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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ul 05.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78

2024.7.5 김종제 <장마>

연필을 깍을 줄 모른다고 찾아온 학생. 연필깎이 기계가 작동이 안되어서 제가 깎아준다고 했더니, ’어떻게요.?‘ 라고 묻더군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행위중 하나, ’연필깎기‘가 있습니다. 연필을 왼손에, 작은 칼을 오른손에 잡고 양손 엄지를 이용해서 연필을 깍는 제 모습이 신기했나봐요. 혹시나 하는 맘에 저는 들여다보던 학생에게, ’이렇게 칼로 깎으면 위험하니까 너는 하면 안돼...‘ 라고 말했죠. 덕분에 학원에서 돌아다닌 몽당연필을 다 깎아놓았습니다.     


종이와 연필을 만나면 참 마음이 편안합니다. 아마도 제 나이 이상의 분들은 이런 편안함이 어떤 마음인지 충분히 이해하실거예요. 문명과 과학의 혜택으로 수많은 물상들이 생겨나서 살아가는데 많은 편리함이 있는데요, 이제는 그 이기품(利器品)들이 지나치게 발전해서 때론 부족한 것보다 못한 때가 많아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쉬운 양면의 얼굴이지요.     


우리는 디지털 세상에 젖어있는 우리들. 제가 매일 사용하는 노트북과 핸드폰을 비롯해서 자동차까지... 때론 일부러 뚜벅이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러워 보입니다. 걸어다녀도, 버스타고 다녀도 저보다 세상 할 일을 더 잘하는 듯한 모습이요. 마치 종이와 연필을 만나면 편안함을 느끼듯이, 어제 만난 후배도 뚜벅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심지가 곧고 반듯한 사람이어서, 오랜만에 참 정겹고 편안한 대화였습니다.      


밤새 깊은 잠을 못자고 뒤척이면서 본 영상 중에 날씨예보도 있었는데요, 가까이 중국의 홍수사태가 남의 일이 아니게 느껴집니다. 오늘부터 상당기간동안 집중 폭우를 만날 수도 있다고 예보하네요. 비가 오면 아무래도 마음이 축 처지는 느낌인데요. 커피를 줄일 수는 없으니, 고요히 커피향기 속에 빗물소리도 담아둘까 합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하니까요. 김종제시인의 <장마>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장마김종제


한 사나흘

바람 불고 비만 내려라

꿈결에서도 찾아와

창문 흔들면서

내 안에 물 흘러가는 소리 들려라

햇빛 맑은 날 많았으니

아침부터 흐려지고 비 내린다고

세상이 전부 어두워지겠느냐

저렇게 밖에 나와 서 있는 것들

축축하게 젖는다고

어디 갖다 버리기야 하겠느냐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구에게 다 젖고 싶은

그 한 사람이 내겐 없구나

문 열고 나가

몸 맡길 용기도 없는게지

아니 내가 장마였을게다

나로 인해

아침부터 날 어두워진 것들

적지 않았을테고

나 때문에 눈물로 젖은 것들

셀 수 없었으리라

깊은 물속을 걸어가려니

발걸음 떼기가 그리 쉽지 않았겠지

바싹 달라붙은 마음으로

천근만근 몸이 무거워졌을 거고

그러하니 평생 줄 사랑을

한 사나흘

장마처럼 그대에게 내릴 테니

속까지 다 젖어 보자는 거다

<사진, 박선희 선생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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