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례엄마는 초라하게 구겨진 지폐 몇 장을 이렇게 저렇게 펴 보았다. 애써도 보잘것없이 꼬깃하였다. 곧이어 하얀 봉투에 고스란히 넣었다. 한걸음 한걸음 떼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네로 갈 것이다.
"석규가 훔쳐먹은 한 통, 발로 깨 부순 두통에 송구스러운 마음을 담아 몇 장 더 넣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자식 교육 제대로 시키겠습니다. 한 번만 너그럽게 봐주세요."
이장은 가만히. 금례엄마의 하얀 봉투를 받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치지도 않고 그저 쳐다만 보았다. 무어라 대답도 없었다. 금례엄마는 봉투 속 지폐처럼 꼬깃해지고 있었다. 봉투를 내민 손은 눈치도 없이 미세하게 떨렸다.
"돈은 넣어두시고. 다른 걸로 합시다."
나는 하교 후 집에 돌아왔다. 무거운 책보를 던져두고 홀가분하게 밖을 나서려는데 금례엄마가 나를 대문 밖으로 떠밀며 이장네로 가라 한다. 나는 영문도 모르겠고, 이장 영감탱이가 보기 싫어 투덜댄다. 영감네 집에 다다르자 문 밖으로 나를 기다리고 섰는 이장 영감탱이가 보인다. 영감이 싫은 건 싫은 것이고 인사는 할 것이다. 금례엄마의 십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었다. 나는 재깍 허리를 굽혀 씩씩하게 인사했다.
이 영감은 한결같이 내 인사를 무시한다.
이장 영감탱이는 나를 외양간으로 데리고 갔다.
"소 꼴 먹이고 와라."
가타부타 설명도 없다. 이장 영감탱이는 내 손에 소의 코뚜레를 쥐어줬다. 나는 얼떨결에 영감네 소를 데리고 풀밭으로 간다. 그리고 꼴을 먹인다. 나는 어쩌다 풀밭에 앉아 소가 꼴을 다 먹기를 기다리게 됐다. 꼴을 먹는 꼴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다. 소가 혀로 풀을 사악 훑어 모아 입에 넣고 씹는데 한참을 우물우물한다. 이렇게 천천히 먹을 줄은 몰랐다. 지루하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운 빛을 띠고서야 영감네 외양간에 소를 데려다 놓았다. 삭신이 쑤시는 것 같아 어깨를 두드려가며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이장 영감이 떠나는 내 뒤통수에 대고 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일 아까 그 시간에 또 오너라."
차라리 먼지 나도록 맞았으면 좋겠다. 정말 맞는 편이 훨씬 낫다. 나는 잔뜩 찢어진 눈으로 영감을 흘겨보았지만 인사는 잊지 않고 재깍 하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금례엄마를 붙잡고 하소연을 해댔다.
"엄마, 나더러 소 꼴을 먹이래. 내일 또 오래. 나 이거 얼마나,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알아? "
하고 물으면 금례엄마는 그저 계속하라고만 할 뿐이었다.
하교 후엔 나도 나름대로 할 일이 있다. 오라는 곳, 불러주는 친구는 없어도 마을을 뽈딱뽈딱 뛰어다니며 다른 놈들 노는 거 훼방도 놓아야 하고, 어디 재밌는 일 없나 이리저리 쑤시고 다녀야 한단 말이다. 근데 이 놈의 소 꼴 먹이는 일은 소한테 꽉 붙잡혀서 저녁 먹기 전까지 어디 가지도 못하고 풀밭에 앉아 소가 꼴을 얼마나 천천히 먹는지 보고 있어야 하는 일이니. 내게 소 꼴 먹이는 일보다 더 큰 벌은 없다. 영감이 나를 간파했다. 내가 졌다. 완전히 완패했다.
마을 중앙에 수로가 흐른다. 저수지의 물이 비가 많이 오면 넘칠 수 있으니 이를 방지하기 위해 수문을 열어두었고 그렇게 넘치는 물이 흐르도록 길을 터 두었는데, 그 수로가 마을 중앙에 있다. 수로 양 옆으로는 논밭이 있다. 소 꼴 먹이는 일을 아마도 열흘 가량 했을까. 나는 그날도 소를 들에 풀어놓고 하릴없이 수로 근처에 쭈그려 앉아있는데 수로 가장자리로 버려진 농약병이 보인다. 마을 사람들이 농사 지을 때 쓴 농약병을 수로 근처에 버렸나 보다. 나는 농약 먹고 죽었다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오름과 동시에 꼴을 먹고 있는 소가 눈에 들어온다. 저 놈의 소만 없으면 나는 이 일을 안 해도 된다.
