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3.20
두 해전 생일 아침 딸이 카드와 함께 선물하나를 내밀었다. 부피가 제법 큰 걸 보고 대뜸 말했다. “엄마가 돈 아껴 쓰라고 했는데. 하여튼 고마워. 그런데 뭐야?” “오빠랑 같이 산거야. 그리고 조금 비싸긴 하지만 엄마한테 꼭 필요한 거니까 돈 썼다고 너무 뭐라고 하지마.”
신발 하나가 있었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형태로, 부드러운 연회색 커버에 분홍색 줄무늬가 세련되게 보였다. 운동화뿐만 아니라 내게 걸치는 의복류에 큰돈을 써본 적이 없는 걸 알고 있는 아이들이 혼날 걸 알면서도 이 신발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했다. 봉사단 귀국시 슬리퍼를 신고 돌아온 나를 보면서 이번 엄마 생일에는 꼭 운동화를 준비해야지 했단다.
그해 여름 해외자원봉사를 나갈 때 운동화 두 개를 가지고 갔다. 일주일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운동화를 모두 그곳 학생들에게 주고 왔다. 막상 현지에 가보니, 맨발로 학교를 오고 가는 학생들과 주민들이 많아서 비록 새것은 아니지만 주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생일 한 달이 지나도록 운동화를 신지 않았다. 사실 운동화를 신는 습관이 없었고, 또 비싼 거라고 하니, 아껴서 신어야지 하는 맘이 들었다. 현관 앞에 여전히 신발 박스에 놓여있는 운동화를 보고, 아이들은 혹시 내가 맘에 안들어 하는 모양인가 싶어 걱정하는 눈치도 보였다.
가을이 오니, 천고마비라고 왠지 내가 말 인양 계속해서 체중은 늘어나고 무릎도 아프기 시작했다. 나이 오십을 넘어 제 모습 하나 관리하지 못하면서 무슨 대표를 하겠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심삼일이면 어떠랴, 일단 시작이 반이라고 걷기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때마침 후배가 알려준 캐시워크라는 앱을 통해 하루에 걷는 양도 측정할 수 있었다. 소위 “1일 만보걷기”, 선물받은 비싼 운동화가 제 역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목표를 세우고 한 발을 내딛고보니, 매일 걷기에 발동이 걸렸다. 마치 오래된 오토바이에 걸리는 시동처럼, 처음 몇 번의 걷기는 심한 재채기를 했다. 그러나 이내 발과 운동화가 만들어내는 찰떡궁합소리에 매일 걷기가 즐거웠다. 게다가 소위 기쁨 중추와 연결되어 있다는 천연 아편제 엔돌핀의 방출이 내 몸의 사방으로 돌아다니니 어찌 걷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운동화가 이끄는 여행길에서 만나 추억들은 어느새 나의 첫 에세이작품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어린 시절의 눈높이로 내려와 세상을 다시 보면서 기나긴 끄나풀로 이어준 가족애가 내 삶에 미친 영향을 바라보았다. 그중 가장 우뚝이 서서 흔들림 없이 내 인생을 지배한 친정엄마의 존재는 귀함 그 자체였다.
그해의 겨울이 가고 새 봄을 맞으며 엄마얘기를 글로 남기겠다고 결심했다. 코로나로 세상 모든 이가 어두울 때 오히려 나의 화려한 봄이 시작되었다. 만보걷기 6개월차에 접어드니 몸무게도 다소 줄어들고 한 치수 내려간 봄 상의를 꺼내입기도 했다. 무엇보다 에세이 팀에서 나온 독립출판이야기는 처음으로 예비작가라는 명함에도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 모든 출발의 선상에 아들딸이 선물해준 운동화가 있었다. 이 신발을 신고 이야기의 소재를 만들려고 한번이라도 더 걸었고, 더 주위를 살피고, 사물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다. 그러는 동안 운동화는 내 발의 완벽한 보호막이 되어갔다. 구두로 인해 약간은 변형된 새끼발가락을 포근히 감싸주고, 생각보다 부실한 발목을 꽉 잡아주는 단단한 느낌이 매일 매일 좋았다.
그렇게 또 한번의 겨울을 보내면서 올해 봄을 기다렸다. 며칠 전, 습관적으로 운동화를 신고, 도수가 맞지 않은 안경을 고치려고 안경점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봄 햇살이 어찌나 살랑거리고 간지럽히던지, 길을 가다 말고 하늘도 올려다보고, 땅도 내려다보며, 봄에 마당에 나온 병아리 걷듯 종종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내 운동화의 앞머리에 구멍이 두 개씩이나 나 있는게 아닌가. 세상에나, 내 운동화의 꼴도 우습고, 그걸 신고 어린애처럼 총총거렸던 내 꼴은 더 우스워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라도 누가 보았을까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운동화를 바라보았다. '그 사이 참 고생 많이 했다. 잘 꾸밀 줄 아는 주인을 만났더라면, 좀 더 조심스럽게, 더 깨끗하게 오래동안 신고 다녔을 수도 있을텐데.'라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마침, 기다리기라도 한 듯, 365일 신발 상설매장이 코앞에 보였다. 어차피 봄에 신을 신발 하나를 보자는 맘으로 매장에 들어서는데, 길거리에 모델로 나와 있던 검정색 단화가 눈길을 끌었다.
바로 집어서 “사장님 245짜리 하나 주세요. 얼마예요?”
만원이란다. 구두의 뒤축이 탄탄하고, 신어보니 편안해서, 게다가 이만원도 아닌 만원, 신고 나왔다.
친절한 사장님은 운동화를 봉투에 담아주면서 한마디 했다.
“오래도 신었네요. 뒷꿈치도 닳고, 이렇게 구멍 난 걸 보니, 많이 걸었나 보네요. 새 신으로 갈아신으면 기분도 좋지요. 이런 가죽이 돈 만원이면 거저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텃밭에 들러 시금치와 갓을 캔 후 담을 봉투를 찾았다. 운동화를 담았던 종이봉투를 꺼내어 담고 나니 다시 또 운동화가 보였다. 그 모습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순하디 순한 미소를 담고서 지난날의 그리움을 뿌려주었다.
이해인 수녀의 시 중 <신발의 이름>이란 시가 생각났다.
내가 신고 다니는
신발의 다른 이름은
그리움 1호다
(중략)
신발을 신는 것은
삶을 신는 것이겠지
나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건너간 내 친구는
얼마나 신발이 신고 싶을까
살아서 다시 신는 나의 신발은
오늘도 희망을 재촉한다
나도 역시 희망을 선물한 신발 - 운동화와 새구두 – 을 신고 어제와는 다른 새 삶을 신었다.