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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ul 10.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83

2024.7.10 천상병 <장마>

밤새 깊은 잠도 못자고 천둥번개에 시름하지 않으셨는지요. 홍수주의보에 들어간 지역들의 이름에 군산이 있어서 나름 걱정하며 밤을 지냈습니다. 산과 가까이 있으면 산사태를 걱정하고, 강하류 쪽에 있으면 강의 범람을 걱정하고, 혹여나 번개에 천둥에 놀라 또다른 사건이 생길 것을 걱정하고... 매년 장마철이면 으레 하는 걱정이지만 면역이 되지 않는법인가 봅니다.

  

‘빛은 소리보다 빠르다’고 하지요. 어느 시인의 ‘시 철학’ 몇 쪽을 재미나게 읽고 있는데 ‘번쩍‘하며 페이지를 스친 빛이 바로 ’쿠르르 쿵‘ 소리를 데려오더군요. 마침 읽고 있던 부분이 <시는 빛의 언어요, 날아오르는 후루티 새의 깃이요> 라는 구절이었는데, 어쩜 이렇게 딱 맞아 떨어지는 자연의 조화가 있을까 신기하여, 시라는 언어의 신비로움을 느꼈답니다. 하여튼 장마 홍수에 걱정하는 맘과 달리, 이기적이게도 저는 글 읽는 잠속으로 들어갔지요.     


새벽 3시경 눈을 떠서 뉴스를 들으니 장마피해로 많은 지역이 거론되네요. 휴대폰에 경계를 알리는 긴급재난 안내문자도 몇차례 와 있구요, 오늘 책 배달 가려던 나포 성산에도 산사태 예비경보가 떠 있어서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휴일도 아닌 날이니 부득히 해야 할 일들이 예정되어 있겠지만, 가능하면 조심 또 조심하시며 어려움 없이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어부셨던 제 아버지의 생전에 들려 주셨던 말씀 하나가 갑자기 떠오르는군요. ’거대한 태풍이 지나가면 또 다른 세상이 온다. 물고기들이 미리 알고 그 길을 찾아가더라‘ 오늘은 천상병 시인의 <장마>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장마 천상병     


7월 장마 비오는 세상다 함께 

기 죽은 표정들 아예 새도 날지 않는다

이런날 회상(回想)은 안성맞춤 옛친구 얼굴 

아슴프레 하고 지금에사 그들 뭘 하고 있는가?

뜰에 핀 장미는 빨갛고 지붕밑

제비집은 새끼 세 마리 치어다 보며 

이것저것 아프게 느낀다

빗발과 빗발새에 보얗게 아롱지는 젊디 젊은 날의 눈물이요 

사랑 이 초로(初老)의 심사(心思) 안타까워라

오늘 못다하면 내일이라고 그런 되풀이.

눈앞 60고개 어이할거나 이 초로의 불타는 회한(悔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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