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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ul 29.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102

2024.7.29 박두진 <하늘>

더위 탓인지 말랭이동네는 고요합니다. 이럴 때는 마을 어귀나 골목 사이에 음료수 가판대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그나마 책방까지 올라온 사람들에게 책보다 시원한 물을 권하면 엄청 좋아하니까요. 몸이 개운해야, 책도 보고 싶고 사람과 얘기도 나누고 싶고...     


집에 에어컨을 놓을까 말까를 하루 생각하다가 결국 ’1달만 참으면 된다‘ 로 마음을 결정하니, 남편왈 ’하여튼 변덕은...‘이라고 말하더군요. 설치에 들어갈 비용을 아껴서 꼭 할 일이 생겼거든요. 돈을 주관하지 않는 사람들은 잘 모르지요. 쓰임새의 우선순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래서 변덕을 떤다고 하던지 말던지, 개의치 않고 대답도 안 했더니, 팥빙수 한 그릇으로 분위기를 전환시키더군요. 저도 더위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우선하는 일에 비용의 위치를  바꿨을 뿐... 덥다고, 춥다고, 매번 매매행위를 해야 한다면 정작 꼭 필요한 일을 할 때 마음이 가난해집니다. 몸이 가난해지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마음이 그렇다면 참 슬픈일이니까요.     

조선 후기 문인, 이옥(1760-1813)이 쓴 꽃 이야기, <화설(花說)>이라는 작품의 한 대목을 들려드릴까요. ’글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와서 아침부터 다시 읽어봐요.   

  

- 이 꽃들도 때에 따라 다르고 장소에 따라 다르다. 아침 꽃은 어리석어 보이고, 대낮의 꽃은 고뇌하는 듯하고, 저녁 꽃은 화창하게 보인다. 비에 젖은 꽃은 파리해 보이고, 바람에 흔들린 꽃은 고개 숙인 것 같고, 안개 젖은 꽃은 꿈꾸는 듯하고, 이내 낀 꽃은 원망하는 듯하고, 이슬 머금은 꽃은 자랑스러워하는 듯하다. 달빛 받은 꽃은 요염하고, 돌 위의 꽃은 고고하고, 물가의 꽃은 한가롭고, 길가의 꽃은 어여쁘고, 담장 밖으로 뻗은 꽃은 쉽게 손에 닿고, 수풀에 숨은 꽃은 손에 닿기 어렵다. 그러니 이런저런 여러 가지 꽃들은 언제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글을 읽으며, 글쓰기야말로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재화가 따로 없음을 느낍니다. 여름철 피서장소로 책 읽는 공간 찾아서, 특히 공공도서관, 사적인 동네책방에 가서 책 한권 빌리거나 사서, 또 때로 공감대가 맞는 주인장이랑 대화 한마디 더해진다면, 얼마나 멋진 여름 나기인가요. 저도 금주에 그런 북캉스를 계획하고 있어서 벌써부터 맘이 설렙니다. 7월의 마지막 월요일이자, 학원도 방학하는 날... 단 며칠이래도 맘이 푸른 하늘 흰구름처럼 둥실둥실 떠올라 창공 한 중앙에 집을 짓고 주인행세를 하고 싶어집니다. 박두진시인의 <하늘>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하늘 -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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