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h My Life

천상의 정령, 복사꽃

2021.4.5 시댁 복숭아과수원에서

by 박모니카

겨울을 이겨내고 풋풋한 어린 봄을 가져왔던 매화나무가 그 꽃잎과 향기를 사방에 흩날리더니, 시샘 가득 찬 성긴 바람이 벚나무의 꽃들을 흔들어 깨워 예년보다 빨리 만개토록 했다. 더불어 사람들도 뭔가에 홀린 것처럼 바쁜 마음을 줄 세우지 못하고 흔들거리며 벚꽃잔치를 했다. 동시에 나도 질세라 하며 가까운 살붙이라고 머리 내민 살구 꽃도 피어나고, 가는 곳마다 텃밭이고, 시멘트 틈 자락할 것 없이 노란 민들레와 남청색 개불알꽃이 내 발걸음을 허공으로 잡아끌었다.


“올해는 한 열흘 정도 개화가 빨랐다네. 원래 벚꽃 필 때, 봄에 나오는 생선들도 따라 들어오는데, 이번에는 싹도 안 보인다고 하더구먼. 대신 갈매기들이 홍합을 어떻게 먹는지를 알았네. 그놈들 똑똑해. 홍합을 들고 와서 시멘트 땅에 떨어뜨려서 깨지면 그 속의 부드러운 홍합살을 먹더니 고만. 이 사진 좀 보소.”

비안도 섬의 철새를 조사하러 다녀온 남편이 말했다.


새 텃밭의 묵은 흙을 털어내고 대파와 감자를 심고 나니, 하늘에서 알아서 비를 내려주었다.

어제도 비가 내려, 텃밭의 작물들은 뿌리를 내리기에 좋았겠지만, 세상에 나온 지 한 달도 못 가서 희고 붉은 꽃잎을 땅 위로 떨어뜨리는 봄꽃들은 신세타령을 할 것만 같았다. 연지 곤지 찍는 붉은 점만큼이나 화사로웠던 꽃잎들을 떠나보내는 나의 마음도 신세타령으로 그득했다.


박완서의 단편소설 <꿈을 찍는 사진사>를 읽다가 마침 과수원의 복숭아꽃이 생각났다. 오늘은 시댁 과수원으로 가서 복사꽃도 보고 아버지 어머니 산소도 한번 둘러보자고 했다.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어도 작년에야 처음으로 딸과 함께 과수원을 밝혀주었던 복사꽃을 보았다. 다시 또 만날 진분홍빛의 복사꽃을 생각하니 몸이 저절로 침대에서 튕겨 나왔다.


과수원 지기는 남편의 바로 아래 동생이다. 같은 50대로서, 내 친동생과 나이가 같아 내게도 시동생이 아닌 그냥 동생이다. 시댁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과수원을 맡았으니 주인장이 된지 벌써 20여 년이 됐다. 해마다 복숭아가 나오면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 부부에게 전화를 한다.


“형수님이랑 한번 와요. 복숭아도 가져가고. 공판장 보상 값이 형편없어. 형이랑 형수가 좀 팔아 주요.”

라고 나름 애교를 떤다. 나의 오지랖을 잘 활용하는 기교는 백도보다 더 달콤하다.

과수원에 도착해서 보니, 가지치기 한 후 밭에 떨어진 잔가지들을 다 거둬들이지 못한 모양이었다. 요즘 촌에 일손이 없는 것은 어디 한 두해 일이야 지 말이지. 나는 가지를 거두는 수고는 안 하고 나무에 달린 분홍색 꽃잎을 사진 찍기 바빴다.


“작년보다 꽃들이 수도 적고 힘이 없어. 얼굴들이 팽팽하질 않은데?”

“빨리 피고, 빨리 져서 그런 것 같아요. 가지치기하면서 꽃잎 떨기도 많이 했고요."

“뭐야, 꽃 떨어뜨리기 전에 형수를 먼저 불러서 글감을 제공해야지.”

“저 아래 밭은 아직 가지치기 안 했어요. 그쪽은 나무들이 젊어서 꽃도 싱싱해요.”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남편이 나를 불렀다. 나무를 볼 줄 모르는 내 눈에도 밑동부터 뻗어나간 가지의 색깔, 가지의 폭이 확연히 달랐다. 무엇보다 가지의 방향이 이리 틀고 저리 틀고 하며 솟은 모양이 마치 둥근 세상 360도를 다 둘러보겠다고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가 곧추세운 머리 같았다.