꽤 기다란 작대기 하나를 주웠다. 반대편 수로 가장자리에 있는 농약병 입구에 작대기를 걸어 내 쪽으로 들고 와보니 다 쓰고 남은 농약이 세 숟갈정도 될까 남아있다. 나는 본격적으로 수로 가장자리를 따라 농약병을 찾아다녔다. 꽤 많이 보인다. 하나 둘 건져보니 한 숟갈, 두 숟갈 정도 되는 양이 조금씩 남아있다. 얼마나 모았을까. 제법 양이 꽤 될 것 같아 한데 모아 부었다. 얼추 한 병이 찬다. 나는 농약을 모으긴 모았지만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는 모르겠다. 내가 소를 데리고 나와서 농약을 먹여 소가 죽으면 내가 한 짓인걸 바로 알 텐데 그럼 이장 영감탱이가 또 나를 잡아먹든 금례엄마를 잡아먹든 하겠지. 소는 나랑 있을 때 죽으면 안 된다. 이장네 집에서 죽어야 한다. 나는 모아둔 농약 한 병을 숨겨 놓았다. 그리고 때를 기다린다.
소가 여름에는 풀을 먹지만, 겨울에는 먹일 풀이 없으니 소죽을 끓여다 먹인다. 겨울이 되어 들에 풀이 없어질 때까지 소 꼴 먹일 생각을 하니 골치가 아프다. 나는 소 꼴 먹이는 일을 무려 한 달 가까이했다. 어느새 가을 첫서리가 내린다. 아마도 이장 영감네는 소죽을 끓일 준비를 할 것이다. 소죽을 끓여다 여물통에 넣으면 나는 몰래 여물통에 농약을 부어놓을 생각이다. 그러려면 소죽을 끓여서 여물통에 넣는 시간을 노려야 하는데, 그 시간이 새벽 네 시경에서 다섯 시경 사이이다.
나는 가슴이 쿵쾅거리는 탓에 밤새 잠 한숨을 못 잤다. 꼬박 밤을 새 시곗바늘이 오전 4시를 가리키는 것까지 다 보고서야 마당으로 슬그머니 나왔다. 우리 집 마당에서 이장네 집 굴뚝을 볼 수 있다. 평상에 앉아 턱이 빠져라 하품을 해대며 지켜보고 있자니 어느새 굴뚝에 하얀 연기가 폴폴 올라온다. 나는 연기를 확인하자마자 어스름한 새벽의 안개를 뚫고 이장 영감네 집으로 달렸다. 나는 담장 뒤에 숨어 외양간 여물통에 소죽이 올라가기만을 기다린다. 잠시 후 여물통이 채워졌다. 나는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걸어 들어가 주변을 살피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농약 한 병을 여물통에 붓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기다렸다. 곧 있으면 온 마을이 난리가 나겠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결국 학교 갈 시간이 다 되어서 등교를 했다. 하교하고 집에 오는 길에도 내내 소 생각이 났다. 통쾌하다 싶다가도 진짜 죽었으면 어떡하지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마을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온하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분명히 농약 한 병을 다 부었는데.
나는 일부러 영감네 집 쪽으로 걸어가며 외양간을 훔쳐보았다. 놀랍게도 소가 멀쩡하다. 나는 곧 농약의 양이 부족했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소는 사람보다 덩치가 훨씬 크지 않은가. 그러니 한 병으로는 택도 없었던 것이다. 농약을 더 모아야겠다. 지금까지는 수로의 가장자리를 따라다니며 버려진 농약을 한 병씩 한 병씩 주워다 썼는데, 이미 내가 다 쓸어 모은 탓에 이제 수로에 가봤자 남는 농약 같은 건 없다. 나는 농약을 훔치기로 한다. 어차피 발에 차이는 게 농약이다. 우리 집은 담배농사를 짓는 집이어서 창고에 가면 농약병이 박스째 쌓여있다. 나는 집에 있는 농약을 한 병 훔쳐다 숨겨놓고 다시 때를 기다린다.
다음날 새벽 네시. 나는 또 꼬박 밤을 새우고 말았다. 다시 또 마당 평상 위에 앉아 굴뚝을 바라보는데 하얀 연기가 폴폴 올라온다. 나는 외투 안으로 농약 한 병을 꽁꽁 숨긴 채 서늘한 새벽바람을 뚫고 달렸다. 나는 헐떡대는 숨을 참아내느라 힘이 들었다. 외양간과 마당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슬며시 들어가 농약을 붓는데 끼익 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부엌문이 열린다. 화들짝 놀란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농약병을 여물통에 통째로 던져버리고 집으로 줄행랑쳤다. 쿵쾅대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 나는 다시 기다렸다. 이번엔 정말 온 마을이 난리가 나겠지.
