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엄마 집에 다 와갈 때쯤 되니 금례엄마의 발걸음이 티 나게 느려졌다. 나는 왜인지 재촉할 수 없었다. 집에 당도하여 마주한 작은엄마의 눈빛이 나는 잊히지 않는다. 사람은 눈으로도 깊은 한숨을 내쉴 수 있다. 금례엄마와 나는 잔뜩 구겨진 종이 같았다. 그만큼 쪼그라들어있었다.
또 며칠을 살았다. 구겨진 종이인 채로. 금례엄마는 그 집에서 열심이었다. 그게 무슨 일이든 간에 열심히 했다. 그리고 작은엄마도 열심이었다. 정말 열심히. 금례엄마의 세 번째 재가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이 집의 자식은 아홉이고 나는 올해 열한 살로 열 번째 막내가 되었다. 세 번째 새아버지는 담배 농사를 지었다. 첫 만남에 코를 찌르며 고역하게 풍기는 냄새의 근원이었다. 집에는 직접 재배하는 담배 나무 밭이 있었다. 이사 오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담배 나무 농사에 합류하게 되었다.
나는 농사일 도울래 맞을래. 하면 맞을래. 할 만큼 농사가 싫은데 그중에서도 담배 농사는 하기 싫은 일로 1등이다. 나는 담배 나무의 담뱃잎을 한 장 한 장 따서 모아 옮긴 후, 한 묶음씩 나눠 굴비 엮듯 또 한 장 한 장 엮고, 매달아 건조를 시키는 작업을 해야 했다. 담뱃잎에는 하얀 진액이 새어 나오는데, 그 진액이 손에 묻으면 불쾌하기 짝이 없게 끈적대고 냄새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약하다.
하기 싫다. 이건 진짜 하기 싫다.
담배 나무를 부러트리기로 결심한다. 나는 마치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다리 힘을 맥없이 풀고서 앞으로 넘어지고, 옆으로 넘어지고, 뒤로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내 온몸을 던져서 담배 나무 열 대 이상을 부러트렸다. 담배 농사하는 집의 담배 나무는 손가락과도 같다 하는데, 나는 그날 새아버지의 열 손가락을 부러트린 것과 다를 바 없는 셈이었다. 나는 담배 나무 근처로는 얼씬도 못하게 호되게 혼이 났고, 매를 맞고는 쫓겨났다. 매 맞은 부위를 연신 손바닥으로 달래면서도 나는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그 동네 마을에 테레비가 있는 유일한 부잣집이 이장 영감댁이었거든. 주말의 명화 하는 날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영감 집에 모여서 테레비를 봤어. 나도 주말의 명화 보고 싶었지. 근데 이장 손자 놈이 나만 초대를 안 해주는 거야. 왜냐면 내가 학교에서 손자 놈을 자주 괴롭혔거든. 테레비가 보고 싶으니까 어쩔 수가 있나. 잘해줘 봤어. 구슬려도 봤지. 근데 안 통하는 거야. 찌질하게 그만한 일로 삐쳤던 거지.. 그즈음 이장 영감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는 나한테 손자 놈 괴롭히지 말라고 호통을 치고 가네. 나는 기꾸도 안 했지.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괴롭혔어. 그쯤 되니까 손자 놈보다 이장 영감이 더 싫드라고. 사사건건 간섭하지. 한 일도 없는데 불러다 꾸짖지. 테레비도 안 보여주는 쪼잔한 손자 놈의 망할 영감탱이..
근데 오래 산 이장 영감보다 어린 손자 놈이 훨씬 똑똑해. 전략을 바꾸드라고. 주말의 명화 하는 날 테레비 보러 오라고 집에 초대도 하고, 도시락에 소세지 반찬 싸 온 날에는 자기 도시락을 나한테 주는 거야. 내일도 싸 오겠다면서. 이장 영감탱이는 나를 정말 싫어했어. 나만 보면 혀를 차고 눈을 흘겼거든. 근데 나는 기꾸도 안 해. 그러거나 말거나 테레비를 보니 좋지. "
나는 식탐이 많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고기반찬이고 다음으로는 과일이다. 근데 사 먹을 돈이 없다. 돈이야 뭐 항상 없었다. 돈이 없는 나는 가끔 과일을 훔쳤다. 훔쳐먹어봐야 한 두 개 훔쳐먹으니 아무도 모르겠지 했는데, 동네 어른들이 다 알고 있다. 어느 날, 새벽에 멧돼지인지 산짐승인지가 배가 고파 민가로 내려와 과일 농사짓는 비닐하우스를 찢어 아작을 냈다. 과일을 다 골라 처먹었다. 밤새 겨울 찬 바람에 방치된 작물들은 다음 날 보니 몽땅 시들해져있었다 한다. 비닐하우스 주인 부부는 억울해 죽는다. 이장 영감은 이 모든 게 석규 짓이라 한다.
