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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un 29.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72

2024.6.29 이고은 <유월을 보내며>

산책 길에는 ’무장애길‘이 있는데요, 처음엔 낯설었던 이 말이 요즘에야 익숙해집니다. 취지는 장애인들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장애인들까지도 편하게 다니라고 조성된 길이라네요. 하지만 이름이 왠지 불편해서 다른 이름으로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답니다.^^ 하여튼 월명공원 산책길에 새로 생긴 이 데크길, 사람들이 새로 난 길로 나오는 걸 보고 저도 한번 들어가봤어요. 어디를 거쳐 어느 길로 나오는지 보려구요. 길 내내 경사도 없고 평탄하게, 널찍하게, 좌우로 보면 공원 저수지의 풍경이 바로 코앞에 보이도록 만들 길 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걷는데 하등의 장애를 느낄 필요가 없어서 휠체어를 대동한 장애를 가진 분이라면 산책하기 좋겠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길을 조성하는데, 자연 숲속을 이렇게 까지 침범해야 되는가 하는 데에는 의구심과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다른 방법의 ’무장애길‘조성도 가능할텐데, 누가 어떤 기준으로 길을 만드는데 잣대를 들이대는가... ’편리함‘이라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 달라서 혹시나 자신의 편리함이 ’이기심‘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가 깊이 생각해 볼 때입니다,    

  

저도 이 길을 따라 쉽게 텃밭으로 가서 나머지 감자를 모두 캐니, 딱 한 상자쯤 나왔지요. 그나마 크고 예쁘게 생긴 것들만 골라, 지인들께 나눠드렸어요. 거의 외식에 의존하는 제가 감자음식을 해서 먹을 일이 많지 않아서요. 나누고 나면 배가 부르다는 그 말, ’참 말‘ 이었답니다.어느 지인의 말씀처럼, 한 상자라도 제게 보답하려고 봄 여름, 혼신을 다 했을 감자에게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이른새벽부터 새들이 어찌나 지지배배 거리는지, 그 중 유별난 소리를 들려주는 새의 소리를 녹음해서 새박사에게 보냈는데 아직 답장이 안 오는군요. 마치 물방울 빨아들이는 듯한 소리가 예뻐서요. 오늘부터 장마비가 시작된다 하네요. 에어콘 대신 제습기 한 대를 배치해서 장마철 습기들과의 대치에서 이겨보렵니다. 늦은 밤 감자 사진들을 보면서 모아둔 감자 시 한 편을 읽는데 제 맘과 똑 같은 구절이 있더군요, -감자를 캐고 나면 유월도 다 간다 / 감자를 캐면서 유월의 깊은 곳까지 헤집는다 / 땅 속의 깊은 어둠까지 캐다 보면 한 해의 맨발이 다 보인다 - (박칠근 시인의 감자 캐는 유월에). 저도 이제 할 일 다 한 유월을 보냈으니, 그리고 주말을 맞이 하니 맘이 개운 합니다. 장마가 오려면 오라지~~ 이고은 시인의 <유월을 보내며>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유월을 보내며 – 이고은     


더위가 말랑말랑 익을 무렵 

구슬땀 똑똑 흘러내려

뜨거운 내 심장을 적시네     


어릴 적 흙바닥에 끄적거리듯 

단비야 내려라 단비야 내려라 

장마 소식에 첫날밤처럼 달뜨네     


떠나는 사람 돛단배에 실려 보내고 

은빛 물결따라 머무를 사랑 오라 

손짓해도 되려나     


쪽빛 달밤 살찌우려면 한참 걸려도

한 해의 반은 한 뼘조차

모자라지 않구나     


아쉬움 하나 남지 않았다고

어깃장 놓으면

누가 누가 나무랄까    

 

구멍난 어망처럼

빠져나오는 한숨 내쉬며

유월 너를 보낸다.

자위나무, 합혼수 라고도 하지요. 은은한 향기로 6월 마지막 주간을 채워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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