계속 기다렸다. 또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학교 갈 시간이 다 되어 등교를 하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아니 포기를 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소가 안 죽다니. 소는 내가 죽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농약 따위로는 끄떡없는 대단한 짐승이다. 나는 내년 봄이 오는 것이 두렵다. 들에 풀이 자라면 나는 다시 소 꼴을 먹여야 한다. 이쯤 되니 내가 태어난 이유가 소 꼴 먹이기 위함이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소 꼴을 먹이다 결국 들에서 과로사할 운명인 것이다.
하교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마을이 가까워지자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도 나는 것 같고 이장 영감탱이가 방송을 하는지 마을 스피커로 웅웅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하여 서둘러 바쁘게 뛰었다. 어수선하고 소란한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소가 외양간을 부수고 뛰쳐나와 이장 영감네 집 앞 고추밭에서 미쳐 날뛰고 있다. 고추밭에서 날뛰던 소는 괴로운 듯 울며 반대편 콩밭으로 뛴다. 동네 어른들은 소를 잡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마을은 온통 난장판이다. 나는 가슴이 쉼 없이 쿵쿵대며 뛰는 탓에 진정이 되지 않는다. 손은 온기 없이 차게 식는 것 같았고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난장판이 된 마을을 외면하고 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숨어버렸다.
소가 죽었다. 나는 그것이 거짓말이기를 애타게 바랐다. 잠시 속이 뒤틀렸던 것을 어른들이 잘 모르고 착각한 것이기를 바랐다. 기분 나쁜 불쾌감과 표현 못할 죄책감이 옥죄어왔다. 숨 쉬는 것이 어렵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명절에 남의 집 부엌에 몰래 들어가 동그랑땡을 급히 훔쳐먹을 때 식도가 꽉 막히는 바로 그 느낌이었다. 나는 이장 영감탱이한테 미안했던 건지 무서웠던 건지 모르겠지만 혹시나 그 집 식구들과 마주칠까 봐 일부러 먼 길을 돌아 피해 다녔다. 나는 앞으로 소 꼴 먹일 일이 없어져서 몸은 편해졌지만 마음은 지독하게 불편했다. 무거운 돌바위가 가슴께에 꽉 얹혀있었다.
이틀이 지났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교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있던 녀석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지프차다!'하고 외쳤다. 수업을 듣고 있던 아이들 모두가 와하며 창가로 몰려들었다. 정말로 학교 운동장 가운데 새카만 지프차 한 대가 들어와 멈춰 섰다. 나는 그날 태어나 자동차를 처음 보았다. 새카만 지프차에서 새카만 옷에 새카만 선글라스를 낀 아재 둘이 내리더니 학교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선생님은 모두 제자리에 앉으라며 호통을 쳤다. 잠시 후 누군가 교실 문을 두드렸고 선생님이 나간 틈에 아이들은 웅성웅성하며 지프차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닫혔던 교실 앞문이 드르륵 열리고 어쩐지 상기된 듯한 표정의 얼굴을 한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나는 곧 새카만 옷에 새카만 선글라스를 낀 아재 두 명을 따라 새카만 지프차로 걸어갔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경찰이다.
나는 그날 태어나 처음으로 경찰차를 탔다. 나는 차를 타고 가는데 문득 이장 영감탱이네 집 테레비로 보았던 드라마 '여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일본순사가 독립군들을 잡아다 심문하며 고문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왜 하필 그 장면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동시에 바짓가랑이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줌을 지렸다.
경찰서에 도착하니 금례엄마와 새아버지가 와있다. 금례엄마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소는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란다. 되새김질은 한번 삼킨 먹이를 다시 입으로 게워내어 씹는 소화과정을 말하는데 나는 소가 되새김질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 알 턱이 있나.
그러니까 농약이 들어간 소죽을 완전히 소화시키지 않고 저장해 두었다가 게워내어 다시 씹어 삼키니 흡수가 느렸던 모양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농약을 두 병이나 들이부은 셈이다.
이장 영감네 식구 중 한 명이 외양간을 지나는데, 고약한 농약 냄새가 나서 여물통을 들여다보니 농약통이 버젓이 들어가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는 미쳐 날뛰고, 농약통이 제 발로 걸어서 여물통에 들어갔을 리도 없고, 누군가 소를 죽일 의도로 농약을 부었으니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 내가 쓴 농약은 담배농사에 쓰이는 농약으로 담배나무에서 나오는 진물을 빨아먹으려고 생기는 진드기 살충에 쓰이는 농약이었다. 그러니 농약통 중앙에 대문짝만 하게 담배나무에 쓰이는 농약이라 적혀있었겠지. 공교롭게도 이 마을에 담배농사를 짓는 집은 우리 집 밖에 없다. 이장 영감은 억울해 미쳐 돌아버릴 지경이다. 경찰들에게 내가 얼마나 영악하고 악독한 지 설명하기에 바쁘다.
