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모니카 Jun 27.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70

2024.6.27 이순주 <감자캐는 날>

‘내 노동의 강도는 얼마일까‘를 생각하니, 저절로 말이 새어나오네요. “참 어리석게 사는구나”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분배와 배열을 잘 해야 효율이 높을텐데, 어제 제가 한 일에는 완전 과부하가 걸린 날이었습니다. 하지감자니 제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새벽부터 텃밭에 앉아 풀도 매고 고추와 오이도 따고 감자줄기 따라 올라오는 하얀감자를 만날 때 까지는 참 좋았습니다. 첫 감자수확이라고 엄마에게 갖다 드리고, 때 마침 놀러온 동생들과 점심도 먹고요. 그런데, 학생들 시험기간이어서 일찍 시작한 수업에, 월말이라 처리해야되는 여러 행정일에, 한달에 한번 있는 ’줌 시강독‘에 참여(거의 5시간동안) 하는 일까지.... 정말 하나도 빼놓고 싶은 일이 없을 정도로 제가 꼭 해야하고 하고 싶은 일이었음에도 마음만으로 온전히 성실하지 못했던 시간들. 지금 생각하니, 할 일을 제대로 소분하지 못했던 어리석음이 문제였지요.  

   

어제 남겨놓은 감자 두덕에 오늘 다시 만나려 했는데, 몸이 쉬라고 자꾸 말하네요. 그래도  아침편지쓰기를 1번으로 인정해주는 저의 새벽습관에게 고맙다고 전하며 이렇게 손가락을 움직여봅니다. 어제는 줌으로 만나는 시 강독시간에 신용목 시인의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 시간에 온다>라는 시집으로 완독경주를 마쳤는데요. 이 시간에 만나는 시들은 상당히 난해한 시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다른 완독자들은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저에게는 그렇지요.     


그림을 해석하려 하지 말고 그냥 보라 말하지만, 왠지 큐레이터의 설명 한마디가 보태지면 그림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가는 것처럼, 시인의 맘 속을 적은 시를 읽을 때도 시인의 말 한마디가 더해지면 어렵게 느껴지는 시도 왠지 쉽고 재밌게 다가와서 ’줌 시강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제처럼 제 몸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날에는 결국 그 시간도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인의 감정선에 한 몸이 되어 생각을 공유하기도 어려웠지만, 유독 참여자들이 무슨 평론가들 이상으로 시를 평하는 자세에 다소 지치기도 했습니다.      


’시 공부를 더 해야지‘라고 했던 초심이 ’시를 분석하며 공부해야 되나?‘라는 의구심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시인의 시를 읽어서 공감하고 더불어 잠시라도 제가 읽은 그 시의 주인이 되고 싶어서 시를 읽는 것인데요, 마치 시인의 마음과 합치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그의 식대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에 힘들기도 했습니다. 읽어서 바로 해석되는 시들은 ’너무 유치한가, 너무 지식이 얇은 건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참여 완독자들의 각개전투하는 평론을 제외한다면 신용목 시인의 솔직 담백하고 은은한 미소의 화답만으로도 즐거운 만남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한가지 배운 거라면 ’시란 결코 한 점, 한 선, 한 면으로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속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면체들의 구성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구나‘입니다. 제가 어려웠지만 여러분께서는 다른 각도로 다른 세상이 보일테니 그래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100편이 넘는 시에서 ’떨림 있는 은유‘로 다가온 시작법은 배웠으니까요. 감자이야기를 쉽게 소곤소곤 하듯 쓴 이순주 시인의 <감자를 캐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감자를 캐다 이순주     


비포장 도로변 밭 이랑에

씨감자 같은 아낙들

두툼한 살집 땅 위에 접으며

이야기 싹을 튼다

옹이진 손아귀마다 구부정한 날들 닮은

호미자루 들려 있다

덩굴진 감자 줄기를 잡아 훠이 훠어이

어둔 시간을 걷어내며 이야기꽃을 피원낸다

씨눈 터지는 소낙비 같은 웃음소리는

좀처럼 펴지지 않는 -

저런 삶 같은 세월 밀어낸다

흙의 맥을 짚어가며 호미질로 살살 흙을 발라 뿌리 잡아당기면

큰 놈 작은 놈 할 것 없이 한 무더기 달려 나온다

- 이놈들 다 품 안에 자식이여

기껏 키워 뿔뿔이 흩어지면 남남이지

한 줄기에 주렁주렁 매달리던 이야기들 와그르르,

떨어져 나와 밭이랑에 수북이 쌓인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완행버스 한 대 잠시 멈췄다

더딘 시간을 끌고 덜컹덜컹 지나가면 어느덧

生의 저편에 완강히 버티고 앉은 아낙들이 보인다     

제 발걸음으로 열 발자욱쯤 되는 작은 두둑 한줄에서 나온 감자... 세 줄 남았는데...
비비추 꽃이 새벽 이슬을 대롱대롱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봄날 아침편지6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