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피향 가득 베어 문 엄마의 간장게장
2020.3.17 엄마와 요리 1
도둑의 등급을 나누어, 미워할 수 없는 도둑을 꼽으라면 바로 밥도둑이다.
밥도둑 중에서도 으뜸은 누가 뭐래도 ‘간장게장“이리라.
매일 먹는 밥이 이 놈 하나만 만나도 인생이 달라지니 어찌 이쁘지 않겠는가.
책상 앞에 놓은 안도현의 시집을 읽다가 눈에 띈 꽃게이야기는 슬펐다.
안도현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 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앞으로 얼마동안 만이라도 꽃게를 먹지 말아볼까?
그런데 상경하는 아들이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엄마, 지난번 할머니가 만든 간장게장 다 먹었어요? 갖고 가고 싶은데.”
“몇 마리 있긴 하지. 네 몫으로 남겨둔 거 냉동실에 있고, 숙성간장은 냉장실에 있어.”
그렇게 냉동실에 있었던 게장 네 마리는 아들 따라 서울로 갔다.
“치사하네. 당신도 좋아하는데. 다른 건 잊기도 잘 하더만 그걸 기억하고 있네.”
괜시리 눈치보며 남편에게 말했다.
아들을 탓하는 내 말투의 의미를 다 알아챘으리라.
다음 날. 엄마와 통화를 했다.
나이 50 중반을 훌쩍 뛰어넘은 딸인데도 매일 궁금해하신다.
하루 이틀 연락이 없으면 1년동안 전화한번 안한 고약한 딸이 된다.
“밥 먹었냐. 안 먹었으면 집에 올거냐?”
“맛있는 거 있어요? 간장게장 같은 거.”
“그게 매일 있는 거냐. 철없기는.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만들지. 돈이 없지 먹을게 없다냐.”
“게장용돈 드릴까요? 아들이 다 가져갔네요. 이 참에 저도 꼼꼼히 배워보게요.”
며칠 후 지역의 전통새벽시장을 갔다.
시장에서 물건을 고를 때도 엄마가 없으면 백치에 가깝다.
백번을 보아도 그 물건이 그 물건, 하물며 싱싱한 생선 고르기는 ‘언감생신 난감천지’.
평생을 어부 마님으로 살아온 엄마의 눈에 생선들의 급수는 한 번에 평가확정 되었다.
제 철이 아니어서 생물은 아닐지라도 반 냉동상태의 싱싱 꽃게가 낙점되었다.
“제 철인 4월이면 이 암컷들이 얼마나 비싸겄냐. 요리하기 나름이지, 철 따라 먹는다냐.”
엄마는 꽃게를 해감하기 전에 먼저 수세미로 게의 이곳저곳을 닦아냈다.
마치 살아 있는 듯 꼼지락 거리는 게의 다리를 보며 어느 글에서 읽었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살아있는 게에 뜨거운 간장 양념을 넣고, 며칠 후 꺼내보면, 살아나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게 다리 몇 개가 떨어져 나갔다.’라고.
게의 씻김굿이 끝난 후 해감단계로 들어갔다. 엄마는 갖가지 양념을 꺼내놓았다.
젖국(액젖), 계피, 생강, 감초, 대추, 물엿(설탕), 양파즙, 과일(사과,배), 감나무잎, 빨강 초록 고추, 잣, 통깨, 소금 등이다.
엄마는 간장게장이나 생선류를 플레이팅 할 때 반드시 고소한 잣과 통깨, 청실홍실 고추들을 준비한다.
섬사람들은 예로부터 다양한 간장류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메주를 띄어서 만든 간장도 있지만, 일상적으로 쓰는 간장류는 바로 젖국이다.
생선이 흔해서 판매거리가 못되는 어물들은 바로 젓갈로 만들어진다. 그 젓갈이 몇 년을 두고 곰삭고 곰삭는다. 이렇게 나온 액이 바로 젖국(액젖)이다. 엄마의 젓국은 남들이 결코 알지도 따라하지도 못하는 우리만 먹는 항아리비법의 액젓이다.
준비된 젖국간장에 계피를 비롯한 모든 양념을 넣고 팔팔 끓였다. 특별히 비린내를 제거하고 달콤한 향기를 주는 계피는 게장에 독특한 맛을 내기에 일품이다. 이 뜨거운 간장을 완전히 식힌 후 해감 된 게에 부었다. 끓인 장을 식혀서 게에 붓는 과정은 최소 3번 반복, 한나절을 다 보냈다.
진한 밤색 독항아리에 앉혀진 게들의 등딱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 어미의 말 못할 슬픔을 모른 체했다.
그 슬픔이 나에게는 최애반찬이 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게장 담그기가 끝날 무렵, 하필 온라인 쇼핑에서 ‘꽃게로 만든 간장게장’을 광고했다.
“야야, 저렇게만 담으면 비린내 나서 오래 못 먹는다. 그리고 왜 그렇게 비싸다냐. 왔다 갔다 하느라 허리가 끊어질라고 한다.”
헉! 용돈의 액수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