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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un 30.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73

2024.6.30 윤석구 <늙어가는 길>

밤새 내린 천둥과 장대비로 어찌 안녕하신지요. 장마철을 알리는 신고식치고는 엄청 요란스럽게 합니다. 지금도 거센 바람으로 흔들거리는 창문은 밤 사이 요통꽤나 왔었겠다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제 몸에도 그대로 전해지네요.^^ 밖거의 1년이 되어가는, 채상병 희생이 있었던 거대한 장마물결도 생각나고요. 올 장마철에는 그와 같은 재난이 없기를, 미리미리 안전대책이 세워지길 바랄뿐입니다.   

   

어제는 아침수업부터 무슨 무슨 약속들이 즐비했어도 부산하지는 않았답니다. 오히려 자주 만나는 분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뵙는 특별한 시간이었네요. 어느 분은 무대 연극 위에서, 어느 분은 나눔장터에서, 또 어느 분은 음악회 합창대에서...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나면 익숙해지는 일상처럼 어느날 부터는 그이와의 연분에서 마치 장마철 피어나는 흐릿한 곰팡이의 씨앗을 볼 때가 있는데요, 이렇게 그들의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은 게으른 제마음을 씻어주는 맑은물이 됩니다. ’아, 이런 재주.. 이렇게 많은 재능을 가진 분이구나‘  

   

저는 별다른 재주도 없고, 혹여 있더라도 들어낼 용기가 없으니, 늘 하는 일 중에 하나, 책을 펼치고 관련 영상을 보는 일. 오랜만에 글쓰기(시쓰기) 기본규칙에 대한 영상을 보면서 문우들께도 보내드렸죠. 글을 쓰는 저같은 초보자들이 너무 쉽게 범할 수 있는 많은 실수들.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으니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연마의 과정이 중요하거든요. 먹고 입고 자고 일어나는, 일상으로 체득된 자동버튼처럼, 글쓰기에서 꼭 필요한 규칙들을 서로 공부하자고 합니다. 저는 성격이 원래 그런지, 제가 좋은 것은 남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많아서, 꼭 들려줘야 맘이 편한 요상한 이기적 유전자가 있나봐요.^^     


이틀 전 텃밭에서 감자캐기를 마무리하면서 물린 모기들의 흔적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피부들. 곳곳에서 보내는 청춘으로의 불가역성, 늙음의 신호. 하지만 슬프지는 않아요. 이 또한 살아있음의 표현이고, 당연히 있어야 할 과정이니까요. 혹여 오늘 장마비와 바람으로 일상의 태두리에 변형이 생기더라도, ’다 그런거지’라는 노랫말 한자락 떠 올리시면 금새 마음에 평화와 행복이 들어설 겁니다. 유월의 마지막 날, 오늘도 당신께 축복이!! 윤석구 시인의 <늙어가는 길>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늙어가는 길 – 윤석구     


처음 가는 길입니다

한 번도 가본적 없는 길입니다

무엇하나 처음 아닌 길은 없었지만

늙어가는 이 길은 몸과 마음도 같지않고

방향감각도 매우 서툴기만 합니다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어리둥절 할 때가 많습니다

때론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곤 합니다     


시리도록 외로울 때도 있고

아리도록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어릴적 처음 길은 호기심과 희망이 있었고

젊어서의 처음 길은 설렘과 무서울 게 없었는데

처음 늙어가는 이 길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지팡이가 절실하고

애틋한 친구가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도 가다보면 

혹시나 가슴뛰는 일이 없을까하여

노욕인 줄 알면서도

두리번두리번 찾아봅니다. 

    

앞길이 뒷길보다 짧다는 걸 알기에 

한 발 한 발 더디게 걸으면서 생각합니다     


아쉬워도 발자국 뒤에 새겨지는 뒷모습만은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하면서

황혼 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꽃보다 곱다는 단풍처럼

해돋이 못지않은 저녁노을처럼

아름답게 아름답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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