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례엄마는 가마솥에 밥을 짓는다. 밥을 짓고 나면 가마솥 밑바닥에 누룽지가 노릇하게 구워져 눌어붙어있다. 금례엄마는 누룽지를 긁어모아 주먹밥처럼 만들어서 찬통 어딘가에 숨겨 놓았다가 해가 어둑해지고 형제들 모두가 방에 들어가 잘 준비를 하면 눈짓을 하여 나를 불러 내었다. 부엌에서 엄마는 불을 때고 나는 그 옆에 앉아 누룽지를 먹는다. 나는 하루 중 이 시간이 가장 좋다. 열두 식구가 사는 복작하고 소란한 집에서 금례엄마와 유일하게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금례엄마는 내게 물었다.
"석규야. 너 이 동네에서 살기 안 힘드냐."
나는 괜찮다 한다.
금례엄마는 석규가 애잔하다. 석규는 누룽지를 보면 늘상 눈을 반짝였다. 와하며 좋아했다.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먹었다. 그 바삭한 누룽지를 무슨 요령인지 소리도 내지 않고 먹었다. 어찌 그리 먹냐 물어보면 녹여 먹는다 한다. 형제들이 누룽지 먹는 소리를 못 듣게 하기 위함이란다. 금례엄마는 어린 석규가 이토록 서둘러 크는 것이 두렵다. 금례엄마는 자꾸만 어리석고 고약한 생각에 잠겼다. 수박을 훔쳐 먹고, 남의 집 귀한 소를 죽이는 말괄스러운 골칫덩이로 살아도 좋으니 쉬이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누룽지가 내는 오도독 소리를 실컷 내며 살기를 바랐다.
금례엄마는 석규가 하교 후 같이 놀 친구가 없다는 것을 안다. 동네 아이들 옆에 붙어있기라도 하면 밭에서 밭일하던 엄마들이 고함을 치며 자신의 아이 손목을 냅다 낚아채 집으로 끌고 가 석규와 떨어트리는 것을 자주도 보았다. 금례엄마는 어둑해진 저녁. 부엌에서 누룽지를 먹이는 시간이 되면 석규에게 늘 물었다.
"너 여기서 계속 살 수 있겠냐."
그럼 석규는 또 괜찮다 한다.
"뭐가 괜찮어 이놈 새끼야. 너는 친구도 없고, 너 왜 그렇게 자꾸 사고를 치고 다니냐.. 사람들하고 잘 지내보면 안 되겠냐."
금례엄마는 누룽지를 먹는 석규 옆에서 항상 물을 끓이고 불을 때웠다. 어쩌면 핑계였다. 불 때는 연기에 눈이 매운 척을 하면 석규가 속았다. 금례엄마는 그때나 되어서야 실컷 울 수 있었다.
보름달이 알려주는 추석이다. 타지로 떠난 자식들이 명절이라고 본가로 와 온 동네가 북적였다. 마을은 집집마다 전 굽는 냄새로 잔뜩 기름지다. 이장 영감네 자식들도 명절을 치르러 왔다. 그들은 오면서 짐을 바리바리 싸왔는데, 그중에서도 손자 놈의 작은아버지가 손자 놈 주려고 사 온 선물이 나를 포함하여 온 동네 아이들을 들뜨게 했다.
자전거였다. 그 자전거는 어린이 자전거였는데, 뒷발통 양 옆에는 아기발통이 하나씩 달려 있고, 자전거 체인이 돌아가는 부분을 감싼 몸통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을 자랑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때 어린이 자전거를 태어나 처음 봤다. 내가 아는 자전거라고는 어른들이 타는 짐자전거뿐이었다. 짐자전거는 색깔도 칙칙하고 늘 녹이 슬어있는 데다가 무거운 짐이 한가득 실려 있어 하나도 재밌어 보이지 않았는데, 손자 놈의 어린이 자전거는 무지 귀엽고 반짝반짝하여 정말 재밌어 보였다.
손자 놈이 어린이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오면 동네 애들은 그 자전거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나도 한 번만 태워줘. 나도 한 번만 만져보자 하였다. 나도 어린이 자전거가 궁금했다. 딱 한 번만 만져봤으면, 딱 한 번만 타봤으면, 하지만 나는 소 사건 이후로 금례엄마와 이장 영감탱이네 집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않기로, 손자 놈과는 말도 섞지 않기로 약속했다. 나는 손자 놈의 어린이 자전거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손자 놈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동네 애들은 자전거 짐받이를 손으로 잡고 발맞춰 같이 달렸는데, 나는 그것도 정말 해보고 싶었다.
