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by 시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섰다. 아니,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석규의 기억 속에 엄마가 그날 망설임 없이 자신의 손을 잡고 그 집을 떠났다 기억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집도 없었고, 농사 지어먹을 논도 밭도 없었다. 까막눈이라 장사도 못해먹고, 써먹을 기술도 없다. 동서에게 재가를 권유받았을 때 금례엄마는 두 눈을 꼭 감았다 떴다.


재가는 식모살이었다. 고된 농사일과 끝도 없는 살림에 손은 매일 부르텄고 관절 마디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마음은 시리도록 추웠고, 걱정에 잠 못 이룬 날만 수일이었다. 모질고 팍팍한 살이를 이어나간 것은 석규의 공부를 위함이었다. 닭 잡아다 삶으면 석규만 더 줄 수 없어 일곱 형제들 여럿을 공평하게 먹였지만, 학교에서 육성회비 내라 하면 그것만큼은 석규 것을 제일 먼저 챙겼다. 그러면 금례엄마는 그것 하나로 한 달을 더 살 수 있었다. 그 시절 육성회비는 금례엄마의 위로였다.


“호기롭게 나왔지. 나는 아주 통쾌했거든. 금례엄마 손을 잡고 마을버스를 타러 가는데 어깨가 으쓱거려 혼났어. 근데 금례엄마는 풀이 죽었드라고. 왜 그러냐 물어도 웃기만 하고 대답을 안 해.

갈 곳이 없었던 거야 갈 곳이. 결국 다시 작은엄마네로 갔지.


나는 작은엄마가 싫었어. 교회 권사였는데 좀 이상하드라고.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서는 혼자 울면서 기도를 해. 근데 매번 자기가 죄인이라는 거야.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이 말을 달고 살기에 나는 그때 작은엄마가 정말 죄를 지은 사람인 줄 알았지.


며칠을 또 살았어 그 집에서. 그리고 작은엄마는 또 재가자리를 찾네. 남편은 교수고 본인은 교회 권사라 인맥이 좀 있었나.. 아무튼간 금례엄마 두 번째 재가자리를 찾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지. 그렇다고 집안 사정, 살림 따져가면서 봐주는 것은 아니고 그저 여자가 필요한 집이 있으면 금례엄마를 보냈어. “


이 집의 자식은 여덟이고 나는 올해 열 살로 아홉째 막내가 되었다. 나는 이전 금례엄마의 첫 번째 재가 집에서 끽소리 한 번 못 내보고 내내 맞기만 한 것이 두고두고 억울하였다. 나는 천치같이 당하지만은 않겠다 다짐하고 소심한 복수를 시도하며 살 궁리를 한다. 나는 형제들이 때리고 괴롭히면 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을 밤에 몰래 들고나가 마을 저수지에 던져버리고 돌아왔다. 만약 저수지에 물이 바짝 말라 언젠가 바닥이 다 드러나면 그보다 진귀한 만물상이 따로 없을 것이다.


그러자 모든 게 가소로워졌다. 때릴 테면 때리라지 했다. 그리고 나는 이미 맞을 대로 맞아봐서 어떻게 맞으면 덜 아픈지 잘 안다. 이건 진짜 나만 아는 거다. 나같이 처맞아본 놈은 없을 테니까. 처맞은 날에는 꼬박 밤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저수지에 갈 것이다.


형이라고 부르기도 싫은 고작 한 살 차이 나는 여덟째 놈은 내가 자면서 방귀 좀 뀌었다고 온 동네 애들한테 가스통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나는 여덟째 놈이 이틀 전 새아버지에게 근사한 운동화를 선물 받은 것을 안다. 얼마나 아끼는지 어디 신고 나갔다 오기만 하면 옷소매로 닦아 광을 내는데 입김까지 불어가며 아주 꼴값을 떤다. 나는 오늘 밤 그 운동화를 노린다.


나는 닭 우는 소리가 아닌 여덟째 놈이 우는 소리에 아침잠에서 깼다. 여덟째 놈은 눈이 찢어져라 나를 흘겨보다가 그것으로는 성에 안 찼는지 내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든다.

“네 놈 짓이지! 어쨌어 내 운동화 내놔 이 새끼야! “

“네 운동화를 왜 나한테 찾어. 나는 모르는 일인데. “

나는 능청스럽게 억울해했다. 금례엄마는 우는 여덟째를 달랬고, 새아버지는 물건 단속 못했다며 호되게 혼냈다. 여덟째는 다시 고무신 처지다. 나는 꼬수워 죽는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서리가 내리는 계절의 어느 날. 마을에는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이 나무를 태우면 엄마가 죽는다는 전설이 있었다. 나는 항상 이 전설이 진짜일까 궁금했다.


나에게는 동네 바보라 불리는 친구 병수가 있었는데, 병수는 뭐랄까 친구라기보다는 내 꼬붕에 가까웠다. 그리고 병수에게는 계모가 있었다. 계모 병수엄마는 읍내의 술집 잡부 출신이었는데 병수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이 여자와 재혼을 한 것이다. 당시 마을에 화장을 하는 아줌마는 아무도 없었는데, 유일하게 병수 새엄마만 화장을 진하게 하고 다녔고, 술집 출신이라 소문도 무지 안 좋았다.

