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h My Life

매화향기 꿈 속에 들어오네

2021.3.22

by 박모니카


지난 3년동안 일구었던 텃밭을 떠나야 한다고 알려왔다. 내 밭도 아니고, 임대료를 낸 것도 아니니, 언젠가는 떠나겠지 했으면서도 막상 이별을 통보받으니, 맘이 쓰렸다. 땅 욕심이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계절을 세 번이나 함께 동거하고, 이제야말로 정말 농사다운 농사를 지을 수 있겠다 싶었다. 아마 텃밭의 지심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자고로 드는 자리는 몰라도 나는 자리는 더 크게 눈에 띄는 법이니.


텃밭 가족들이 부랴부랴 수소문 한끝에 양지바른 밭 100여평을 구했다. 작년까지 동네 할머니들이 지었던 곳이라서 농사짓기에 더없이 좋은 땅이라고 올해도 열심히 밭 갈아보자고 서로 격려했다. 주말 아침에 나와서 거름도 뿌리고 밭갈이도 하고, 무엇보다 본인들의 땅을 정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손발을 움직이는 일은 게으르면서 머리만 앞세워 농사지을 땅을 정하자는 말에 현혹되어, 새벽부터 부지런 떨며 새 밭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든 단체의 총대를 멘 사람의 노고를 진심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법이다. 땅을 구하고,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거름을 주문하고, 밭갈이 농기계 대여에 이르기까지 남들보다 수고한 지인 덕분에 텃밭을 향한 발걸음은 가벼우면서도 미안함이 가득했다. 이미 100여개의 거름포대가 도착하여 경작할 밭에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남자들은 거름을 뿌리고, 여자들은 아직 거두지 못한 봄동배추와 시금치를 캤다. 추위를 이기고 살아남은 푸른 이파리의 정기가 싱싱하게 몸속으로 들어올 천연밥상이 생각나 군침이 돌았다.


부지런한 농부들의 모습은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평소에는 코를 막고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거름이 가장 존대를 받는 때가 바로 요즘이다. 초보농부들의 발걸음따라 뿌려지는 거름냄새가 마을의 온 아침을 진동시켰다. 덩달아 깨어나는 밭의 흙도 일 년을 보장하겠다고 막중한 책임감으로 대답했다. 우리들의 손과 발에 의해 만들어지는 여분의 시간들이 얼마나 귀하고 위대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거름냄새를 거두는 향기로운 냄새에 홀려 고개를 돌리니 바로 앞 폐가 마당에 있는 매화나무에서 흘러나오는 매화향이었다. 지난 텃밭에도 매화나무 몇 그루가 있었는데, 매실향이 약했고 매실수확도 적었다. 그런데 이 매화나무는 몸체도 가녀리고 그다지 튼튼해 보이지도 않은데 그 향기만큼은 가히 천리를 갈 듯 진하게 퍼졌다.


얼마전 시 필사를 하다 읽은 이해인 시인의 <매화앞에서>라는 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 매화를 보면서 먼길을 걸어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 앉아 있네.-


그러고보니 꽃중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린다는 매화. 매년 봄마다 만나는데 그 모습을 자세히 보지 않아, 벚꽃, 살구꽃, 복숭아꽃 등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고 싶었다. 요즘이야 인터넷박사가 다 알려주는 세상이어서 무엇이든 검색해보면 다 알겠지만 그래도 누가 물어보면 한마디라도 설명해줘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겨울에 피어나는 꽃의 향기가 왜 진한 줄 아는가?”라고 남편이 묻고 스스로 설명도 했다. 꽃의 존재는 나비와 벌이 있어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단다. 만상이 풍요로운 한여름에는 꽃모양 만으로도 벌 나비를 유혹할 수 있지만 추위 속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꽃들의 생존방법이 바로 향기란다. 얼마나 진한 향기를 전해야만 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여린 매화꽃 봉우리 하나를 보면서 살겠다고, 제 존재를 찾겠다고 향기를 내뿜는 꽃 끝에 내 코의 큰을 대보며 심호흡했다. 마치 내가 벌인양, 내가 나비인양.


매화나무 잔가지 끝에 달린 꽃잎을 따서 남편과 차 한잔을 마셨다.

“아무래도 다시 가보야겠다. 당신이 따다준 꽃만 보고서는 매화나무의 전체모습을 느낄수가 없지. 다시보고 찬찬히 구별해야겠다. 같이 가서 당신이 매화의 멋진 사진도 찍어주고요.”


오늘도 봄 햇살은 이미 곳곳마다 가득했다. 거름만 뿌리고 돌아왔던 텃밭은 이미 경운기가 시원스럽게 땅을 골라놓았다. 올해도 나는 긴자락 땅을 3줄이나 받았다. 그것도 제일 양지바르고 눈으로만 봐도 복스런 토양이 있는 곳으로. 아마도 다른 텃밭가족들이 욕했을지도 모른다. 양보는 못할망정, 욕심많게 나이 앞세워 좋은 곳으로 다 찜 해놓는다고.


며칠이 지난후에야 후회가 밀려와 땅을 양보하겠다고, 아무곳이나 괜찮다고 전했지만 이미 다 결정되었으니 그냥 하자고 했다. 아고야, 항상 이렇게 뒷북을 치면서, 경우에 맞게 산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구나 싶었다. 엄청난 반성과 함께, 다음 모임에 밥한끼 대접하고 싶다고 에둘러 변명하며 땅을 받았다.


다시 찾은 텃밭을 보며, 올해는 또 무엇을 어떻게 심고 거둘 것인가 구상하며 스케치했다. 이번에도 변함없이 나의 텃밭주제는 소외계층을 위한 난방비와 먹거리구입을 기부금 모금이다.

텃밭농사 4년째, 해가 갈수록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기부금도 늘어나고 수혜대상도 늘었다.

감히 올해도 기부금을 많이 모아달라는 기도를 청하며 텃밭에 신고식을 했다.


역시나 매화향기는 유별스럽게 텃밭을 휘돌고, 나를 감싸주었다. 매화나무로 가서 하늘을 향해 뻗은 가지들과 꽃 봉우리들을 사진에 담았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속에 뻗어난 꽃가지를 렌즈 안으로 보니, 참 아름다웠다. 비워낸 자의 고귀한 자태가 모두 천하를 얻은 듯, 매화꽃 한송이의 보금자리는 한 조각 땅에서 시작되어 온 천지로 뻗어있었다. 역시 비워야 채워지는 법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다 핀 꽃잎 몇 송이를 따다가 출근 전 동료들의 책상위에 놓았다. 아니나다를까 선생님들의 코끝 역시 봄을 달고 온 매화향기에 씰룩거리며 좋아했다. 이제는 구별할 줄 알 것 같다. 비록 내년 봄에 다시 또 같은 행동을 할지라도 지금은 매화, 벚꽃, 살구, 복숭아 꽃잎의 모양과 잎, 꽃잎자루를 구별할 줄 안다. 다름이 있어야 아름다움이 있는 듯, 다른 모습인 당신도 나도 꽃을 통해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게 한 매화가 고맙다.


-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이해인시인)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눈과 마음 위에도 매화향기가 흥건하게 젖시길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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