“당신, 여기 보소. 이 나무는 가지의 방향만 보면 7년짜리 가지치기 경력의 가위 손이 다녀간 흔적이네. 이리로 자라난 걸 잘라서 저쪽 방향으로 돌리게 하고, 또 여기를 잘라서 반대편 방향으로 자라게 하면서 가지를 쳐야 복숭아나무의 수형이 안정되지. 그래야 좋은 복숭아도 많이 열리고. 우리 민국이가 가지치기 하는 것이 꼭 아버지가 하시던 것과 같네.

”어구, 무슨 말씀. 내가 아버지하고는 다르게 하지. 더 잘하지, 흐흐흐“


하며 동생은 전정가위로 몇 군데의 가지를 치고, 형은 아버지 닮은 동생의 전정 솜씨를 사진에 담았다.

나는 두 형제의 달콤한 모습을 또 사진에 담으면서 가까이 나무들을 살펴보았다.


땅에 달라붙은 아랫도리가 울퉁불퉁한 검붉은 복숭아나무 한 그루에서 뻗어 나온 여러 갈래의 가지들과 복사꽃을 보노라니 시부모님이 떠올랐다. 이 나무의 수령이 근 30년이 되었으면, 내가 시집오기 십여 년 전에 심었던 애들 아닌가. 난생처음으로 꿀보다 더 달고 백옥보다 더 흰 백도를 어머님이 주었었다. 결혼 3년 차에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가장 먼저 가장 큰 백도는 내 입으로 들어왔었다. 더불어 내 친정에도 최고로 맛난 복숭아를 만나는 복이 넘쳤다.


지금은 아주 오래된 나무들은 없애고 새로운 종도 심고, 해마다 하는 가지치기로 그 옛날 백도의 맛을 찾기는 어렵다. 내 입은 여전히 옛날 맛만 찾으니 시동생이 서운해할지도 모르겠다. 젊은 농군답게, 당도도 더 높고 보관도 효율적인 복숭아를 생산하는 전문가인데 말이다.


”이 나무는 30년 됐으면 아버님이 심으셨겠네요. 이런 나무가 지금 몇 종이나 있어요?“

”아직도 많이 있어요. 아버지가 심을 때, 나도 도왔어요. 그래서 가지치기할 때 신경 꽤나 쓰죠. 가지치기를 잘못하면 나무 수명도 단축되고 품질도 떨어지니까요.“

”오늘 자세히 보니, 복숭아나무가 예술이네요. 정말 전정이 제일 중요하겠어요. “


나무의 전체 수형을 받혀주는 진갈색의 혹 달린 밑동을 보고 있자니, 7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셨을 시부모님의 인생이 그려졌다. 가지마다 달콤한 백도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이 나무는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으랴. 기둥마다 애달프게 새겨지고 튀어나온 혹들이 마치 시부모님의 고생으로 덮개가 된 진액 같아서 마음이 아렸다. 돌아가셨어도 이 나무에 당신들이 계시면서 자손들이 달디단 세상을 살아가도록 끊임없이 베푸는 사랑의 눈물처럼 보였다.


올해도 복사꽃을 오감에 담고 돌아왔다. 사진 속에 매화, 벚, 살구, 복사꽃을 모두 담았다. 해마다 그 꽃이 그 꽃같아 보이는 맹탕한 나의 시계도 맑게 치료됐다. 내가 더 나이가 들어 치매가 온다 해도 시댁의 복사꽃은 잊지 않겠지. 혹여라도 잊힐까 두려울 때, 저 나무의 정령이 되신 부모님께 도움을 청해야지.


‘아버님, 어머님, 저 또 헷갈려요. 복사꽃이 어떻게 생겼죠?’

라고 물으면 아마도 처음 시집에 온 날처럼, 단 즙이 뚝뚝 떨어지는 커다란 백도를 내 입에 넣어주시겠지.

30년을 이끌어온 가지치기의 예술

사랑이 넘치는 형과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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