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6 안도현 <일월의 서한>
푸른색은 좋아하는 색이어도 푸른 뱀은 생각만해도 왠지 을씨년스러운데요, 최재천박사의 2025 푸른뱀의 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몇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첫째, 산속에서 이정표로서 매어두는 리본의 색깔 중 가장 눈에 잘 띄는 것이 푸른색이라고 하네요. 노랑 빨강은 오히려 나뭇잎의 갈변으로 눈에 덜 보인데요. 둘째, 올해는 을사년인데요, ‘을사’라는 말을 들으면 ‘을사늑약(1905)’이 생각나고, 벌써 120년이 되었지요. 을사늑약후, 만인이 느끼는 나라를 잃은 슬픈 감정어휘 중 하나로 ‘을사년 같이 외롭고 춥다’에서 파생 변형된 말이 ‘을씨년스럽다’라고 하네요.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어찌보면 요즘의 난국이 다시 이말을 떠올리게 했는지도 모르지요. 눈이 푹푹 내리는 대통령관저 앞 대로변에서 밤새도록 응원봉 탄핵봉을 들고 외치는 젊은 청년들의 몸짓을 보며, 역설적으로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이 나라에 법이 있는가. 우리는 진정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는가. 어서빨리 이 젊은 청년들이 제자리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하는데...그들에게 내 맡겨져서 짊어지게 한 기성세대들의 무게가 너무 무겁습니다.
학원의 1월 개강일이네요. 학원방학 1주일 중 저는 하루를 빼고 매일 누군가를 만났으니, 온전하게 학원을 떠난 방학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욱 좋았습니다. 시국의 어지러움을 핑계삼아 어디 멀리 여행갈 입장도 아니었고, 새해 새달이라고, 최소 일주일은 매일 완전한 마침표를 찍어두어야지 라는 갈망으로 학원과 책방에서 주인역할을 했답니다.
어제는 지인에게서 잘 익은 홍시 10여개를 받아서 한 개를 후다닥 먹고, 나머지는 야금야금 먹어야지 하며 책방에 들렀죠. 신기하게도 홍시의 주인은 따로 있었어요. 가는 길에 말랭이어머님들에게 새해인사나 해야지 싶었는데, 마을입구에서 한 분을 딱 마주치고, 엉겹결에 튀어나온 말, ‘어머니, 홍시드실거죠. 제가 조금 가져왔는데, 지금 공방에 몇분이나 계세요?’ 정확히 홍시갯수만큼 계셨고, 점심 후 입이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고맙다며, 새해 복많이 받으라는 말을 왕창 들었답니다. 제가 생각해도 영리한건지, 영악한건지, ...
겨울날 붉게 달달하게 부드럽게 잘 익은 대봉시를 팔순의 어른들이 드시는 기쁨. 이토록 시중(時中)의 관통하는 순간이 있을까 싶었답니다. 하여튼 나눠먹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오늘의 논어구절은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시 300수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거짓없이 순수한 생각이라, 위정편2>. 매일 한편의 시만 읽어도 저절로 365수. 매일 맑게 살아가겠지요.^^ 안도현시인의 <일월의 서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일월의 서한(書翰) - 안도현
어제 저녁 영하 이십 도의 혹한을 도끼로 찍어 처마 끝에 걸어두었소
꾸덕꾸덕하게 마를 때쯤 와서 화롯불에 구워 먹읍시다
구부러지지 않고 요동 없는 아침 공기가 심히 꼿꼿한 수염 같소
당신이 오는 길을 내려고 쌓인 눈을 넉가래로 밀고 적설량을 재보았더니
세 뼘 반이 조금 넘었소
간밤에 저 앞산 골짜기와 골짜기 사이가 숨깨나 찼을 것이오
좁쌀 한 줌 마당에 뿌려놓았으니 당신이 기르는 붉은가슴딱새 몇 마리
먼저 이리로 날려 보내주시오
또 기별 전하리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