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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un 09.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52

2024.6.9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뜻밖의 곳에서 백범 김구선생님을 만났어요. 공주 마곡사에서 은거했었던 그의 길이 남아 있어서, 마곡사의 대웅전이나 대웅보전 등의 보물을 보는 만큼이나 오랫동안 머물렀네요. 가는 곳마다, 글자들이 있으면 꼭 읽고 지나가는 벗님들 덕분에 선생이 기거했던 별채 벽에 써 있는 <답설야중거>를 다시 한번 읽었답니다. 아침편지에서도 두 서번 올렸던 글이지요. 김구선생의 애송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막상 이 시를 쓴 임연당 이양언(조선 순조 때 문신)에 대해선 일반 독자들이 모르는 편이예요. 역사에서 '순조'하면 세도정치가 생각나는데요, 특히 이 시인은 사대부로서 성리학에 정통하면서도 농민들의 참상을 그린 민요시를 많이 지었다는 평이 있네요. 벗들에게 기념이 되라고 이 시를 배경삼아, 김구선생의 별채에서 한 컷 찍었답니다. 아침편지를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분도 계시니 이 시도 한번 더 읽어보시면~~.     


답설야중거 (踏雪野中去)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제 

불수호란행 不須胡亂行)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금일아행적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수작후인정 (遂作後人程)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어느 길이나 가는 길은 멀고 길지만, 돌아오는 길은 짧은 듯 가깝습니다. 두 벗 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인생의 전환점을 지나친 우리들의 발자국을 또한 생각했어요. ‘이 길을 이 벗들과 함께 다시 밝을 수 있을까.' 오순도순 말을 나누며 앞서 걷는 벗들, 그 뒤를 따라 걸으며 이야기를 듣는 저. 짧은 여행일지라도 출발했을 때의 둥둥 떴던 호기심, 기대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평화로움과 믿음을 서로가 확인하는 좋은 여행이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소위 ’결이 같은 동행‘이었던 게지요.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돌아오는 길이 더 짧게 느껴졌나 봅니다. 일상을 부지런히 살아가는 벗들이기에, 매양 놀러만 다니는 시간을 챙겨둠 역시 쉽지 않은 사람들이기에, 어쩌다 만들어진 이 한순간을 사진으로나마 추억하라고 뒤따라 다니며 제법 찍어주었더니, 저도 역시 마음이 참 좋기만 합니다. 기독교인인 벗들이, 이틀동안 부처님과 자연의 세상에서 놀다 왔으니, 오늘은 각자의 성소에 가서 기쁜 마음으로 고해와 기도를 하겠지요. 길을 노래한 시인이 많은데요, 어제도 보았던 접시꽃길을 생각나게 하는 시인 도종환의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한번 들어보세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 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 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마곡사 입구에 쎃여진 작은 돌답 들... 방문객마다, 돌 하나 씩 올려 놓은 마음도 찍음^^
공주 독립핵방 <느리게>
공주 고시재생샤업골목에 나태주 시인의 시가 쭈욱~~
공주 독립책방<가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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