로 왔다.
내가 아는 보통의 전설은 결국 허구이거나 과장된 이야기들이었다. 대부분이 그랬다. 그런데 초콜릿을 먹은 그날에 나는 진짜 전설을 경험했다. 입에 넣는 순간 녹아 사라지는 마법을 부린다는 그 전설 말이다. 미국은 미군들에게 이것을 간식으로 준다는 것 아닌가. 납득이 갔다. 이거면 전쟁이 나도 끄떡없다. 과연 대국이다.
맛있다. 진짜 맛있다. 나는 납작한 네모가 같은 크기로 3개 붙어있는 것 두 줄을 받았는데 다른 형제들은 몇 개를 받았나 보니 다들 한 줄을 받았다. 그렇구나. 내 두줄 중 한 줄은 금례엄마 것이구나. 저녁 8시쯤 되어 잠자리에 들려고 이부자리를 챙기는데 옆 방에 가만 보니 여섯째 형이 낮에 받은 초콜릿을 먹지 않고 책상 위에 소중히 올려 두었다. 아마도 아껴먹으려는 것 같다. 나는 잠을 자야 하는데 옆방 형 책상 위에 올려진 금색의 포장지와 새카만 초콜릿이 아른거려 잠을 잘 수가 없다. 나는 잠을 자지 않고 뜬 눈으로 누워 어두운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형들이 잠들면 저 방에 들어가서 초콜릿을 냉큼 가지고 나와 홀랑 먹어버릴 생각이다. 한 시간쯤 지나 살금살금 나가보니 아직 방에 불이 켜져 있다. 나는 다시 한 시간을 기다렸다. 아직도 불이 켜져 있다. 또 한 시간쯤 지났다. 아직이다. 나는 자꾸만 감기는 눈을 부릅뜨느라 괴롭다. 에라이 더러워서 안 먹는다 다 처먹어라.
포기하고 정말 잘 생각으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웠는데 가만 드는 생각에 다시 눈이 번쩍 떠졌다. 여섯째 형 초콜릿을 훔쳐먹다 걸리면 모르긴 몰라도 뒤지게 처맞을 텐데 어차피 들켜서 처맞을 일이라면 이장 영감네 집에 몰래 들어가 초콜릿 하나를 통째로 훔쳐먹으면 될 일이다. 이렇게 해서 들키나 저렇게 해서 들키나 초콜릿 꼴랑 한 줄 먹는 것보다야 통째로 하나 먹는 게 낫지 않은가.
나는 소사건 이후로 금례엄마에게 이장 영감네는 얼씬도 하지 않기로, 손자 놈과는 말도 섞지 않기로 한 약속이 있어 선뜻 움직이기를 머뭇거렸지만 낮에 먹은 초콜릿 맛을 포기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결국 후레쉬를 챙겨 살금살금 집 밖을 나왔다. 급히 나오느라 외투도 양말도 못 챙겼다. 차디찬 고무신에 맨발을 욱여넣고 살을 에는 찬 바람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하천을 건너 이장 영감네 집으로 달린다. 나는 조용히 영감네 부엌에 기어 들어가 찬통을 뒤진다. 부엌의 천장 가까이로 나무판자가 두 개씩 올려져 있다. 나무판자가 선반 역할을 한다. 그 판자 위에 찬통이 차례차례 진열되어 있다. 나는 키가 작아 위까지 손이 닿지 않은 탓에 마당을 살폈다. 밟고 올라설 수 있을만한 작고 네모난 통을 찾아와 발판으로 삼고 올라섰다. 첫 번째 찬통을 뒤지는데 생선 말린 것만 잔뜩 있다. 비릿한 냄새에 코를 찡긋거렸다. 두 번째 찬통에도 별것 없다. 마지막 세 번째 찬통을 뒤지려는데 울퉁불퉁한 바닥에 발판이 아슬아슬하게 흔들하더니 미끄러지며 그 자리에서 바로 고꾸라져 넘어졌다. 그 순간 찬통 밑에 겹겹이 쌓여있던 쇠그릇들이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며 그토록 요란한 소리를 냈다. 쨍그랑 소리가 메아리처럼 마을의 길을 따라 울려 퍼진다.
