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by 시진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다. 금례엄마는 아버지를 보고 돈 떨어져서 돌아왔냐 했다. 아버지는 껄껄 웃기만 하고 대답은 없었다. 아버지의 외양은 정갈했다. 구김 하나 없이 반듯하게 잘 차려입은 양복차림에 왜인지 좋은 냄새도 나는 것 같았고, 머리는 소가 핥은 것 마냥 반질반질하게 윤이 났다. 거적때기 같은 옷을 아무렇게나 걸쳐 입고 내내 쉰내를 풍기는 금례엄마와는 사뭇 달랐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물었다.

“올해 몇 살이냐.”

“여섯인데요.”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읍내로 갔다. 새 옷을 사입히고 새 신을 신겨주고 수정다방이라 간판이 달린 작은 가게에 나를 데려갔다. 아버지는 그곳이 익숙한 듯했다. 가게 안 사람들과 다정히 인사를 나누었는데, 비단결 같은 고운 한복을 갖춰 입은 아줌마는 나를 보고 방긋 웃었다.


내 옆자리에 친근하게 앉은 그 예쁜 아줌마는 아버지에게 나를 한번 안아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냉큼 아줌마의 무릎 위로 올라가 앉았다. 향긋한 분 냄새가 났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줌마의 말캉하고 푹신한 가슴팍에 내 얼굴을 파묻었다. 아버지와 아줌마는 무엇이 그렇게 우스운지 한참을 웃었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아버지가 죽었어. 나 일곱 살 작은아버지 집에서. 나는 크게 슬프지는 않았던 것 같어. 아마 금례엄마도 그랬을 거야. 같이 살아본 기억이 없으니 슬플 것도 없지. 그냥 추웠던 기억만 나. 눈이 많이 내렸거든. 그래서였나 어쩐지 마음은 스산했어.


작은아버지는 교수셨는데, 아버지가 그 뒷바라지를 했다 하드라고. 작은엄마도 그걸 알아. 그러니 난감했겠지. 과부가 된 금례엄마랑 내가..


작은엄마가 금례엄마 재가 자리를 찾는다는데 나는 그때 재가가 뭔지 몰랐어. 일자리인가 보다 했지 뭐. 장례를 치르고 금례엄마랑 나는 작은엄마 집에 얼마간 얹혀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침 일찍 일어난 금례엄마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어. 나는 이사를 가나보다 했어. 봇짐을 하나씩 지고 마을버스를 탔어. 한참을 갔어. 금례엄마랑 두런두런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 그때 그러드라고. 새아버지 집에 간다네. “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지루한 모습을 한 집의 대문을 넘었다. 마당에 서 있던 아재와 눈이 마주쳤다. 아재는 남루했다. 막 밭일을 하다 왔는지 짙은 감색의 장화에는 진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금례엄마는 내게 아재를 소개했다.

“석규야 인사드려라. 이제 네 아버지야.”

“안녕하세요 아버지.”

새아버지는 내가 아버지라 부르는 것에 놀란 탓인지 흠칫하는 눈치였다. 나는 아버지랑 살아본 적이 없기에 이 사람이든 저 사람이든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쉽다.


이 집의 자식은 일곱이고 나는 여덟째로 막내가 되었다. 학교 갈 채비를 하는데 다섯째 형이 학교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와 농사일을 도우라 한다. 나는 여태껏 농사일은 해본 적이 없는데. 학교는 진즉에 끝났고 나는 늑장을 부렸다. 길에 채이는 작은 돌들을 터덜터덜 걷어 차가며 내키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새아버지와 금례엄마를 찾아 논으로 가니 형제들 여럿이 같이 있다. 다섯째 형이 손에 호미를 쥐어주며 무어라 무어라 떠드는데 안 들린다. 나는 뙤약볕이 뜨거워 그늘에 가 있고 싶다. 목덜미가 타는 것 같아 여러 번 손을 갖다 대 보았다. 하는 수 없이 여섯째 누나가 호미질하는 것을 보고 어설피 흉내를 내보는데 재미가 없다. 나는 재미없는 일은 죽어도 하기 싫고, 맛있는 음식은 많이 먹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은 해야만 한다.

안 되겠다. 도망쳐야겠다.


저녁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왔는데, 형제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향한다. 눈빛이 매서워서 나는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보다 오늘은 제삿날도 아니고 명절도 아닌데 어떻게 밥상에 고기가 올라왔지? 나는 신이 나서 발을 동동거렸다. 고기반찬이 제일 좋다. 새아버지와 금례엄마가 수저를 들자마자 나는 젓가락으로 고기반찬을 한 뭉탱이 쓸어 내 밥그릇 위에 옮겼다.

