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6.7
법정스님의 열반10주기를 맞아 샘터에서 <스스로 행복하라>를 냈다. 올해 50주년을 맞는 샘터는 이 특별한 인연을 새기고 싶었을 것이다.
샘터가 여러 어려움을 헤치고 다시 독자와의 인연을 쌓기로 결정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속에 법정 스님의 주옥같은 말과 글이 분명 마중물이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나도 역시 대학 때 샘터의 인연들, 법정 스님, 정채봉, 장영희 등의 글들이 담긴 책들이 많이 읽고 지금도 책장에 가득하다. 마음이 어수선할 때 종종 꺼내어 무슨 청정 약수 물 마시듯 한 글 한 글 읽어본다.
특히 <오두막편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버리고 떠나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등이 애독서이다.
<스스로 행복하라>는 법정스님이 쓴 많은 책 중에서 주옥같은 글들을 다시 실었다.
1일 1필사, 다섯 번째 책으로 이 책을 잡은 것은 요즘 내 마음의 어순선함 때문이었다.
10월까지 에세이팀에서 독립출판을 해보자고 결정한 후, 오히려 글쓰기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코로나가 희미해지는 것은 더할 나위없이 기쁘지만, 동시에 주업(영어강의)의 양이 늘어났다.
또한 글쓰기 위한 전초작업으로 책 읽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매일 기억한다.
또 EBS의 좋은 강의도 들어야지, 황창현 신부님 미사강론도 들어야지, 텃밭 작물들도 살펴야지.
주1회 이상 기사쓰기를 위해 현장방문도 해야지, 지인들과 약속한 1일 1poem 필사도 해야지.
가장 중요한 것 ' 매일 밥 해 먹고 살아야지'
그 모든 것이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끄러운 시간 속에서 나를 지탱해줄 동아줄 같은 글을 찾았다. 바로 법정스님의 글이다.
꽃들은 다른 꽃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다른 꽃들을 닮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자기 나름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라일락이 철쭉을 닮으려고 한다거나, 목련이 진달래를 닮으려고 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모두 다 자기 나름의 특성을 한껏 발휘하고 있습니다.
자기 내면에 지닌 가장 맑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그런 요소들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습니다.
스스로행복하라 (P.5-6)
이 책은 총 4장으로 되어있다.
1장 행복, 2장 자연, 3장 책, 4장 나눔이다.
제 2장,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P.89)
우리 곁에서 새소리가 사라져 버린다면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딱딱하고 메마를 것인가. 새소리는 단순한 자연의 소리가 아니라 생명이 살아서 약동하는 소리요,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음악이다. 그런데 이 새소리가 점점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새가 깃들지 않는 숲을 생각해보라. 그건 이미 살아있는 숲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연의 생기와 그 화음을 대할 수 없을 때, 인간의 삶 또한 크게 병든거나 다름없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비단 경제만이 아니다. 행복의 소재는 여기저기에 무수히 널렬 있다. 그런데 행복해질 수 있는 그 가슴을 우리는 잃어가고 있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1993)
오늘은 새벽 4시경에 눈이 떠졌다. 정말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현상인지 잘 모르겠다.
여명의 대기중인지, 창 밖은 여전히 무겁지만 새소리가 들린다. 숲속도 그러하겠지만 때론 아파트의 새벽을 알리는 새소리에 신선함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인간의 소리가 아닌 것을 기다리는 마음 때문이리라.
제 3장, 소리없는 소리(P.143)
-오늘날 우리는 되는 소리든 안되는 소리든 쏟아 버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남의 말에 차분히 귀 기울이려고는 하지 않는다. 다들 성미가 급해서 듣고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텔레비전 앞에서처럼 얌전히 않아 들을 줄을 모른다.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은 침묵을 익힌다는 말이기도 하다. 침묵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자기 내면의 바다이다. 말은 진실한 말은 내면의 바다에서 자란다. 자기 언어를 작지 못하고, 남의 말만 열심히 흉내내는 오늘의 우리는 무엇인가. 미하엘 엔테의 동화 <모모>에 나오는 구절이다. 별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전하려면 우선 그것에 필요한 말이 우리 안에서 자라야 한다. 기다림의 인내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씨앗처럼 기다리는 거야. 움이 돋아나기까지 땅 속에 묻혀 잠자는 씨앗처럼.’- (1977)
40여년이 넘은 글인데도 지금도, 꼭 나에게만 전해주는 특별한 편지처럼 느껴진다. 좋은 글이란 이런 글 아닌가. 요즘 다양한 글감을 접하면서 이 글의 수명은 어느 정도 일까를 생각해보곤한다. 주관적 입장에서 보면 개성 넘치고 귀하지 않은 글은 없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두고 공감하고 지표가 될 수 있는 글을 되기 위해선 기다림의 인내가 있어야 함을 다시 느낀다.
제3장, 영혼의 모음-어린왕자에게 보내는 편지(P.148)
-너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버섯’이라고 했었지? “... 그는 꽃향기를 맡아 본 일이 없고 별을 바라본 일도 없고 누구를 사랑해 본 일이 없다. 더하기 밖에는 아뭄것도 한 일이 없어. 그러면서도 온종일, 나는 착한 사람이다 하고 되뇌이고만 있어. 그리고 이것 때문에 잔뜩 교만을 부리고 있어. 그렇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야. 버섯이야.”
그래, 네가 여우한테서 얻어들은 비밀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아.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한다. 사실 눈에 보이는 것은 빙산의 한 모서리에 불과해. 보다 크고 넓은 마음으로 느껴야지.-(1971)
어떻게 하다보니 책장에 어린왕자가 4권이나 보인다. 영문판, 영한문판, 한글판, 영문팝업북판.. 한 권쯤 완독 했던 것은 분명한데, 책마다 찔끔찔끔. 내 것으로 소화시킨 것이 없으니 반성할 일이다.
법정 스님은 당신에게 두 권의 책을 고르라고 한다면, 화엄경과 어린왕자라고 말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다시 한번 어린왕자를 읽어야겠다.
제4장, 나누어 가질 때 인간이 된다(P.177)
-나누는 일은 이 다음으로 미루지 말라. 이 다음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다. 우리 내면세서 생과 사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순간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마르틴 부버는 그의 <인간의 길>에서 하느님은 한 사람 한사람에서 이렇게 묻는다고 했다.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너에게 주어진 몇몇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느냐?” 언젠가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할 우리들은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로 그와 같이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유한한 존재다. 한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존재이므로 더욱 사람답게 살아야한다.
그럼 사람답게 인간다운 행위는 무엇일까? 이웃과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한다. 타인과 함께 나누어 가져야 이웃이 될 수 있고 인간적인 관계가 이루어진다. 사람은 독립적인 존쟂가 아니다.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다.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자만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도 얼마든지 나눌수 있다. 부드러운 한마디, 따뜻한 눈길, 함께 걱정하고 기뻐하는 것도 나누어 가짐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나누어 가질 때 그 즐거움 자체가 보상이다.(1983)
좋은 글과 말은 어떤 재물의 소유보다도 행복하게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행복도 중요하지만 스스로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시공간이 절실할 때이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않으면 정작 중요한 것을 할 수 가 없음을 머리로만 이해한다.
'정말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앞으로만 나가지 말고 했던 것을 되돌아볼 시간을 갖고 실천하라'라고 말하는 법정스님의 소리가 들리는 아침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