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8 박준 <낙서>
태평양, 대양을 건너가며 마주하는 파란하늘, 흰구름, 무지개빛 바람, 그리고 녹색인 2400명. 행사 주관자는 동행하는 사람들을 Green Leader 라고 명명하네요. 사실 그린보트여행을 하기 전 환경문제 논란의 이슈에 서 있는 이 행사를 두고 저희 부부도 많은 생각을 했지요. 그럼에도 무엇이든 직접 체험을 선택하는 저는 이후 논란대응을 고민하는 쪽으로 섰답니다.
이틀이 지난 지금, 문제이슈를 공론화할 부분들이 분명 있지만, 이 짧은 아침편지에서 길게 논할 마음은 없지요. 다만, 부부가 되자고 인연을 맺은지 30여년, 색다른 방법으로 서로에게 위안을 주자고 선택한 남편. 군산시민으로 20년 넘게 거친 환경운동터에서 수고한 그에게 무작정 한 표를 던져줍니다.
세상이 어찌나 좁은지, 어제는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최근에 영미시를 가르쳐주셨던 교수님도 만나고, 같은 성당 분들도 만나서 깜짝 놀랐구요. 미디어매체에서 자주 만나던 유명인사들의 강연도 들었어요. 그중 한 분, 김종성교수(서울대 해양생물학 분야 권위자)의 '바다와 갯벌'이야기 중에, 새만금 수라갯벌이야기가 길게 나와서 참 좋았습니다. 강연 후 일부러 그 교수를 만나, 제가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임을 밝히고, 2차 강연에서는 영화 <수라>와 미군기지로 펀입시키려는 새만금 마지막갯벌, 수라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홍보해달라고 전했습니다. 탑승한 그린리더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라고 생각했네요.
오늘은 오후 1시에 대만, 기륭이라는 항구에 도착한다는데요. 주변에 대만의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고 하니, 저희는 자유롭게 이곳저곳 기웃거릴 코스를 선택합니다. 멋진 풍경이 있으면 낼 아침에 보내드릴께요.^^ 아, 아침강연으로 박준시인의 이야기도 있다는데, 들어갈 자리가 있을지.... 저녁에 귀선해서는 카톨릭 음악 미사에도 참여해볼까 합니다. 오늘의 시는 박준시인의 <낙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낙서 - 박준
저도 끝이고 겨울도 끝이다 싶어
무작정 남해로 간 적이 있었는데요
거기는 벌써 봄이 와서
농어도 숭어도 꽃게도 제철이었습니다
혼자 회를 먹을 수는 없고
저는 밥집을 찾다
근처 여고 앞 분식집에 들어갔습니다
몸이 왼편은 겨울 같고
몸의 오른편은 봄 같던 아픈 여자와
늙은 남자가 빈 테이블을 지키고 있는 집
메뉴를 한참 보다가
김치찌개를 시킵니다
여자는 냄비에 물을 올리는 남자를 하나하나 지켜보고 저도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그들을 봅니다
남자는 돼지비계며 김치며 양파를 썰어넣다 말고 여자와 말다툼을 합니다
조미료를 그만 넣으라는 여자의 말과
더 넣어야 맛이 난다는 남자의 말이 끓어넘칩니다
몇 번을 더 버티다
성화에 못 이긴 남자는
조미료통을 닫았고요
금새 뚝배기를 비웁니다
저를 계속 보아오던 두 사람도
그제야 안심하는 눈빛입니다
휴지로 입을 닦다 말고는
아이들이 보고 싶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잔뜩 낙서해놓은 분식집 벽면에
봄날에는
사랑의 눈빛이 제철' 이라고
조그맣게 적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