맛있다. 진짜 맛있다.


개켜놓은 이불을 깔고 누워 단잠에 들렸는데 넷째, 다섯째 형이 나를 발로 툭툭 차며 밖으로 나와보라 한다. 형들은 금례엄마가 부엌에 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반대편 마당 뒤편으로 나를 끌고 갔다.

“형 나 졸린데 왜 불렀어?”

“건방진 새끼.”

넷째 형이 내 정강이를 걷어찼다. 반항할 틈도 없이 다섯째 형이 내 귀때기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왜 도망쳤냐 한다. 왜 고기반찬 혼자 다 처먹냐 한다.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재미없는 일은 하기가 싫고, 맛있는 음식은 많이 먹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은 해야만 한다. 그뿐이다.

“새엄마한테 일러바치기만 해 봐. 죽을 줄 알아.”

형들은 으름장을 놓고 방에 홀랑 들어가 버렸다. 창문 너머로 시시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툴툴 털어내는데 서러운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난다. 금례엄마한테 당장이라도 일러바치고 싶은데 형들이 무서워 못 하겠다.


자고 일어나면 안 아플 줄 알았는데 어째서 더 아프다. 나는 진짜로 내키지 않지만 다시 호미를 들었다. 애꿎은 풀만 찧어대고 있었는데, 저 멀리 땅따먹기 하는 놈들이 보인다. 나는 도망쳐서 오늘 밤 형들한테 처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이 놈의 농사일은 하기 싫다. 하여 도망쳤다. 땅따먹기 승부는 말할 것도 없이 내 차지였다. 나는 땅부자다.


유난히 해가 뜨거운 날이었다. 정수리에 찌짐 반죽을 얹으면 노릇하게 구워질 햇볕이다. 이런 날은 수박이나 쪼개 먹으면 좋겠는데 이 놈의 농사일은 쉬는 날도 없지. 나는 이미 형제들에게 미깔시러운 놈이다. 일을 돕든 안 돕든 나는 처맞게 되어있다. 그러자 돌연 나는 무서울게 없어졌다. 그래, 오늘은 비석 치기나 해야겠다. 비석 치기에 쓸 돌을 찾고 있었다. 누군가 내 목덜미를 꽉 움켜쥐고 집으로 끌고 가기 전까지.


나는 집 마당 수돗가로 단번에 고꾸라졌다. 부딪힌 무릎이 깨질 듯 아파 감싸 안았다. 새어 나온 새빨간 피가 손바닥에 스며든다. 둘째 형이었다. 나이 차가 한참 나고 키도 나보다 다섯 뼘은 커서 형보다는 삼촌이라 부르는 게 어울릴 듯싶은 형이었다. 나는 의아했다. 지금껏 이 형과 나 사이의 역사는 없었다.

형의 크고 두툼한 손이 내 뺨에 내려앉자 머리가 핑 돌았다. 눈앞이 잠시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그 크고 두툼한 손은 다음 내 뒤통수에 내려앉았고, 귀때기로도 갔다가 반대편 뺨으로 안착했다. 사람이 공포가 극에 달하면 악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손과 발이 덜덜 떨렸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금례엄마는 새참을 만들러 집으로 간다. 집에 가까워지자 마당에서 둔탁한 소리가 나 불안한 마음이 든다. 대문을 넘는데 수돗가에 고꾸라져있는 석규가 보인다. 가슴이 철렁한다. 가늠은 했었다. 석규 몸 곳곳에 시퍼렇게 얼룩진 멍도 보았고, 생채기 난 살도 보았다. 지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해야 했기에 다 알면서도 참았다. 정말이지 꾹 참았다. 하지만 이런 법은 없다. 이것은 금례엄마가 가늠한 수준이 아니다. 금례엄마는 석규와 둘째 사이를 가로막고 석규를 가로채 방으로 데리고 갔다. 다친 얼굴을 살필 여력도 없이 바쁘게 짐을 챙겼다. 짐이라고 해봐야 뭐 없었다. 아무렇게나 쑤셔 넣은 봇짐을 챙겨 석규 손을 잡고 농사일이 한창인 논으로 갔다. 새아버지가 금례엄마를 보자 새참을 찾는다.

“나는 내 아들 공부 제대로 시켜 훌륭한 인간 만들어 보려고 재가했지. 뚜드려 맞고 사는 꼴이나 보자고 여까지 온 게 아닙니다. “

금례엄마는 석규를 데리고 다시 마을버스를 탄다.

금례엄마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 자신에게 화가 난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