그리고 새엄마가 병수를 틈만 나면 때려서 병수는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새엄마 욕을 해댔다. 그날도 병수는 새엄마에게 맞고 눈물 콧물을 질질 짜대며 나에게 새엄마 욕을 하고 있었다. 그때 병수가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 했는데, 그 말에 나는 500년 넘은 느티나무가 떠오른다.


병수를 꼬셨다.

“야 전설이 진짜일지 아닐지도 모르고 너도 새엄마 싫잖아. 한 번만 해보자. “

병수는 나의 긴 설득 끝에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보였다. 그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느티나무 밑에서 떨어진 나뭇가지들 몇 개를 주워다 모았다. 그 당시 마을은 추수를 끝내고 논에 짚들을 모아 짚단을 높게 쌓아두었었는데, 그 높이가 성인 키만 했다. 느티나무에서 조금 떨어진 논으로 가면 ㄷ자 모양과 같이 쌓인 짚단이 있었고, 우리는 이 안에 숨어서 느티나무 가지를 태우기로 한다.


병수가 느티나무 가지를 태웠는데 이상하게 마을이 조용하다. 우리는 궁금해졌다. 나는 병수에게 새엄마 어떻게 됐는지 집에 얼른 가보라 했지만 병수는 무섭다며 나더러 확인해보라 한다. 답답한 자식. 나는 병수네 집에 가서는 능글맞게 병수야~ 하고 부르는데 병수엄마가 방문을 벌컥 열고는 병수 없다! 한다.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느티나무 가지를 적게 모아 태운 탓에 안 죽었나. 하여 가지를 더 모았다. 각자 나뭇가지를 넘치듯 품에 가득 안고 돌아왔고, 병수는 다시 불을 붙였다.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추수가 끝나고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 바싹 말라 건조해진 짚단에 바람을 타고 불길이 옮겨 붙으며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길이 세진다. 짚에 불이 붙으니 짚들이 흩날리며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 날아가는데 당황한 나와 병수는 불을 꺼보려 애를 쓰지만 꼬마 둘이서 그 큰 불은 어쩔 도리가 없다. 결국 도망을 쳤다.


마을은 난리가 났다. 집집마다 어른들이 튀어나와 불을 끄고 있다. 우리는 산 중턱 어딘가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금례엄마가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 버선발로 마중 나와서는 내 꼴을 살핀다.

“어디 갔었어. 마을에 큰 불이 났었는데. 어디 다친데 없지? “

“그래? 난 몰랐네. 엄마 배고파.”

나는 금례엄마와 늦은 저녁을 먹는다. 막 한 숟갈 뜨려는데, 집 앞으로 소란한 소리가 들린다. 금례엄마가 문을 열어보니 씩씩대는 새엄마와 그의 손에 개처럼 끌려 오는 병수가 보인다. 병수 새엄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거친 욕을 마치 배설하듯 뱉어냈다.

“개놈새끼. 쌍놈의 새끼. 찢어 죽여도 모자랄 새끼. 석규 너 이 새끼 당장 나와. “

금례엄마는 물고 있던 밥 숟가락을 내동댕이 치고 마당 밖으로 뛰쳐나갔다.

“남의 자식한테 웬 쌍욕이냐. 이 미친년아.”

자초지종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금례엄마가 병수 새엄마의 머리채를 잡고 뺨을 때린다. 나랑 병수가 뜯어말릴 새도 없었다. 둘은 이제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굴러다니기까지 한다.


금례엄마는 딱 하나 참을 수 없는 말이 있다. 금례엄마는 평생 사는 동안 이 말만 들으면 지금처럼 갑자기 미쳐버렸다.

‘애비 없는 호로새끼’


불장난 사건 이후 금례엄마는 남편과 함께 마을 어른들에게 머리를 조아려가며 사과를 해야 했다. 금례엄마는 병수엄마에게 석규가 그랬을 리 없다고. 증거 있냐고. 왜 애먼 애를 잡냐며 머리채 잡아 흔들고, 따귀를 때린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괴롭다. 금례엄마는 석규에게 매질을 한다. 석규는 서럽게 운다. 숨이 넘어갈 듯 운다.


일주일 가량 지났을까. 나는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려는데 금례엄마가 다시 또 그 볼품없는 봇짐을 메고 나와 나에게 ‘가자’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금례엄마를 따라나섰다. 그늘이 드리운 금례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나는 말했다.

“엄마. 나는 느티나무 전설이 진짜일까 너무 궁금했어. 근데 내가 할 수는 없잖아.. 엄마를 두고 나는 그런 짓은 절대 못해. 근데 병수는 병수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대. 그래서 하쟀어. 잘못했어.. “


금례엄마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나를 빤히 보았다. 나는 금례엄마의 슬프게 처진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것을 보았다. 참지 못해 후두두 떨어지는 것도 보았다. 금례엄마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소리까지 내며 운다. 주름이 깊게 진 손바닥을 얼굴에 파묻고 서럽게 운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금례엄마 옆에 같이 쪼그려 앉아 함께 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