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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ul 09.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82

2024.7.9 안도현 <비>

‘인격(人格)이란 무엇인가?’ 모 중학생들의 비인간적 행위로 한 사람의 인생이 파괴된 사건을 들었는데요. 소시민들이 평범하게 정다운 모습으로만 살고 있다고 생각한 저에게는 참 충격적 내용이었습니다. 학원 선생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학부모 한 분이 두 자녀들과 들어오시더군요. 

‘선생님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감사드립니다’     


한 자녀는 고3이어서 대학의 수시준비차, 또 한 자녀는 학원시스템이 아닌 일대일 과외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휴원을 결정하면서 저와 상담을 나눴던 가족입니다. 보통 이런 경우에 전화나, 문자로 일방적 통보를 받는 편인데요, 그럼에도 저는 늘 ‘감사의 편지와 작은 선물’을 준비했지요. 이렇게 자녀와 함께 오셔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받는 것은 흔치않는 경우랍니다. 저도 답례로 자녀들에게 장학금이라며 소소한 선물을 주면서, 시력이 나쁜 저를 위해, 어디서든 먼저 알아보고 인사 나누면 더없이 고마울거라 했습니다. ^^     


앞에서 말씀드린 사건의 학생들에게는 어떤 부모님이 있을지 궁금했어요. 물론 요즘 세상에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녀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고금을 통해 변치 않는 진리, ‘그 부모에 그 자식’이란 말은 아직도 유효한 기준입니다. 학원을 하다보니, 매우 가까이에서 학원가족들의 모습을 아는 경우가 많은데요, 학생의 성격과 태도는 역시나 부모님과 거의 동일체인 경우를 많이 봅니다. 운좋게도 저는 정말 좋은 사람들과 많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혹여나 음지에서 자라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양지가 되어주고 싶은 맘으로 청소년지도사나 사회복지사 같은 공부를 할 때도, 학원에서의 상담경험이 큰 공부가 되었었답니다. 학원이라는 작은 집단에서나마 할 수 있는 청소년동아리를 만들어서 ‘봉사활동과 기부’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함께 익힌 지난 세월들(13여년)은 아마도 오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지금도 맘 같아서는 비행(非行)을 저지른 청소년들에게 제 나름의 오지랖을 열어서 그들에게 선(善)이 되는 모습을 가르쳐주고 싶지만 이제는 저도 역량이 부족한지, 아니면 나이 들어서 도망가고 싶은지, 자꾸 피하고픈 맘만 들어요. 이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요...   

  

오늘도 하염없이 비는 내리고, 텃밭에는 물고랑이 제대로 열어있을지, 가보고 싶은데 엄두는 안나고요. 생각으로 머리를 채우지 말고 느낌으로 스쳐 지나가는 시간 속에 저를 푹 담그고 싶은 새벽입니다. 오늘은 안도현 시인의 <비>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비 안도현     


1970년대 편물점 단칸방에 

누나들이 무릎 맞대고 

밤새 가랑가랑 연애 얘기하던 것처럼

비가 오시네     


나 혼자 잠든 척하면서 그 누나들의

치맛자락이 방바닥을 쓰는 소리까지 다 듣던 귀로, 

나는 빗소리를 듣네    

 

빗소리는

마당이 빗방울을 깨물어 먹는

소리     


맛있게, 맛있게 양푼 밥을 누나들은 같이 비볐네

그때 분주히 숟가락이 그릇을 긁던 소리

빗소리     


삶은 때로 머리채를 휘어 잡히기도 하였으나

술상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 시간보다

목 빼고 빗줄기처럼 우는 날이 많았으나     


빗소리 듣는 동안 

연못물은 젖이 불어

이 세상 들녘을 다 먹이고도 남았다네

미루나무 같은 내 장딴지에도 그냥, 살이 올랐다네    

 

문우께서 만들어주신 메밀 칼국수... 비오는 날 최고음식! 이제야 감사인사를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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