금례엄마는 방문을 등지고 누운 채 며칠을 보냈다. 밥도 짓지 않고, 마당 청소도 하지 않고, 나도 형제들도 챙기지 않았다. 초콜릿을 훔치려다 실패한 그날 밤에 금례엄마는 이장 영감네 집에서 무릎을 꿇고 거친 두 손바닥을 바쁘게 비비며 빌었다. 잠옷차림에 맨발이었다. 꿇은 무릎 뒤로 보이는 엄마의 발이 새빨갛게 붉었다. 꽁꽁 얼어붙은듯한 발가락과 사죄하는 입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입김만이 보였다. 나는 내 고무신을 벗어주고 싶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왜 그토록 멀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속절없이 추웠다. 금례엄마는 얼어붙어 딱딱하게 굳은 손에 뜨거운 입김을 호호 불어 가두고서 그 온기로 내 두 귀를 막았다. 엄마의 손은 사과를 하느라, 내 찬 귀를 녹이느라 연신 바빴다. 나는 곧 금례엄마의 맨발에 화가 났다. 아니 후회가 됐다. 영감네 집에서 초콜릿이나 훔쳐먹을 것이 아니라 손자 놈 엄마의 털신을 훔쳤어야 했다.
하교 후 집에 와 금례엄마가 누워있을 방문을 열었는데, 엄마가 없다. 온 집안을 다 뒤졌다. 금례엄마가 갈만한 모든 곳을 따라 찾아 나섰다. 마주치는 동네 어른들에게 물었다. 우리 엄마 못 보았느냐고.
"석규 네놈이 자꾸 사고를 치니 엄마가 너 버리고 도망갔나 보네. 아이고 석규 어쩌냐."
"우리 엄마는 나 버리고 도망가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럼에도 자꾸만 나쁜 생각이 들었다. 요 며칠 금례엄마는 평소와 많이 달랐다. 정말 나를 버리고 갔을까. 엄마는 이제 내가 싫은 걸까. 뻥튀기아저씨 말이 사실이면 어쩌지. 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차오르는 눈물이 버티지 못하고 흐른다. 태어나 처음으로 기도라는 걸 했다. 간절히.
늦은 밤이 되어서야 금례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금례엄마 품에 달려가 안기어 서러운 울음을 왕창 쏟아냈다. 금례엄마는 말없이 나를 도닥였다. 끝내 내 울음이 잦아들자 내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석규야. 짐 챙겨서 나와. 가자."
금례엄마는 재가라면 진저리가 나고, 동서네 찾아간다 해도 딱히 큰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 수가 없음을 알아도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백번 수치스러울 참이라도 좋으니 이 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동서네로 향했다. 그리고 쫓겨났다. 사람 마음이 희한하다. 쫓겨나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한결 가볍다. 시집간 큰 딸에게라도 연락을 해볼까 했지만 사위 볼 면이 서지 않아 돌아섰다. 금례엄마는 석규 볼 낯이 없어 하릴없이 길을 헤매다 여동생 생각이 났다. 그저 동생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여동생은 나를 보고 뛸 듯이 기뻐하며 환대해 주었다. 작은 집이라도 동생의 가족들끼리 모여 앉아 옹기종기 저녁밥 먹는 풍경이 낯설면서도 지독하게 부러웠다. 그저 얼굴을 보러 왔다고. 잘 지내는 모습 보았으니 되었다고. 석규가 기다리니 집으로 가야 한다고. 서둘러 떠나는 내게 동생이 말했다.
"언니. 많이 힘들지.. 우리 마을에 남는 논이랑 집 한 채 있는데 언니 여기 와서 석규랑 둘이 살어라. 살이도 농사도 내가 도와줄게. 응?"
열세 살. 나는 금례엄마 손을 잡고 이모네 마을로 이사를 간다. 몇 번째 이사인지 모르겠다. 이것도 여러 번 해봤다고 낯설 것이 없다. 전학 수속을 밟으러 금례엄마와 새 학교에 갔다. 나의 담임을 맡아줄 선생님이 내게 와 묻는 질문에 나는 꼼짝없이 얼어붙었다.
"너 혹시 소 죽였냐?"
뜨끔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는지 열감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혼내려는 게 아니니까 편하게 대답해도 돼. 그 동네에 소 죽인 초등학생 이름이 송석규인데 아주 흔한 이름은 아니지 않냐. 혹시 그게 너인가 신기해서 물어본다."
선생님은 내가 안심할 수 있을 만큼 친근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쭈뼛쭈뼛하며 "예." 했다.
선생님은 나를 안심시키는 그 친근한 미소를 보이며 내 머리를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앞으로 잘 지내보자."
나는 내게 지금껏 이토록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사람이 금례엄마 말고 또 누가 있었나 떠올려봤지만 아무래도 생각나는 이가 없다. 나는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졌다. 금례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마음속으로 굳은 다짐을 했다. 다시는 금례엄마를 울리지 않겠다고. 나로 인해 마을을 떠날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날의 등교를 꼬박 기다리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