이장 영감이 앞장서 비닐하우스 주인 부부를 데리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금례엄마와 나를 불러다 심하게 꾸짖었다. 근데 나는 범인이 아니다. 멧돼지인지 산짐승인지가 했다. 나는 억울해 죽겠는데 금례엄마가 나한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조아리며 이장 영감과 비닐하우스 주인 부부에게 사과한다.
“저 새끼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는지 원..”
나는 억울하다. 정말 억울하다.
나는 이장 영감과 주인 부부가 떠나고 금례엄마에게 매질을 당했다. 자려고 누우니 매 맞은 곳이 서럽도록 아프고 따끔하다. 나는 억울해서 잠도 안 온다. 이장 영감탱이가 싫어 죽겠다. 안 되겠다. 복수를 해야겠다.
나는 이장 영감탱이의 똥통을 노렸다. 이장네 푸세식 똥통은 대문 밖에 있어서 내가 담을 넘어 도둑처럼 집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새벽 2시 내가 소변을 보기 위해 잠에서 깨는 시각. 창고의 톱을 챙겨 이장네 똥통으로 간다. 똥간의 변기에 나무판자 두 개가 올려져 있다. 나는 그 나무판자에 티 나지 않게 톱으로 금을 가게 할 계획이다. 나는 금 간 나무판자를 밟고 똥통에 빠진 이장이 똥독에 올랐으면 좋겠다. 칠흑 같은 어둠에 달빛만 비치고 개미소리 하나 안 나는 마을의 새벽. 숨을 죽인 채 톱질을 한다. 서걱서걱 소리가 마치 열차소리만치 크게 들린다. 더 천천히, 더 조용히 톱질을 한다. 이 정도면 됐겠지. 일어나 나무판자를 지그시 밟아본다. 이럴 수가. 끄떡없다. 생각보다 너무 튼튼하다. 다시 톱질을 한다. 다시 밟아본다. 끄떡없다. 다시 톱질을 한다. 다시 밟아본다. 끄떡없다. 얼마나 반복했을까. 톱질에 지친 나는 긴장이 풀렸다.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자고 싶다. 승질이 나서 팍 하고 밟았는데 파지직 하며 부서진다.
그 순간 내 다리가 빠졌다. 두 팔은 나무판자 상판에 걸쳐서 대롱대롱 매달렸고 두 다리는 똥통에 빠져 있는데, 팔에 힘이 점점 빠진다. 아주 딱 죽겠다. 5분가량 버텼을까. 도저히 안 되겠다.
“살려주세요!”
이장네 가족들은 화들짝 놀라 마당으로 튀어나왔다가 똥통에 빠진 나를 마주했다. 금례엄마가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나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똥통에서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아무리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뭐 하다가 다쳤는지 기억도 안나는 상처가 다리에 하나 있었는데, 그 상처를 비집고 똥독이 감염되어 다리가 말도 못 하게 붓기 시작한 것이다. 금례엄마는 된장을 가져다 다리에 치덕치덕 바르고 면포로 싸 응급처치를 하고서는 깜깜한 밤중에 나를 둘러업고 읍내의 병원까지 잠시를 안 쉬고 뛰었다.
나는 동네에서 인사를 제일 잘하는 어린이로 유명하다. 금례엄마의 십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었다. 어른들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잘하자. 나는 똥통 사건 이후에도 이장 영감탱이를 만나면 허리를 재깍 굽히며 씩씩하게 인사를 했는데, 이장 영감탱이는 내 인사 한 번을 안 받아줬다.
열두 살 여름. 수박이 익는 계절이 왔다. 이장 영감탱이네 과수원에 수박이 탐스럽게 열렸다. 분명히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수박이 사과만 했는데, 어느 날 보니 수박이 수박만 해진 것이다. 나는 수박이 먹고 싶다. 학교 미술 시간에 미술 선생님이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라며 도화지를 나눠주길래 나는 수박을 그렸다.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나는 수박이라 답했다가 사랑의 매를 맞았다. 무의식이었다. 제발. 수박에 얼굴을 처박고 크게 한 입만 베어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근데 이장 영감탱이는 할 일도 없는지 과수원 중간에 원두막을 지어놓고 아침이고, 점심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아주 그냥 눌어붙어 앉아서 자리를 비울 생각을 안 한다. 거기서 잠도 자고 참도 먹고 하나 보다.
학교 앞 문방구 앞 평상에 앉아 다리를 앞 뒤로 흔들거리는데, 평상 밑으로 내 발에 무언가 자꾸 채인다. 고개를 숙여 평상 밑을 보니 누런색 빵 봉투 하나가 떨어져 있다. 나는 순간 번뜩였다. 좋은 생각이 난 것이다. 빵 봉투를 주워다 눈 크기만 한 구멍 두 개를 뚫었다. 그리고 뒤집어썼다. 이거다. 이거면 수박을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