"이 놈이 얼마나 위험한 놈인가 하면 나를 똥통에 빠트려 죽이려고 우리 집 똥통의 나무판자를 톱으로 썰다가 지가 빠진 놈입니다." 하면서.
그러니 나는 소를 죽이고도 남을 놈인 것이다 한다.
잘못은 내가 했는데, 경찰이 내게는 눈길 한 번을 안 주고 금례엄마에게만 이것저것을 묻는다. 얘 그날 아침 몇 시에 일어났냐. 일어나서 뭘 하는지 봤냐 하는 등의 조사였다. 아무튼간에 내게는 뭘 묻지를 않으니 고개를 푹 숙이고 요리조리 눈치만 살폈다. 금례엄마는 곧이어 내게 네가 진짜 소를 죽였냐 하고 묻는데 거짓말도 못하겠다.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장 영감탱이한테 소 꼴 먹이는 벌 정도로는 끝날 리가 없다. 감옥에 가게 되면 어쩌지. 혼자 남은 금례엄마는 어쩌지. 온갖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근데 경찰이 나를 풀어준다. 그냥 집에 가라 한다. 금례엄마가 하는 말이 내가 아직 열네 살이 채 안 되는 촉법소년이라 달리 처벌이 없다 한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살았다 했다. 금례엄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금례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해 보였다. 집에 돌아온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라 멍청하게 앉아 벽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금례엄마가 한 손에 부지깽이를 들고 와 내 앞에 앉았다. 그리고 내게 바지를 걷어 올리라 한다.
금례엄마는 한 대씩 맞을 때마다 수를 세라 했다. 스무 대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론 기억도 안 난다. 수를 세기는커녕 숨이 넘어가도록 울었다. 아파서 주저앉으면 금례엄마는 내가 다시 일어나서 종아리를 갖다 댈 때까지 기다렸다. 이토록 냉랭한 엄마의 모습은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게 낯설었다. 나는 그날 종아리 피부가 찢어지도록 맞았다. 살이 쓸려서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바지는 입지도 못했다. 자려고 누우니 이불에 피부가 쓸리고 아파서 나는 엎드린 채로 코를 훌쩍이며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밤중에 다리가 쓰라린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깼다. 누군가 내 다리를 만지고 있었다. 금례엄마였다. 훌쩍이느라 흐르는 코 먹는 소리를 삼키며 광목천으로 내 다리를 촘촘히 감고 있었다. 나는 왜인지 잠에서 깬 것을 들키면 안 될 것 같아 숨을 죽이고 자는 척을 했는데, 엄마는 광목천으로 감싼 내 다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다 끝내는 내 다리에 얼굴을 파묻고 숨죽여 울었다.
나는 소 죽인 사건이 어떻게 해결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금례엄마랑 새아버지가 이장 영감탱이와 소 값 변상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 같다. 나는 금례엄마에게 이장 영감탱이에게 가서 사과를 드리고 오겠다고 했는데, 그 집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말만 전해 들었다. 이장 영감은 이 좁은 마을에 살면서 우연이라도 마주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되도록이면 내 얼굴을 절대로 보고 싶지 않다고 했나 보다.
나는 인사성이 밝았다. 예의도 발랐다. 물론 이 마을에서 사고 치는 걸로도 1등이었지만 인사성으로도 1등이었다. 오죽하면 동네 어른들이 나만 보면 석규가 그래도 인사는 참 잘해.라고 했다. 금례엄마의 십계명 때문이었다. 어른을 만나면 먼저 공손하게 인사해야 한다. 어른이 수저 들기 전엔 절대로 먼저 수저를 들어서는 안된다와 같은 예의범절과 관련된 계명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만큼은 최고로 잘했다. 그런데 소 사건 이후로는 동네 어른들이 다 같이 모여 약속이라도 했는지 그 누구도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 어떤 어른은 공손하게 안녕하세요 했더니 짚고 다니던 지팡이로 내 머리를 툭툭 치며 이 새끼야 너 커서 뭐가 될래 한다. 또 나는 딱히 친구랄 것도 없었지만 하교 후 놀고 있는 아이들 무리에 끼어들어서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훼방 놓는 걸 좋아했는데, 잘 놀던 아이들이 나만 나타나면 스르륵 해산하며 자취를 감춘다거나 내가 옆에 있는 것을 보고는 밭에서 일하던 어른들이 들고 있던 호미도 내팽개치고 달려와 이 놈 새끼가 정신이 나갔나 누구하고 어울려 당장 집에 가라며 집으로 떠밀어 보내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이 마을에서 진정한 왕따가 되었다.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나를 싫어한다. 이제 나는 영영 이장 영감탱이네 집에 테레비 보러는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에 슬픈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