하교 후에 숙제할 놈은 숙제하러 가고, 칡 캐러 갈 놈은 칡 캐러 가고, 비석치기 할 놈은 비석치기 하러 가는데 자전거가 나타난 이후로는 온 동네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자전거 구경을 하러 갔다. 공식적 왕따로 거듭난 나는 이제 전 보다 더 할 일이 없다.
나는 그즈음해서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뭘 먹으면 자꾸 체하는 것 같고, 어쩐지 열도 나는 것 같다. 또 언젠가부터 잠도 안 온다. 먹는 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입부터 벌리고 봤는데 슬프게도 지금은 입맛이 없다. 금례엄마는 나더러 감기인가, 읍내 병원에 가 약을 지어 먹여야 하나 했지만 나는 내가 왜 아픈지 잘 안다. 이 병은 자전거를 타야 낫는다. 나는 하고 싶은 걸 못하니 병이 났다.
안 되겠다. 자전거를 타야겠다. 새벽 2시 소변을 보기 위해 잠에서 깬 시각. 나는 후레쉬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보름달빛을 따라 밟으며 영감네 집으로 간다. 해지고 낡은 평상, 손이 자주 닿은 부위를 따라 색이 바랜 장독들과 칠이 벗겨진 창문틀, 끄트머리를 따라 조금씩 부서진 기와와 같이 낡아빠진 것들 사이 반짝반짝 스스로 빛을 내는 자전거가 있다. 갑갑한 이 시골 마을에 자전거만이 유일하게 다른 세상에서 온 물건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소중히 챙겨 집 밖을 빠져나왔다.
나는 자전거를 훔쳤지만 타는 방법을 모른다. 탈 줄을 모르니 무식하게 둘러업고 산길을 따라 올랐다. 가는 길에 무거워서 몇 번을 들었다 내렸다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누가 볼까 무서워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나는 산에 올라 곧장 방공호를 찾았다. 이내 방공호 안에 자전거를 넣었다.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주워다 방공호 위를 덮어 자전거를 숨겼다. 집에 돌아와 다시 잠자리에 누웠고 나는 단잠을 잤다. 다음 날 일어났더니 내내 체한 것처럼 불편했던 속이 쑥 내려간 것처럼 편안해져서 밥을 두 그릇이나 싹싹 비웠다.
학교를 갔다 왔더니 온 동네 마을이 또 난리가 났다. 저녁이 되자 손자 놈이 이장 영감탱이 손을 잡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손자 놈은 오후 내내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부었고, 훌쩍대느라 연신 코 먹는 소리를 냈다. 이장 영감탱이는 자전거가 없어졌는데 우리 동네에서 이런 짓을 할 놈은 석규밖에 없단다.
"석규 너 인마. 자전거 어떻게 했어."
나는 천진한 얼굴로 모른다 했다.
"지금이라도 실토하면 용서해 줄 테니 바른대로 말해."
"정말 몰라요."
옆에서 지켜보던 금례엄마는 슬슬 화가 난다. 아무리 석규가 사고를 치고 다녔다 한들 자전거 훔친 도둑은 진짜 석규가 아닌 것 같다.
"이장님, 어떻게 무슨 일만 생기면 석규를 몰아세우십니까. 해도 너무하시네요."
나는 자전거 탈 줄을 모른다. 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이 이 자전거가 손자 놈 자전거인 것을 알기에 꺼내서 타 볼 시도도 못 한다. 나는 자전거가 너무 타고 싶을 때면 해 떨어질 때쯤 산으로 올라가 방공호의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걷어내고, 그 안에 쏙 들어가 세워둔 자전거 안장에 앉아 대략 가로 180센티 정도 되는 방공호 안을 왔다 갔다 움직여 볼 뿐이었다. 바닥이 자갈과 흙으로 울퉁불퉁하게 섞여 밟는다 해도 앞으로 잘 나아가지 않았지만 나는 앉아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내 거다. 내 자전거다. 여기에 있다.
한 달쯤 지나니 방공호 안에 숨겨둔 자전거는 더 이상 반짝반짝 빛나지 않았다. 새벽 중 산에 내리는 이슬비에 매일 방치된 자전거는 녹이 슬어 마치 100년도 넘은 유물처럼 보였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몰래 들고 나와 타볼까도 했지만 슬쩍 바퀴를 굴려보니 자전거 체인에서 나는 소리가 마치 이장네 똥통의 나무판자를 톱으로 썰 때와 같이 크게 들린다. 나는 자전거를 훔쳤지만 결국 한 번도 타보지 못하였다. 내가 그 동네를 떠나는 날까지도 자전거는 방공호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내 거다. 내 자전거다.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