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3 정군수 <입춘>
입춘(立春)일 아침입니다. 24절기의 수장인 입춘이 선보이는 얼굴치고는 너무 근엄하여 고개를 들수가 없네요. 전국에 강풍, 또 어느지역은 강설까지 몰아친다하니 ’봄이로소이다‘라고 고함치기에는 좀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그럼에도 ’춘(春)‘자 하나가 보여주는 이 따사로움과 넉넉함이라니... 예고된 ’한냉’ ‘초강풍’ 이런 말 쯤이야 얼마든지 견뎌낼수 있답니다. 시간이 다 약이니까요.^^
제법 길었던 설연휴, 건강하게 보내셨나요. 나라가 불안정한 상태로 새해를 맞이하고 빨간날들이 가득한 1월을 보면서 왠지 제 맘도 안녕하질 못한 날이 많았었는데, 설 선물을 예쁜 보자기로 묶어 마음을 담듯이 설 연휴동안 어수선한 마음을 잘 정리하고 2월로 들어왔었지요.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학생들을 만나는 날이네요.
어제 예비고 학생을 상담했는데, 극도로 심한 사춘기를 거치고 있는 여학생. 상담하러온 학생이 마스크와 모자로 전면 얼굴 차단, 말을 안하는 거예요. 영단어와 문법을 구두테스트 하려했는데, 저의 말에 대답을 안하고, 매우 느리고 고개만 까닥거렸답니다. 이를 본 엄마는 딸의 태도에 연신 미안해하고요. 저는 엄마에게는 딸의 사춘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안아주어야 하는지, 딸에게는 그까짓 영어공부, 늦은때란 없으니, 2월엔 꼭 맘에 내키는 일만 해도 괜찮다는 말 등을 20여분 했어요. 저랑 말을 하고 싶은 맘이 들 때 다시오라고 하면서 가셔도 좋다고 했지요. 그런데 거의 숨소리만큼의 목소리로 ‘단어’를 테스트 받고 싶다고 하더군요. 하여튼 이차저차 하여 학생과 마음주고받기를 마치면서 등을 토닥여주었습니다.
오늘 만나는 우리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해주고 싶은 일은 당연히 큰소리로 이름부르며 안아주는 일입니다. 어릴때부터 누군가가 따뜻한 손길로 안아주는 일, 너무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됩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특효약처럼 발휘된다고 심리전문가들이 말합니다. 어디 어린 학생에게만 그럴까요. 다 큰 사람이란 존재는 없습니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계속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는 존재. 오늘 하루 지인들게, 매서운 입춘이 품고 있는 따뜻한 온기 한 줄 빌려서 안부전해보심이 어떠실지... 오늘의 논어구절은 克己復禮爲仁(극기복례위인) -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안연편 –입니다.
정군수시인의 <입춘>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입춘 - 정군수
입춘 아침
할아버지는 사립 문설주에도
햇발 안 드는 뒤안 장지문에도
입춘방을 붙이셨다.
응달에는 눈이 쌓여
할아버지의 흰머리만큼이나 근심스러운데
마른 가지는 겨울바람이 남아
할아버지의 손등만큼이나 앙상한데
입춘방을 붙이셨다.
둘러보아도 봄소식은 알 길 없고
풀 그릇을 들고 종종거리다가
나는 보았다
하얀 수염 사이
어린아이 같은 할아버지의 웃음
봄이 오고 있음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