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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un 08.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51

2024.6.8 나희덕 <찬비 내리고>

‘열심히 일한 그대여, 선물을 주라. 낯선 곳으로 떠나라.’ 벗들과 군산을 떠난 1박의 여행. 충청남도 예산에서 아침을 맞습니다. 올해 책방에 오신 손님 중 예산에서 오신 부부와의 정담이 생각났지요. 예산이 작은 고장이지만, 추사 김정희 고택과 수덕사, 예당호 등을 말씀 나눴거든요. 오기 전에 검색해 보니, 예산전통시장의 음식장터, 소위 백종원 골목거리 볼거리였습니다.


홀로 하는 여행이 아닌 경우, 동행하는 벗들과의 여행공감도는 참으로 중요한 요인이지요. 함께 온 벗들은 책방주인인 저보다 더 책방을 사랑하고 주인의식을 가졌어요. 무엇보다 아날로그 책문화가 세상의 중심이 되기를 희망하는 벗들. 셋이서 한 맘으로 책방 탐방도 병행하는 여행이라 더욱더 행복한 시간입니다.


추사의 고택 대청마루 기둥에는 다양한 글들이 쓰여 있었는데요, 그중 ‘세간양건사경독(世間兩件事耕讀)-세상에서 두 가지 큰 일은 밭 갈고 독서하는 일이다’가 눈에 띄었답니다. 여행한 벗들 모두, 밭 가는 일도 열심히 하고, 독서는 더 즐겁게 하는 사람들이니, 아마도 추사선생은 후손들의 수다와 발걸음에 가슴이 뛰었을 겁니다. 고택을 둘러보며 기둥마다 쓰인 글귀를 읽는 벗들. 마치 서당에서 스승의 목소리를 따라 공부하는 학동 같았습니다.


오늘은 대전으로 가서 독립책방 몇 곳을 둘러보고, 대전의 명소 성심당에서 빵도 먹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세심(洗心)하고 돌아가렵니다. 전국에 비 소식이 있는데요, 푸른 잎마다 주렁주렁 맺을 초록빗방울소리와 함께 낭랑하고 투명한 주말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나희덕시인의 <찬비 내리고>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찬비 내리고 - 나희덕


우리가 후끈 피워낸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 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 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 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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